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승차거부를 싹 사라지게 만든 김판사

후진국형 法治, 법원 탓이다


이항수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K 판사가 10여년 전 지방에서 근무할 때다. 밤 11시쯤 터미널에서 택시 기사에게 관사로 가자고 했으나 너무 가깝다며 거부했다. "갑시다", "못 갑니다" 옥신각신하다 택시비를 두 배 세 배 주겠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인근 도시로 장거리를 뛰기 위해 기다리던 주변 택시기사 5~6명이 가세했다. 그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모양인데…"라고 때릴 듯이 위협하며 완력(腕力)으로 K 판사를 택시에서 멀리 쫓아냈다. K 판사는 그 택시 번호를 외워 다음 날 경찰에 신고했다.

며칠 뒤 그 택시기사에게 29일간의 구류(拘留) 처분이 내려졌다는 뉴스가 지역신문 톱으로 실렸다. 옆 방의 L 판사가 당시 몇 십만원 벌금이나 2~3일 구류에 처하던 승차 거부 기사에게 한 달간의 구류 처분을 내렸다는 내용이었다. K 판사가 경찰에 신분을 밝히지 않았고 옆방 L 판사에게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이심전심으로 수사와 즉심까지 신속히 진행된 것이다. 지역 택시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택시기사연합회장과 택시회사 사장이 법원에 찾아와 "저희가 책임지고 승차 거부를 없애겠으니 운전사를 방면(放免)해 달라"고 부탁했다. 해당 운전사는 열흘쯤 구류를 살다 풀려났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이 도시의 승차 거부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K 판사는 "한국이 법치 선진국이 못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끄럽지만 판사들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유독 불법·폭력 시위와 공권력 무시 현상이 여전한 것은 검·경보다는 법원 책임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은 대부분 불법 시위 사범이나 경찰을 폭행한 사람 편에서 결정하고 있다. 2011년 8월 민주노총이 서울역에서 남영역까지 40분간 편도 4차로를 불법 점거한 채 가두행진을 벌였는데도, 법원은 "일요일 아침이라 교통량이 많지 않았다"며 도로점거 주동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혈중알코올농도 0.1%라 면허 취소에 해당한다'고 말한 경찰관의 눈가 뼈를 부러뜨려 전치 5주의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도 "증거가 확보돼 있고 도주 우려도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제주 강정마을, 평택 미군기지, 울산·부산·밀양 등에서 벌어진 불법·폭력 사건 관련자에게도 비슷한 판결이 이어졌다.

우리와 달리 미국에서는 지난달 한국전 참전용사 출신인 22선(選)의 찰스 랭글(83) 하원의원이 시위 도중 폴리스 라인을 잠깐 넘었다는 이유로 수갑에 묶여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청이 지난주 불법·폭력 집회·시위를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습적으로 불법 집회를 개최한 전력이 있는 단체나 개인이 이름만 바꿔 집회를 신고해도 내용을 정확히 파악해 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이, 정확히는 일선 판사들이 호응해 줘야 이것도 가능하다. 현재 2738명인 판사 전원이 나설 필요도 없다. 해당 민·형사 재판을 맡은 판사 몇 명이 선도적인 결정을 몇 건만 해도 후진국형 법치문화를 빨리 고칠 수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일부 뜻있는 판사들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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