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관광 "일본 문화원서 받아 나눠줘"
이 ‘일본여행지도’는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을 위해 제작됐습니다.
누가 만들었을까요. 지도 뒷면을 보니
Japan National Tourism Organization,
그러니까 일본정부관광국이 직접 제작했다고 나옵니다.
일본 구석구석의 명승지와 온천, 호텔과 리조트까지
모두 우리말로 친절하게 쓰여 있어
이 지도 하나만 갖고 있으면 일본말을 잘 모르더라도
여행 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지도를 펼치자마자 중앙에 큼지막한 글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일본해. 네,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동쪽, 일본에서는 서쪽에 있는 그 바다,
우리는 동해라 쓰고 ‘자존심’이라고 읽는 그 바다가
지도 상에 일본해라고 떡하니 박혀 있습니다.
한글로 또박또박 쓰여진 ‘일본해’가 조금 당황스러웠던 건
그동안 ‘동해 vs 일본해 논쟁’이 일 때마다 한글이 아닌
Sea Of East(동해)나 Sea Of Japan(일본해)이라는 영문만 봤던 탓이 컸습니다.
혹시나 하고 독도는 어떻게 돼 있을까 찾아봤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지도에는 독도가 아니라 ‘다케시마’라고 표기돼 있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베푼 친절 속에 이렇게 교묘하게
정치적 속내를 심어놓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정말 ‘답이 없는 일본’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문제는 국내 유명 여행사가 일본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생각 없이 이 지도를 나눠준다는 점입니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족끼리 일본 여행을 가기 위해 한진관광을 찾았는데
여행에 참고하라며 이 지도를 줬다는 겁니다.
한진관광이라면 ‘땅콩 회항’ 사건으로 아직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는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등기이사를 맡았던 곳이죠.
문제의 지도가 한진관광에서 직접 제작해 배포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달 말 한진관광 본점을 찾아갔습니다.
일본 여행을 하겠다고 말한 뒤 미리 사진에 담아온 ‘일본여행지도’를 달라고 요청하자
본점에서는 “마침 그 지도가 다 떨어졌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해당 지도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인근에 있는 한진관광의 다른 지점을 찾아 문제의 지도를 달라고 부탁하자
직원은 캐비닛에 쌓여 있는 ‘일본여행지도’를 바로 내주더군요.
어디서 이런 지도를 갖고 오는지 물었습니다.
‘일본 문화원’에서 공짜로 얻어왔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한진관광이 배포만 했다는 얘긴데 이걸 직접 제작하진 않고
배포만 했다는 점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 해야 할까요?
일본 돈의 가치가 낮아지는 ‘엔저’ 현상이 올해까지 이어지면서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가 275만여 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죠.
과거 ‘엔고’였을 때 1만 원으로 스시를 2~3개밖에 못 먹었다면
지금은 4~5개를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을 아낄 수 있으니
일본 여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독도나 동해 문제뿐만 아니라 위안부 할머니와 교과서 왜곡 등
한일 간 뒤틀린 과거사 문제는 언제나 우리 명치끝을 아프고 답답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정치와 문화, 경제를 맑은 눈 뜨고 잘 분리해 판단하는 게 현명한 일이라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 일본은 좀 다른 것 같네요.
문화 속에, 경제 속에 몹쓸 정치공학을 채워 넣고 틈만 나면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자국 논리를 전파하려는 그들의 이중성에 혀를 내두를 지경입니다.
한진관광만 일본 정부의 이 정치공학에 당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혹여 다른 여행사들도 문제의 ‘일본여행지도’를 공짜라고
아무 생각 없이 받아와서 나눠주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은, 특히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와의 외교사에서 봐왔듯이
절대 공짜로 뭔가를 주지는 않는 나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