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반역자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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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희(姜敬熙, 1858년 8월 15일 ~ ?)는 조선 말기의 관료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로 활동했다.
강동희(姜東曦, 1886년 10월 8일 ~ 1964년 7월 12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자는 영찬(榮粲), 호는 오당(五堂), 초연재(超然齋), 본관은 진주이며 본적은 전라북도 김제군 성덕면이다.
강번(姜藩, 일본식 이름: 豊田藩, 1881년 12월 1일 ~ 1944년 5월 6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금융인, 기업인으로,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이다.
강보형(姜寶馨, 일본식 이름: 鳥山馨, 1892년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경찰 간부이다.
강이황(姜利璜, 일본식 이름: 岡利晃, 1897년 3월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이다.
강필성(姜弼成, 1885년 음력 10월 8일 ~ 1939년 양력 12월 21일)은 일제 강점기에 고위 관료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다.
계광순(桂珖淳, 1909년 2월 16일 ~ 1990년 3월 19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고영희(高永喜, 1849년 12월 16일(음력 11월 2일[1]) ~ 1916년 1월 24일)는 대한제국의 정치인으로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자중(子中), 본관은 제주(濟州), 본적은 경성 북부(北部) 옥동(玉洞) 15통 9호(1914년 당시 주소)이며 고진풍(高鎭豊)의 아들이다.
고희경(高羲敬, 1873년 7월 22일 ~ 1934년 2월 27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본관은 제주이며 본적은 경성부 통동이다.
구연수(具然壽, 1866년 10월 8일 ~ 1925년 5월 6일)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군인, 관료, 정치인으로 을미사변 관련자이자 을미사변 당시 조선인 출신 고위 협조자의 한사람이며 일제 강점기에 경찰 간부를 지냈다. 친일파 송병준의 사위이기도 하다.
구자경(具滋璟, 일본식 이름: 竹山淸, 1888년 5월 ~ ?)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출신 관료이다.
구희서(具羲書, 1861년 8월 2일 ~ 1921년 4월 21일)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관은 능성이며 본적은 한성부 중서(中署) 정선방(貞善坊) 하돈녕계(下敦寧契) 하한동(下漢洞)이다권봉수(權鳳洙, 1870년 양력 7월 23일(음력 6월 25일) ~ 1930년 양력 2월 1일)는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찬의를 지냈다.
권상로(權相老, 일본식 이름: 安東相老, 1879년 양력 2월 28일 ~ 1965년 양력 4월 19일)는 한국의 불교 승려이다. 아호는 퇴경당(退耕堂)이다.
권중식(權重植, 일본식 이름: 山本重夫, 山本昇佑, 1892년 7월 ~ 1943년 2월 27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안동이다.
권중익(權重翼, ? ~ ?)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로, 본적은 경기도 수원군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권중현(權重顯, 1854년 11월 27일(음력 10월 8일) ~ 1934년 3월 19일)은 조선 후기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개화파 정치인이었으나 초기에 친일파로 변절하였다. 초명은 재형(在衡), 호는 경농(經農), 충청북도 영동 출생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권태환(權泰煥, 1876년 12월 5일(음력 10월 20일)~1947년 4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본관은 안동이며 초명은 권창현(權昌鉉)이다.
김갑순(金甲淳, 일본식 이름: 金井甲淳, 1872년 5월 22일 ~ 1961년 6월)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자,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기업인, 자본가이다.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나 부를 축적하여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부호로 성장했으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공주군, 논산군, 아산군, 노성, 대전 등지에 대규모의 땅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1930년말 대전시내의 3분의 2가 한때 그의 땅이었다. 교육자 윤치오의 사돈이기도 했다.
김경진(金慶鎭, 일본식 이름: 金子慶鎭, 金子典幹, 1895년 8월 23일 ~ 1975년 6월 5일)은 일제 강점기의 경상남도 지역 유지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신)안동이다.
김기태(金琪邰, 일본식 이름: 金澤輝昌, 1887년 8월 5일 ~ 1941년 7월 5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이다.
김대우(金大羽, 1900년 7월 10일 ~ 1976년 4월 22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평안남도 강동군 출신이며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이다. 1943년 전라북도지사, 1945년 6월 경상북도지사에 임명되었다. 그해 8월 광복 직후 행정, 치안권 교섭에 총독부측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으며, 해방 직후에도 해방된 한국의 초대 경상북도지사를 지내다가 그해 10월 12일 물러났다.
김동준(金東準, 1886년 11월 24일 ~ 1973년 11월 26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평안북도 영변군 오리면이다.
김동훈(金東勳, 일본식 이름: 金原邦光, 1886년 2월 9일(음력 1월 6일) ~ 1947년 5월 23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다.
김병태(金秉泰, 일본식 이름: 金村泰男(가네무라 야스오), 1887년 7월 24일 ~ 1943년 12월 13일)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부 관리였다.
김사철(金思轍, 1847년 양력 8월 21일 ~ 1935년 양력 2월 17일)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호는 유당(由堂),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김상연(金祥演, 1874년 6월 26일 ~ 1941년 9월 29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관은 영천, 호는 수송(壽松)이며 본적은 경성부 체부동이다.
김상회(金尙會, 일본식 이름: 豊原以尙, 1890년 4월 10일 ~ 1962년 5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 겸 관료로, 본적은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이다.
김석원(金錫源, 일본식 이름: 金山錫源(가네야마 샤쿠겐), 1893년 9월 29일 ~ 1978년 8월 6일)은 일본군 장교를 지낸 대한민국 국군의 군인이다.
김성규(金成圭, ? ~ ?)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평안북도 용천군 부라면이다.
김성수(金性洙, 1891년 10월 11일 ~ 1955년 2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인 겸 언론인·기업인·친일파·근대주의 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정치인, 언론인, 교육인, 서예가이다. 전라북도 고창 출생으로, 부안 줄포에서 자랐다. 자는 판석(判錫), 아호는 인촌(仁村), 본관은 울산이다.[1]
김세현(金世顯, 1895년 9월 17일 ~ 1945년 4월 7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본관은 안동이며 본적은 경성부 숭인동이다. 다른 이름으로 김세원(金世元)이 있으며 남작 김종한의 양손자이다.
김연상(金然尙, 1878년 음력 4월 25일~1924년 양력 4월 2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영무(金英武, 일본식 이름: 金田英武, 1891년 10월 20일 ~ 1953년 5월 30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호는 지산(芝山), 본적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면이다. 다른 이름으로 김대희(金大熙)가 있다.
김영진(金英鎭, 일본식 이름: 金子英鎭, 1876년 5월 26일 ~ 1947년 1월 16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리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김옥균의 아들 혹은 양아들이다. 본관은 안동이다.
김원근(金元根, 일본식 이름: 金海元根, 1886년 10월 10일 ~ 1965년 12월 23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교육자, 사회 사업가이며 대성보통학교, 공주고등학교, 조치원 보통학교 등을 건립하였다. 충청북도 지방 부호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호는 청암(淸巖)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김영철(金永哲, 1841년 ~ 1923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자는 문경(文卿), 본관은 광산이며 본적은 경성부 체부동이다.
김우영(金雨英, 일본식 이름: 金雨英, 1886년 10월 23일 ~ 1958년 4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화가 나혜석의 남편이었다.[1] 아호는 청구(靑邱)이다.
김윤정(金潤晶, 일본식 이름: 淸道金次郞[1], 1869년 6월 25일 ~ 1949년 10월 23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 외교관이자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인천부 경무관 재직 시절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혐의로 끌려온 김창수(독립운동가 백범 김구의 본명)를 심문하기도 했고, 외교관으로 있을 때는 미국 국무부에 고종의 밀서를 전달해 달라던 이승만의 청을 거절하였다.
김재환(金在煥, 1884년 6월 3일 ~ 1950년 4월 5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남정(南町)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구 지역의 유력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김종한(金宗漢, 1844년 ~ 1932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의 경제인이다. 아호는 유하(游霞)이다.
김준평(金準枰, 일본식 이름: 金光準枰, 1904년 4월 3일 ~ ?)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법조인으로, 본적은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면이다.
김태석(金泰錫, 일본식 이름: 金村泰錫, 1882년 11월 23일 ~ ?)은 일제강점기의 교육인, 경찰, 중추원 참의, 관료이다. 독립운동가 강우규 의사를 체포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필희(金弼熙, 1872년 음력 8월 12일 ~ 1960년 양력 8월 14일)은 대한제국의 관료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경주이다.
김한규(金漢奎, 일본식 이름: 金子漢奎, 1877년 9월 20일 ~ 1950년 10월 5일)는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김해이다.
김희선(金羲善, 1875년 ~ 1950년 양력 9월 29일)은 대한제국의 군인이며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 차장을 잠시 지냈다. 페미니스트 소설가 김명순은 그의 형 김희경의 서녀였다.
나수연(羅壽淵, 1861년 음력 10월 20일~1926년 양력 6월 16일)은 대한제국 말기의 개화파 무관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호는 소봉(小蓬)이다.
남궁영(南宮營, 1887년 9월 4일 ~ 1939년 12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함열이다.
남규희(南奎熙, 1859년 12월 19일 ~ 1937년 5월 8일)는 조선 말기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근무했다. 자는 성여(星汝), 호는 하산(霞山)이며 본적은 경기도 광주군 낙생면이다.
남백우(南百祐, 일본식 이름: 南百祐, 1886년 11월 ~ ?)는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남정철(南廷哲, 1840년 ~ 1916년)은 구한말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자는 치상(穉祥), 호는 하산(霞山)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노기주(魯璣柱, 일본식 이름: 江本正明, 1896년 2월 1일 ~ 1959년 7월 7일 평양 출생 )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 고등계 경찰이다
노영빈(盧永斌, 일본식 이름: 豊川永斌, 1907년 3월 12일 ~ 1999년 5월 27일[1])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노영환(盧泳奐, 일본식 이름: 大原次郞, 1895년 5월 28일 ~ 1967년 7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기업인으로, 본적은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이다.
노준영(盧俊泳, 일본식 이름: 豊川一淸, 1892년 11월 12일 ~ 1968년 9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 겸 관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문명기(文明琦, 일본식 이름: 文明琦一郞(후미아키 기이치로), 1878년 6월 18일 ~ 1968년 10월 6일)는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상인, 기업인 겸 관료로, 본관은 남평,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면(현재의 영덕읍)이며 평안남도 안주군 출신이다. 그의 청어 선물은 청탁 또는 아부를 말하는 사바사바의 어원이 되었다 한다.
문종구(文鍾龜, 일본식 이름: 平文鍾龜, 1884년 11월 16일 ~ 1952년 1월 28일)는 일제 강점기의 지주이자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남평이다.
민병덕(閔丙德, 일본식 이름: 鉢山丙德, 1894년 10월 11일 ~ 1957년 11월 6일)은 일제 강점기의 황해도 지역 유지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낸 기업인이다. 본관은 여흥이다.
박경원(朴經遠, 1869년 11월 19일 ~ 1947년 4월 4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문유(文猶), 본관은 밀양이며 본적은 경성부 숭인동이다. 남작 박용대의 장남이다.
박기석(朴箕錫, 1869년 음력 1월 11일 / 양력 2월 21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박기순(朴基順, 1857년 음력 5월 5일 ~ 1935년 양력 9월 30일)은 일제 강점기의 전라북도 지역 유지이다. 본관은 충주이다.
박보양(朴普陽, 일본식 이름: 江原基陽, 1888년 2월 12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강원도 철원군 철원면이다. 본관은 반남이다.
박상준(朴相駿, 일본식 이름: 朴澤相駿[1], 1876년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본관은 밀양이다.
박승원(朴勝遠, 1895년 3월 17일 ~ 1939년 6월 15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본관은 반남이며 본적은 경성부 적선정이다. 남작 박기양의 장남이다.
박영철(朴榮喆, 1879년 2월 2일 ~ 1939년 3월 10일)은 대한제국의 군인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관료를 지냈고, 여러 친일 단체에서 활동했다. 유명한 밀정 배정자의 남편이기도 하다.[1]
박영희(朴英熙, 일본식 이름: 芳村香道 요시무라 고도[*], 1901년 12월 20일 ~ 1950년)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친일 사회주의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언론인이다. 1920년대 대표적인 카프 문학가로 활동했지만 1933년 카프에서 탈퇴, 이후 순수 문학과 예술주의로 방향을 전환했다. 일제 강점기 말기 중일 전쟁 발발과 함께 사상 전향을 발표하고 친일 문학가로 변절했다. 호는 회월(懷月), 송은(松隱), 본명은 박거복(朴巨福)이며 본관은 밀양이다.
박용대(朴容大, 1849년 5월 26일 ~ 1927년 2월 19일)는 조선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에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자는 성기(聖器), 본관은 밀양이다.
박제환(朴齊瓛, 1859년 양력 12월 2일 ~ 1938년 양력 1월 5일)은 대한제국의 관료로,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래 이름은 박제환(朴齊煥)이나 1906년 한자를 바꾸어 개명했다. 본관은 반남이다.
박철희(朴喆熙, 일본식 이름: 竹村喆熙, 1878년 1월 14일(1877년 음력 12월 12일)[1] ~ 1944년 1월 24일)는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관은 밀양이다.
박흥식(朴興植, 1903년 8월 6일 ~ 1994년 5월 10일[1])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다. 광복 이후에는 사업에서 손을 떼었지만 1950년부터 1980년까지 30년동안은 다시 기업인으로 활동하였다. 화신백화점 사장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제1공화국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조직되었을 때 첫 번째로 체포된 인물이기도 하다.
방응모(方應謨, 평안북도, 1884년 1월 3일 ~ 1950년 8월?)는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 언론인, 법조인, 기업인이자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언론인이며 정치인이다. 호는 춘해(春海)이고 후에 계초(啓礎)로 고쳤다.
방의석(方義錫, 1895년 10월 19일 ~ 1958년 10월 22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방인혁(龐寅赫, 1878년 음력 6월 10일 ~ 1935년 양력 9월 23일)은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지방의 유지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방태영(方台榮, 1885년 8월 3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언론인으로,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6가이다.
배정자(裵貞子, 일본식 이름: 田山貞子(다야마 사다코), 1870년 2월 23일[3][4] ~ 1952년 2월 27일)는 조선의 승려이자 일본 제국의 조선 정보원 겸 일본 제국의 외교관이다. 생부가 민씨 일파에게 처형당한 뒤 연좌법에 의해 관비가 된 어머니를 따라 여러 곳을 떠돌아 다니다가 밀양의 기생으로 팔려갔으나 탈출, 1882년(고종 19년) 여승이 되었다.
백윤화(白允和, 일본식 이름: 白川允和, 1893년 5월 11일 ~ 1956년 10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이다. 본관은 수원이다.
백인기(白寅基, 1882년 음력 2월 29일 ~ 1942년 양력 7월 1일(음력 5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금융인이다. 백연기(白演基)라고도 한다. 본관은 수원이다.
서범석(徐範錫, 1902년 10월 19일 ~ 1986년 4월 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서병조(徐丙朝, 일본식 이름: 大峯丙朝, 1882년 7월 28일 ~ 1952년 2월 29일)는 일제 강점기의 대구 지역 유지이자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대구이며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계산동이다.
서병주(徐炳柱, 1885년 10월 6일 ~ 1956년 3월 18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삼덕동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대구 지역의 대지주이자 지역 유력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본관은 달성이다서상면(徐相勉, 1867년 3월 4일 ~ 1920년 1월 3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관은 대구이며 본적은 한성부 남서(南署) 회현방(會賢坊) 사축동(司畜洞)이다.
서상훈(徐相勛, 일본식 이름: 徐川相勛, 1858년 3월 ~ 1943년 7월 31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장기간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자는 군필(君弼), 본관은 대구이며, 본적은 경성부 서대문정이다.
손석도(孫錫度, 일본식 이름: 孫田宗明, 1910년 1월 14일 ~ ?)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경찰 간부이며, 대한민국의 법조인이다.
손영목(孫永穆, 일본식 이름: 孫永穆, 1888년 11월 21일 ~ 1950년 5월 7일)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여러 친일단체에서 활동했다. 일제 강점기에 강원도지사를 두번 역임하고, 해방 직후 초대 강원도지사를 지냈다.
손재하(孫在廈, 일본식 이름: 廣川平成, 廣原平成, 1888년 11월 6일 ~ 1952년 6월 11일)는 충청북도 지역 유지로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본관은 밀양이다.
송병준(宋秉畯, 일본어: 野田 平次郞  노다 헤이지로[*][2], 1857년 10월 7일(음력 8월 20일) ~ 1925년 2월 1일)은 조선 말기에 활동한 무관 정치인으로, 정미칠적 중 한 사람이며 한일 합병 조약 체결 과정에서도 일진회를 통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무과 급제 후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김옥균을 암살 밀명을 받고 일본에 건너갔지만 오히려 김옥균에게 감화되었고 그의 동지가 되면서 개화파 정치인이 되었다.[3] 그러나 뒤에 친일파로 변절하여 일진회 등의 조직과 한일신협약 체결, 한일 합방에 적극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오늘날 그는 이완용과 함께 친일파, 매국노의 수괴로 대표되는 인물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창씨한 사람 제1호였으며 그의 별명 또한 ‘노다(野田) 대감’이었다.[4] 그 는 조선 말기 무관이자 정치인 이며 호는 제암(濟庵)이다.
신용욱(愼鏞頊, 일본식 이름: 眞原勝平, 1901년 ~ 1961년 7월 16일)은 한국의 기업인, 정치인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군수 산업에 몸담았고, 대한민국 제2, 3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일본 동아항공전문학교와 미국 힐라 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고 조선비행학교를 설립하고 교장을 지냈다. 1948년 10월 대한국민항공사(KNA)를 설립하고 사장이 되어 국내 노선을 운항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전쟁 때 대한국민항공사의 비행기가 징발되고 파산하였다가, 전시 중에 다시 비행기를 들여와 국제노선에도 취항하였다. 그러다가 경영난이 악화된 시점인 1961년 7월 16일 한강에 투신 자살하였다. 제2대, 제3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대한국민항공사는 현재 대한항공의 전신이다.
2002년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으며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되었다.
안병길(安炳吉, 1886년 11월 2일 ~ 1936년 4월 19일)은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 겸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경산시 삼남동이다.
양원용(梁源容, 일본식 이름: 梁原龍, 1895년 6월 18일 ~ ?)은 일제 강점기의 법조인으로, 전라남도 담양군 출신이다.양재익(梁在翼, ? ~ ?)은 대한제국 말기에 일진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양재창(梁在昶, 일본식 이름: 梁川在昶, 1885년 9월 29일 ~ 1968년 1월 14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출신 기업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본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이다.
양재하(楊在河, 일본식 이름: 靑木在河, 1883년 6월 20일 ~ 1946년 11월 21일)는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기업인이다.
염중모(廉仲模, 1862년 10월 6일 ~ 1935년 1월 11일)는 대한제국 시기에는 일진회 회원을,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윤시병(尹始炳, 1851년 2월 1일(음력 1월 1일) ~ 1932년 2월 5일)은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개화파 인물로, 초기 일진회 조직을 주도했다.
이건하(李乾夏, 1835년 음력 4월 27일 ~ 1913년 양력 11월 7일)는 조선의 관료이며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이규환(李圭桓, 1858년 8월 17일 ~ 1931년 1월 31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공집(公執), 호는 만당(晩堂), 본관은 경주, 본적은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이다. 남작 이주영의 장남이다.
이근명(李根命, 1840년 양력 1월 21일 ~ 1916년 양력 6월 11일)은 조선의 의정대신이며 일본 제국으로부터 조선귀족 작위를 받았다. 자는 순구(舜九),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이근우(李根宇, 1877년 9월 20일 ~ 1938년 5월 13일)는 일제 강점기의 강원도 지역 유지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다.
이근호(李根澔, 1860년 ~ 1923년)는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문옥(文玉), 호는 송은(松隱), 규재(奎齋), 본관은 전주이며 을사오적 이근택의 형이다.
이기용(李埼鎔, 1889년 11월 1일 ~ 1961년 3월 4일)은 조선 후기의 종친으로 장조의 서자 은신군(恩信君)의 현손이며, 흥선대원왕의 백형(伯兄) 흥녕군 이창응의 손자이고, 계동궁(桂洞宮) 사손(嗣孫)이다. 일제 강점기에 자작 작위를 받았고, 귀족원 의원을 지냈다. 입양 계통상 숙종의 서자 연령군의 6대손에 해당된다.
이기원(李起元, 1880년 7월 14일 ~ 1937년 6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본관은 전주, 본적은 경성부 장사정이며 남작 이봉의의 아들이다.
이기찬(李基燦, 일본식 이름: 安城基, 1886년 음력 7월 18일 ~ 1945년 6월 12일)은 일제 강점기의 법조인이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이달용(李達鎔, 1883년 음력 9월 11일 ~ 1948년 1월 27일)은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의 황족, 관료, 교육인으로 흥선대원군의 종손(從孫)이며 남연군의 증손이다. 가계상 고종에게 5촌 조카이다.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기도 하며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 이재완의 조선귀족 작위를 물려받았다. 한성부 출신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명구(李明求, 일본식 이름: 牧原廣定, 1892년 12월 11일 ~ 1975년 2월 27일)는 일제 강점기의 의사 겸 관료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냈으며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1가이다.
이병무(李秉武, 1864년 2월 8일(음력 1월 1일)~1926년 양력 12월 6일)는 정미칠적과 경술국적에 모두 포함된 대한제국의 정치인이다.
이명섭(李明燮, 일본식 이름: 李宮明燮, 1886년 12월 28일 ~ ?)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법조인이다.
이병길(李丙吉, 1905년 1월 12일 ~ 1950년 12월 28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호는 이당(二堂), 본관은 우봉이며 본적은 경성부 종로구 옥인정(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이다. 이완용의 손자로서 그의 후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이완용(李完用, 1858년 7월 17일(음력 6월 7일) ~ 1926년 양력 2월 12일)은 대한제국의 외교관, 정치가이자 관료이다. 일제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조선귀족 백작 작위를 받았고, 1919년에는 후작에 올랐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가운데 한 사람이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조선사 편수회 고문 등을 지냈다. 본관은 우봉(牛峰)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일당(一堂)이다.
이인용(李寅鎔, 1907년 4월 20일 ~ 1950년 6월 30일)은 조선의 왕족이자 대한제국 황실의 종친이며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이재극의 아들이자 고종의 조카뻘이다.
이장훈(李長薰, 1917년 12월 30일 ~ 1993년 9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본관은 전주(全州), 원적지는 경성부 관철동이며 남작 이근상의 아들이다.
이주영(李胄榮, 1837년 음력 3월 13일 ~ 1917년 양력 12월 18일)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이다. 자는 순경(舜敬), 본관은 경주이며 본적은 경성부 누하동이다.
이학규(李鶴圭, 1852년 1월 8일 ~ ?)는 조선의 문신이자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관은 홍주이며 관료 이석희의 아버지이다.
이진호(李軫鎬, 일본어: 李家軫鎬, 1867년 8월 30일(음력 8월 2일) ~ 1946년 9월 3일)는 조선 후기의 개화파 무관이며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아호는 성재(星齋)이다. 본관은 전의[1]. 3.1 만세 운동 당시 시위를 진압하는 자제단 창립에 참여하였고, 전북 자성회, 전남 자성회의 출범을 주도하였다.
정기창(鄭基昌, 일본식 이름: 日出原基昌, 1889년 2월 22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수정(竪町)이다.
최석현(崔錫鉉, 일본식 이름: 山本祥資, 1893년 8월 17일 ~ 1956년 4월 9일)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겸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대구부 횡정(橫町)이며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출신이다.
최윤(崔潤, 일본식 이름: 山佳潤, 1886년 3월 29일 ~ 1970년 2월 16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이다.
최하영(崔夏永, 일본식 이름: 香山夏永, 1908년 7월 18일 ~ 1978년 7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대한민국의 정치인, 기업인으로, 본적은 경기도 이천군 이천읍이다.
하준석(河駿錫, 일본식 이름: 河本駿錫, 1898년 4월 28일 ~ 1976년 1월 21일)은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본적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면이다.
한상기(韓相琦, 1881년 2월 13일 ~ 1934년 6월 17일)는 일제 강점기의 조선귀족으로, 본관은 청주, 본적은 경성부 가회정이며 남작 한창수의 장남이다.
홍종철(洪鍾轍, 일본식 이름: 洪海鍾轍, 1890년 4월 25일 ~ 1973년 4월 29일)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 겸 기업인으로, 본적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면이다. 민주통합당의 정치인 홍영표는 그의 손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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