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르지 않은 범죄. 26년, 그리고 7개월

11.jpg 

<사건의 발단>
 
1981년 1월 15일 아침, 미국 텍사스주 경찰에 한 여성 A양이 가택에서 검정색 모자를 쓴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단 제보가 접수되었다.
 
 
가해자는 현금 일부를 포함해 각종 물건을 훔쳐갔으며,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여성에게 스카프를 씌우고 고개를 바닥으로 향하게 한채 범행을 저지르는 치밀함을 보였다.
 
 
피해자 A양은 즉시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으며 생물학적 증거 채취 과정을 포함해 댈러스 주립 병원에서 감식을 받았다.
 
 
이후 A양은 경찰에게 침입자에 대한 묘사가 담긴 증언을 남겼는데, 이에 따르면 가해자는 5피트 7인치 정도의 키와 검정색 머리카락과 민머리임으로 드러났다.
 
 
 
 
 
<유죄 혐의>
 
범행 다음 날, 경찰은 A양에게 범죄자 감식을 위해 유력한 용의자를 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사진 6장을 보여주었다.
 
 
이 사진을 본 A양은 6명 중 누구도 지목하지 않았다.  뒤이어 경찰은 찰스 채트맨이 포함되어있는 두번째 세트의 사진을 보여주었고 - 그녀는 바로 채트맨의 사진을 지목하였다.
 
가해자로 지목된 찰스 채트맨은 당시 파트타임 청소부였는데, 절도범으로 기소유예 상태였었다.
 
 
당시 혈액검사 결과 강간범의 혈액과 채트맨 씨의 혈액이 동일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채트맨 씨의 혈액은 흑인의 40%가 지닌 혈액형이었다.
 
 
A양은 몇년간 채트맨이 집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는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을 하였고, 결정적으로 그녀의 백인 이웃이 경찰에게 그를 강간범으로 지목을 하였다.
 
경찰은 종합적으로 찰스 채트먼을 성폭행 가해자로 구속하였으며, 법원에 의해 99년의 징역을 명령받아 1981년부터 기나긴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수감 그 이후>
 
(감옥에 갇힌 채트맨은 27년의 수감 중 세차례의 사면 기회를 모두 잃었는데, 그 이유는 줄곳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희생자에게 사과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때는 2001년이 되어, 텍사스 주는 수감자들에게 만약 그들의 결백함을 입증할수 있다면,  DNA 테스트의 결과물을 법적 증거로 채택하겠다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채트맨과 그의 변호사는 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법원에  DNA 테스팅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으며, 판사 John Creuzot에 의해 2002년 허가된다.
 
 
하지만 처음 시행되는 점과 여러가지 제도상의 이유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고, 감옥에 있는 채트만에게 찾아온 소식은 ' 기술적인 이유로 테스트에 들어가기에 증거물의 양이 충분치 않다' 란 소식이었다.
 
 
채트맨과 그 사이 새로운 변호사가 된 Michelle Moore는 담당 연구소에 새로운 실험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질때 까지 증거를 보관해달라는 요청을 담아 편지를 부친다.
 
그동안 채트맨은 한번 더 가석방의 기회를 받지만, 그는 끝까지 성폭행 혐의를 시인하지 않고 가석방을 거절하였다.
 
 
2007년, 그의 변호사는 연구소에서 연락을 받는다. 새로운 Y-STR 테스팅 -더 적은양의 샘플을 가지고 DNA 프로파일링이 가능한- 이 도입되었단 소식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리스크가 있었다.
 
 
이 마지막 테스트에서 무죄를 밝혀줄 유일하게 남은 생물학적 증거를 소진해 버릴수 있다는 점이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채트먼의 지난 노력은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 영영 무죄를 증명하지 못할 판국이었다.
 
 
하지만 채트먼은 리스크를 떠안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새롭게 진보된 기술의 발전은 피해자의 침구에서 발견된 정액이 채트맨의 것이 아님을 매우 명확하게 증명해주었다.
 
 
그리고 2008년 1월 3일, 텍사스 법원의 John Creuzot 판사는 찰리 채트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다.
 
 
 
2008년 2월 26일, 찰리 채트맨은 자유의 몸이 되어 공식적으로 모든 혐의를 벗게되었다.
 
 
 
 
 
이것은 그의 26년, 그리고 7개월 동안의 수감의 마침표였다 -그가 전혀 저지르지 않은 사실을 명목으로 한-
 
 
 22.jpg


<그 후>
 
찰스 채트맨은 출감 후 대학에 입학할 계획이라고 전하며, 자신처럼 무고한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유전자 검사의 중요성을 더욱 알리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주 정부에게 지나간 27년에 대한 보상을 요구했고 그에게 약 31억 5천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또한 그는
 
“범죄사실을 고백하도록 강요받았지만 나를 사랑하는 가족들은 진실을 믿어주었고, 그래서 오늘날 석방이 가능했다”고 말하며
 
“음식을 자르기 위하여 칼과 포크를 이용하는 방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고,  처음보는 휴대전화 사용법도 배우고 싶다”.라고 밝혔다.
 
 
 
=============================================================================================
<+a>
 
* 평소 시력이 나빠 안경을 착용을 하던 피해자는 범행 당시 안경을 착용하고 있지 않았다고 증언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외모나 특징을 매우 정확하게 묘사를 하였다.
 
* 또한 A양의 증언 기록을 보면 '침입자의 화를 돋구지 않기 위해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는 않았다'라고.
 
* 그녀는 조사 당시 왠일인지 침입자의 '치아'에 대한 묘사를 하지 않았다.
 
* 이는 채트맨이 과거 축구시합중 사고로 인해 앞니 몇개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했을때,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 A양은 가해자가 범행 후 가택에서 나간 후 차문을 닫고 시동을 걸어 나갔다고 증언을 하였다.
하지만 찰스 채트맨은 운전면허가 없었으며 운전하는 법조차 몰랐다.
 
* 또한 채트맨은 범행당시 근무중이었으나, 법원은 청소부라는 그의 직업의 특정상 근무시간표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 채트맨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강간 피해자는 현재 너싱홈에서 살고 있는데, 이곳으로 이사오기 이전에 채트맨 씨와는 다섯집 떨어진 곳에 살던 안면이 있는 관계였다고 한다.
 
* 유전자 검사가 도입된 2001년 이후로 달라스 카운티에서 무죄가 된 강간범 장기수들의 숫자는 30여 명이 넘으며 대부분 흑인이다.
 
=================================================================================================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