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고마운 성남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성남시 공직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성남시장 자리를 떠나는 오늘, 시장으로서 제 마지막 인사를 감사하다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오늘 우리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 시민이 주인인 도시, 최고의 자부심과 최고의 평판을 가진 도시, 성남에서 살고 있습니다.
시장직을 떠나는 이 자리에서 시민들께 이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음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지난 8년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시간이었고, 시민들이 진정한 주권자라는 확신을 갖게 한 기쁨의 시간이었습니다.
취임 첫 기자회견에서 사실상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한 뒤로 지금껏 어느 것 하나 거저 이뤄진 것이 없었습니다. 준예산 사태도 겪고 수차례 예산과 조례가 부결되는 것은 다반사였지요.
어르신 소일거리 사업도 성남형교육 지원사업도, 무상교복, 청년배당, 산후조리지원 사업, 심지어 기업유치와 수천억대 개발이익을 환수하는 대장동 공영개발사업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고백합니다.
시민과 시에 필요한 시책을 추진하며 반대와 발목잡기에 붙잡혀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수십 수백 번씩 갈등했습니다. 상대 정치세력이 반대하는 일 하지 않으면 싸울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없습니다.
그냥 눈 질끈 감고 하지 말라는 것 하지 말고 적당히 누릴 것 누리면서 ‘타협’과 ‘상생’을 되뇌기만 하면 시민은 피해 입을지언정 정치인 이재명은 성격 좋고 통 크고 원만한 정치인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나약하게 흔들릴 때마다 도시락 싸들고 공장에 다니며 고참에게 폭행당하던 저의 어릴 적 삶, 여전히 그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가족 친지들, 세금 내는 이 나라의 주인이면서도 속고 대접받지 못하는 우리 힘든 서민들의 삶이 떠올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제가 힘들고 적당히 타협하고 싶을 때마다 힘이 되어 준 것은 바로 시민 여러분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민의식이 뛰어나고 행동하는 성남의 주인들은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셨고, 월급받는 머슴의 역할을 다하도록 독려해 주셨습니다.
의회의 반대로 정책추진에 제동이 걸릴 때마다 직접 의회와 의원들, 심지어 여의도 야당 당사까지 찾아가 설득하고 압박해주신 경로당 회장님을 비롯해 시정책의 추진에 참여하고 힘을 실어준 여러 어르신들과 종교지도자님들, 학부모님들, 시민사회단체 회원, 상인, 청년, 여성, 노동자, 기업인을 비롯한 수많은 시민여러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시민여러분이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성남시도, 오늘날 촉망받는 정치인 이재명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성남의 주권은 시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믿음은 여러분이 보여주신 구체적인 증거 앞에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선물해주신 말로 다 표현 못할 감동과 믿음, 영원히 제 가슴에 새겨두겠습니다.
임기중 가장 보람 있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등하고 대립하던 본시가지와 신도시 주민들이 ‘성남’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것, 시민들이 ‘성남시’에 자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수정구도 성남입니다. 중원구도 성남입니다. 분당구도 성남입니다. 이제 우리는 성남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남에 산다는 것이 자랑이고, 성남시민이라는 것이 자부심이 되었습니다. 성남에서 40년을 넘게 살아온 저도 이제 성남시민임이 자랑스럽고, 또 성남을 대표하는 시장이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도록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성남시의료원 공사현장에 들렀습니다. 꽤나 건물 꼴을 갖춰가는 의료원을 보면서 그곳에서 안심하고 진료 받을 시민 여러분을 떠올렸습니다.
성남시민들이 직접 만든 공공병원, 성남시의료원은 공공의료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을 뿐 아니라 제가 정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20만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하고 18,595명이 주민등록증을 내가며 한겨울 혹한 속에서 지장 찍어 만든 ‘시립병원설립조례’를 시의회가 47초 만에 날치기로 부결시켰습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서러웠습니다. 날치기 당한 시의회 본회의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목 놓아 울었습니다.
2004년 3월 28일 오후 5시, 회의장에서 항의하고 울었다는 이유로 ‘특수공무집행방해’라는 어마어마한 죄명을 뒤집어 쓴 채 경찰 수배를 피해 숨어들어간 교회 지하실에서 몰래 면회온 선배와 도시락을 먹다 다시 둘이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눈물밥을 먹으며 결심했습니다. 시장이 되어 내 손으로 성남시립의료원을 반드시 만들겠다고 말입니다.
2013년 11월 14일, 마침내 시장으로서 의료원 기공식에 참석해 첫삽을 뜬 그날 또 우리는 울었습니다. 기공식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시립의료원 설립운동을 함께 했던 시민들과 함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막걸리를 마시며 미친사람처럼 울고 웃고 또 울고 웃었습니다.
하루빨리 완공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는 시민 여러분께 한시라도 빨리 의료원을 안겨드리고 싶었습니다. ‘이게 시민여러분 손으로 직접 만든 바로 그 공공병원입니다’라고 자랑스럽게 축하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일들로 공사가 늦어진 것이 못내 아쉽고 마음에 걸립니다. 공직자 여러분께서 앞으로 잘 마무리 짓고, 시민들에게 최고의 병원을 만들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며칠 전 오래된 일기장을 잠시 들춰봤습니다. 1988년 5월 12일의 일기에 눈길이 멈췄습니다. 당시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제가 저에게 이렇게 적었더군요.
“성남은 내 일생의 반을, 그것도 험한 세상을 겪으며 보낸 곳으로서, 나의 두 번째 고향이자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다. 그렇기에 나는 성남을 사랑하며 결코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성남을 새로이 일으킬 것이며 민주화의 기점으로 성장시킬 것이다.”
꼭 30년 전, 성남을 일으키겠다던 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시민 여러분의 믿음과지지 격려가 없었더라면 결코 지키지 못할 약속이었습니다.
아니, 진정으로 성남을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성장시킨 것은 제가 아니라 행동으로 자치와 민주주의를 실천해 주신 성남의 주인이자 이 나라의 주권자인 시민 여러분입니다. 그래서 또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성남을 대표하는 시장직의 영광을 주시고, 일할 기회와 보수와 예우를 주신 시민여러분, 저에게 믿음과 힘과 또다시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만들어주신 시민여러분께 마지막으로 큰 절로 감사인사 드리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남시 공직자 여러분,
일선에서 묵묵히 헌신해 주신 여러분 덕분에 대한민국과 전세계가 배우러 오는 숱한 모범을 만들었고, 기초 지방자치단체이면서도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성과에 여러분의 땀이 배어 있고 끈기가 녹아있다는 사실 잊지 않겠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성남시 공직자의 대표로서 제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 가지와 잎의 역할을 해 준 공직자 여러분의 헌신과 열정의 과실을 저 혼자 독차지한 듯해서 미안합니다. 최선을 다해 준 공직자 여러분께도 큰 절로 고마움을 표시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늘 말씀 드렸듯 여러분에게 주어진 권한은 시민들이 위임한 것입니다. 언제나 그 소중한 권한을 나를 위해 남용하지 말고 시민들을 위해 공정하게 행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또 한 번의 도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촛불혁명으로 나라의 진짜 주인이 우리임을 확인했고, 곳곳에 숨어있던 불공정, 불합리, 불의한 것들이 하나씩 바뀌고 있습니다. 무력과 돈과 권력을 이용한 ‘폭력의 시대’가 가고 평등하게 공존하는 ‘인간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성남시민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저도 이 위대하고 거대한 변혁의 길에서 제 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성남에서의 기적을 더 크게 펼치겠습니다.
성남시민이 키워주신 이재명, 더 크게 보답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이 나라의 당당한 주권자로서, 우리 삶의 주인으로서 함께 그 길을 걸어갑시다.
성남 시민여러분, 공직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2018년 3월 14일
이재명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