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생년월일 : 1915년 12월2일(현재 100세)
왕실 직위 : 친왕
직업 : 동양사학자
경력 : 2차세계대전 일본군 육군 소좌
[일화]
1950년대 후반부터 기원절(紀元節)의 부활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자,
학자적 입장에서 진무 덴노의 역사적 사실성을 부정하여 반대하며 <일본의 새벽(日本のあけぼの)>라는 책을 간행했다.
빨갱이 왕자님이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이때.
주로 극우파인 이들은 다카히토 친왕을 극렬 비난하면서 그를 황적에서 파낼 것을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으며
우익 단체는 미카사노미야 저택 앞에서 면담을 요구하며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의 행위에 대해 한국과 중국에 사과해야 한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발언을 2차례 가량 하였다.
이 발언으로 극우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군복무 시절에 지나파견군에 재직하고 있었음에도 1972년 중일수교 직전에 중국 정부의 초청을 받은 바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731부대에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곳이 포로를 통한 생체실험을 진행하는 부대임을 알고 구출을 계획하였다.
그는 731부대의 책임자인 이시이 시로에게 야외실험을 하기 위해 포로를 데려가겠다고 한 뒤
공항으로 군인 포로와 민간인을 인도해 비자를 발급해주고 탈출시켰다.
이때 그가 구출된 이들에게 한 말은,
“오늘 실험은 귀관들이 중립국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다.”
비록 이미 실험체로 쓰인 피실험자는 구출하지 못했지만
나머지 포로로 끌려온 군인과 민간인들은 그 덕분에 살아남아 중립국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