추신수의 우문현답

[추신수 일기] "지역 감정 사로잡힌 팬, 이해가 안가"


시즌 15호 홈런을 터트린 추신수가 최근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를 전달 받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외국에서 생활하는 추신수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대분이라 추신수를 잠시 당혹케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운동선수한테 지역 감정을 거론하면서 어디 지역 출신과 인연이 있으면 더 이상 팬을 하지 않겠다는 경고성 메시지였습니다. 일기를 게재하면서 살짝 걱정도 됩니다. 추신수의 의도, 진심과는 상관없이 이상한 논란이 불거지게 될까봐서죠. 외국에서 뛰고 있는 운동선수한테 지역 감정을 들먹였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도 듭니다. - 이영미

얼마 전 제 개인 홈페이지에 어떤 분이 글을 남겼습니다. 꼭 답장을 해달라고 부탁하셔서, 댓글을 달까 하다가 일기를 통해 제 생각을 전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여기에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 분은 제가 그동안 언론과 인터뷰했던 내용이나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일기를 읽으면서 공인 신분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말을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 그리고 김병현, 최희섭 선배에 대한 언급 등을 열거하면서 이렇게 물어보셨습니다. ‘혹시 부모님, 조부모님, 아니면 아내가 전라도 출신이냐?’고요. 공인이라는 사람이 지역 감정에 휩쓸려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다소 치우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하셨고요. 더욱이 그 분은 만약 제 가족 중에 전라도 분이 계신다면 더 이상 팬으로 남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니, 제가 전라도 사람을 좋아한다면 추신수의 팬임을 포기하겠다고 강조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자신은 지역 감정에 사로 잡힌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친절히 설명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 글을 읽고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전 부산 출신입니다. 제 가족들 중에 경상도 출신이 있는지, 전라도 출신이 있는지는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분의 주장대로라면 미국 사람들이 단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종차별을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미국 사람들도 유색 인종의 겉만 보고 차별을 하는 것처럼 그 분도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겉모습 때문에 무조건 싫다 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외국에서 생활하다보면 한국, 한국 사람들이 모두 내 가족같고 내 이웃같은 정이 느껴집니다. ‘코리언’이란 단어 속에는 지연이나 학연 등이 얽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리 국민들, 같은 민족 사람들이란 공동체 의식이 존재합니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많은 시간들이 지났고 동서화합이니 뭐 그런 거창한 말들도 오고 가는 지금, 여전히 지역 감정에 사로 잡혀서, 일개 운동 선수를 어디 출신이니 아니니 하면서 팬을 하겠다, 안 하겠다고 말씀을 하시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제 팬들 중에 이런 분이 계신다면, 그래서 떠나겠다고 하신다면 전 말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평소 갖고 있는 소신과 가고자 하는 길이 너무 틀리기 때문에 더 이상 추신수의 팬을 안 하신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모든 분들이 저를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절 싫어하시거나 저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굉장히 가슴 아픈 부분이지만 모든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크게 마음에 담아두진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단지 지역 감정을 거론하면서 절 평가하려 하는 건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환경을 보고 먼저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국인이라서, 흑인이라서, 또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사람이라는 등등의 이유로 선입견을 가진 적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의 내면이 아닐까요? 사람 자체가 좋으면 그만인 것을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싫어한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잠시 마음을 좀 가라앉혀야 하겠네요.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부산고 후배들도 있고요. 시간과 여건만 되면 직접 만나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시즌을 치르다보니 마음만 앞서고 정작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움이 큽니다.

후배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루키나 싱글A 등을 거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계속 벌어지게 되죠. 그러나 지금의 후배들보다 가장 많이 힘들었을 분이 박찬호 선배님입니다. 그 다음이 이상훈, 조진호, 김병현 선배님이 아닐까 싶어요. 즉 지금 후배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이전 선배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사실이죠. 그 당시엔 메이저리그에 한국 야구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도 아닌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들과 부대끼며 자신의 자리를 구축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을 겁니다. 저 또한 선배들의 고생과 노력 덕분에 훨씬 편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했으니까요.

나만 힘들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제일 고생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전까진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 아니고는 그 험난한 과정과 과정들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젊은 나이에는 숱한 유혹에 부딪힙니다. 쉬고 싶고 놀고 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고 힘든 운동하는 게 싫고…, 생각만이 아닌 진심으로 빅리그를 꿈꾸는 후배들이라면 이 모든 태클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라는 테두리를 뚫고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이제 겨우 전 그 굴레에 머리를 비집고 들어가 첫 발을 뗐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꿈꿔왔던 곳이었지만 이 세계가 두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비열하고 또는 냉정하기 때문이죠.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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