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는 그냥 사람이 많은 곳이다.
성비는 남6여4정도?
읜원충원 좀 해달라고 찡찡대길 삼개월 드디어 나에게도 후임자가 들어왔다.
엥? 근데 상태가 좀...
살짝 통통하고 짧게 자른 투블럭 머리와 직장이지만 개성을 버릴 수 없다는 듯 회색 가다마이 위로 셔츠의 깃을 빼고 있었다.
딱 인터넷에서 보고 듣던 페미니스트의 느낌이라 난 실제로 엮이는 건 처음이라 살짝 기대되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친구는 첫날부터 미생도 안봤는지 회사 웍스 클라우드 폴더를 지 입맛대로 변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두렵지 않았다. 별명이 엠퍼러인 폭군 여자 팀장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내가 꼰지르자 진짜 황제처럼 자켓을 펄럭이며 신입에 자리로 와서 첫 날부터 사고 치냐면서 내리 30분을 연달아 갈궜다.
그쯤되자 신입은 발을 베베 꼬면서 안듣는 시늉을 시작했다.
난 속으로 너무 기뻤다. 왜냐하면 나또한 저걸로 개털렸었기 때문에...
팀장님은 ㅇㅇ씨 지금 내 말 들어? 라고 했고
페미는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이건 은유가 아니고 진짜 주먹을 쥐고 떨었다.
팀장님은 극대노해서 주먹을 왜 쥐어요? 나 한 대 칠라고? 라고 소리쳤고
옆부서에서도 처다보자 그녀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라고 했다.
신입은 자리에서 숨죽여 울고 있었고 팀장님은 나에게 슬쩍 와서 "달래줘. "
한 마디 하시고 가셨다.
난 비타500 두개를 들고 그녀 자리로 가서 음료수를 내밀었는데
"전..흑흑... 단거...흑흑 안 먹어요..."라고 해서 빈정이 상했지만 그래도 데리고 나가서 손수건도 주고 잘 달래주었다.
대화하면서 느낀건데 그녀는 반골 혹은 청개구리였다.
무슨 말을 해도 의도를 집어넣어서 확대해석 하는 버릇이 있었고
내가 첫작품 만드는거라 힘들겠다고 얘기하자 지혼자 첫작품을 처녀작으로 알아듣더니 그런 단어를 쓰냐며 나를 질책했다.
그렇게 조금 짜증은 나지만 일은 하긴 해서 큰 트러블 없이 한달이 지나가다가 사건이 터졌다.
여사원 하나가(30대후반) 결혼한다고 초대장과 초콜렛을 같이 돌리고 있는데 다들 축해해~하며 덕담을 주고 받을때 그녀 차례에서
"결혼 왜 하세요. 커리어도 끊기고 남편 서포트만 해야되는거 아닌가요?"
라는 희대의 미친 소리를 했고 얜 컨셉이 아니라 진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분싸가 될 줄 알았는데 여직원이 손에 초대장을 쥐어주면서 "현실을 살아야돼 ㅇㅇ씨. 이럴땐 축하해주는거야" 라고 했고
또 페미신입은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지만 여직원은 신경 안쓰고 할 거 다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난 페미는 사실 현실에선 최약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측은한 마음 반, 궁금한 마음 반으로 잘해주면 바뀔까? 라는 의문이 들었고
심심할 때 마다 가서 페미친구를 응원해주고 칭찬해줬다.
그랬더니 실제로 그녀는 바뀌기 시작했다.
먼저 다가와서 업무 사항을 물어보기도 하고 아이디어도 내고 무엇보다 특유의 똥씹은 표정 말고 가끔 웃었다.
담배피면서 상사들과 얘기하자 재밌겠다며 다들 페미 친구에게 잘해줬다.
변화는 외형에서 부터 찾아왔다.
머리가 길어지기 시작했고 팀장은 투블럭이 자랄때 까지만 모자 써도 된다고 허용까지 해줬으니 사내분위기가 밝아진걸 느낄 수 있었다.
좆같은 레슬러나 올드팝 싱어송라이터같은 깃이 큰 셔츠도 슬슬 안입었다.
그런데 씨발 사건은 또 일어나 버리고 말았다.
너무 잘해줬더니 빼빼로데이에(현재 진행중) 뭐하냐고 그녀가 물어봤다.
난 아직 답변을 못했는데 고급스럽게 거절하는 방법을 모르겠다.
너희는 주변에 페미니스트가 있다면 잘 해주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