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던 스님 VS 지나가던 선비

조선의 영조 임금 때, 이병식(李秉軾)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힘센 장사로 유명했는데, 한 번은 판서 구윤명이 기르던 사나운 말이 마부를 짓밟아 죽이자 구윤명의 부름을 받고 달려와서 그 말의 꼬리를 잡고서 땅에 내던져 죽였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이병식은 칭송을 받았고, 곧바로 무과에 급제하여 임금과 궁궐을 지키는 금군의 자리에 올랐니다.

 

어느 날은 큰 나무가 뽑혀 길을 막아버렸는데, 마침 거센 추위가 몰아닥쳐서 그 나무가 길과 달라붙어 얼어버렸니다. 그래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나무를 치우기 위해서 힘을 썼으나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 이병식이 나타나 술을 마시고는 혼자만의 힘으로 나무를 끌어내어 치워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주위의 사람들이 감탄하여 이병식이 진정한 천하장사라며 그의 용기와 힘을 칭송했지요.

 

그 일이 있은 후, 이병식은 근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양화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던 중이었는데, 인상이 무척 사납게 생긴 승려 한 명이 가마 속에 앉아있던 여인을 희롱하며 괴롭히고 있었니다. 그러나 그 승려가 워낙 거칠고 난폭해보여서 아무도 그 승려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이병식은 분노하여 못된 승려에게 주먹을 날려 쓰러뜨린 다음, 곧바로 강속에 내던져 죽여 버렸니다. 같이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하였죠.

 

하지만 그 일이 빌미가 되어 이병식은 곤경에 처했니다. 못된 수작을 부리던 승려를 죽인 지 한 달 후, 집에서 소일거리로 텃밭 일을 하던 이병식에게 어느 승려 한 명이 찾아왔니다. 그는 이병식보다 훨씬 체격이 크고 인상도 양화진에서 죽은 승려보다 더 험악했는데, 무거운 쇠지팡이까지 들고 있어서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주었니다. 여태까지 힘으로 남에게 밀린 적이 없었던 이병식조차 그 승려를 보고는 마음속에서 두려움이 솟아날 지경이었니다.

 

쇠지팡이를 들고 온 승려는 이병식에게 “여기 이병식이라는 자가 산다고 해서 왔는데, 그 자가 어디에 있소?”라고 물었니다. 이병식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두려워하여 일부러 “지금은 떠나고 없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대답했니다.

 

그 말을 듣고 승려는 “그 이병식이라는 놈이 나의 제자를 양화진에서 죽였기에, 복수를 하러 온 것이오. 듣자하니 그 놈이 힘이 장사라지만, 나보다는 약할 것이오. 나도 힘으로 따지자면 누구에게 뒤지지 않기 때문이오.”라고 말했니다. 

 

그러자 이병식은 저 승려를 제거할 생각이 떠올라, “대사께서 그렇게 힘에 자신이 있으시다면, 저기 낭떠러지로 저와 함께 가셔서 서로의 힘을 가지고 대결해 봐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말했고, 승려는 좋다고 했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지, 이병식이 아무리 낭떠러지 끝에 선 승려를 온 힘을 다해 발로 걷어차 보아도 그는 도무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니다. 일찍이 수백 명이 달려들어도 치우지 못하던 나무를 걷어 올리고 양화진에서 행패를 부리던 승려를 한 주먹에 죽인 이병식이었지만, 저 승려를 상대로는 마치 갓난아기가 어른과 싸우는 것처럼 나약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지루해진 승려는 돌아서서 “나중에 이병식이 있을 때에 다시 오겠소.”라고 말하며 떠나버렸니다. 이병식은 저런 괴력을 가진 승려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하여 몰래 미행을 했는데, 길을 가던 도중 어느 곱상한 얼굴의 젊은 선비가 당나귀를 타고 오다가 그 승려와 마주치자, 승려는 얼른 쇠지팡이를 휘둘러 당나귀를 쓰러뜨렸고, 선비는 그대로 길가의 개울에 빠져버렸니다.

 

한참 후, 개울에서 올라온 선비는 죽은 당나귀와 태연히 떠나는 승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중얼거렸니다.

 

“사람을 죽이면 나쁜 일이지만, 저렇게 흉악무도한 자가 멋대로 세상을 누비고 다니게 놓아두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칠 것이다. 그러니 저 자를 벌하여 장차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야겠다.”

 

그러던 선비는 잽싸게 승려를 뒤쫓아 가더니, 공중으로 뛰어 올라서 양 손바닥으로 승려의 두 어깨를 살짝 내리치고는 곧바로 달려가서 사라져 버렸니다. 이상하게도 선비가 내리친 다음부터 승려는 가던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것이었니다. 

 

영문을 알 수 없던 이병식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승려를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는데, 그는 눈이 얼굴 밖으로 빠져 나오고 혀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으며 발가락과 허벅지까지 하반신이 땅 속에 단단히 박힌 채로 죽어 있었던 것이었니다. 그 나약해 보이던 선비가 자신도 이기지 못하던 승려를 저렇게 간단하게 죽여 버렸던 것이지요.

 

이 일을 겪고 나서 이병식은 “내가 그동안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줄로 알고 자만했었는데, 나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들도 있었구나. 앞으로 경거망동해서는 안 되겠다.”라고 깨닫고, 몸가짐을 신중히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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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조선 말엽에 나온 야담집인 금계필담에 실린 내용입니다.

 

흔히 한국의 신화나 전설에서 지나가던 스님이나 혹은 지나가던 선비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이 많지요.

 

그런데 그 둘이 함께 만나서 싸우면 어떻게 될지, 궁금한 생각도 들었는데 결국은 지나가던 선비가 이겼군요.

 

아무래도 조선이 유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낮게 보던 나라라서, 그랬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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