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지 3년차에 참치에 밥 비벼먹다 참 비참한 기분이 들어서 끼적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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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12 10:30
도서관에서 공부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속이 허전했다.
저녁을 도서관앞 분식집에서 떡볶이 몇개 주워먹는걸로 때웠더니 그런가보다.
주차장에서 출발하면서 혹시나 애가 깰까 싶어 애 자는지 물어봤더니 답이 없다. 항상 그렇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니 기척이 없어서 침실방을 살펴보니 애엄마랑 애가 자고 있었고 집은 애를 보느라 치우지 못한 살림살이가 널부러져있었다.
조용히 치우고 있는차에 집사람이 깨더니 몇시냐고 묻길래 10시라고 하니 대번에 일어나서 드라마를 보러간다.
애엄마한테 배가 고프다고 하니 답이 없다.(나중에 얘기하길 "뭐 시켜줄까"라고는 했단다. 티비소리에 듣지는 못했지만.)
순간 "드라마보는 사람한테 밥차려달라는 내가 병신이지"라는 말을 했다.
그럼에도 집사람은 티비에 시선이 고정되있었다.
그러다 잠시뒤 마지못해 부엌으로 가서 귀찮은듯 "밥해줄게"라고 한다.
그 꼴이 더 보기 싫다. 드라마 못보게 한다고 온갖 짜증을 낼게 뻔하니까.
나는 그냥 됐다고 내가 알아서 먹을테니 드라마 보라고 거절했지만
애엄마는 슬슬 본인이 하기 싫은 것을 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넋을 풀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느집이 밤10시 넘어 밥차려달라하냐고.. "
"우리 아빠도 엄마한테 그런적이 없는데.."
"내 주변에는 다들 그래. 어디 그런데가 있어?"
"아 그러니까 그냥 들어가서 드라마보시라구요.. 왜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해..그냥 하지마. 니가 하기 싫은거 강요안한다. 하지마."
그렇게 감정섞인 말이 애가 깨지않을 만큼의 언성으로 오가고
내가 밥하지말라는 말을 열번쯤 반복할때쯤 아주 귀찮고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다시 티비를 보러간다.
결혼을 하고 얼마 뒤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는 바람에 제대로 된 신혼생활도 느껴보지 못했고 애를 키우느라 고생하는 애엄마에 대한 어설픈 동정으로 "내 밥은 신경쓰지말고 애 잘먹이고 너 밥부터 챙겨먹어.."
그리고 그 말을 철썩같이 3년이 다되도록 일관성있게 지키고 있는 애엄마를, 지금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가 밤10시에 집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보지 않았을 이 드라마를 열정적으로 보고 있는 이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를 대하는 것인가 싶다.
남편이란 사람이 밤까지 공부하고 왔을때, 의례적이다 못해 상투적인 말, 가령 "뭐 먹을거라도 해줄까"라는 말조차 할줄 모르고, 아니 그런 개념자체가 없는 사람에게 내가 무리한 걸 바란 것 일까.
마지못해 냉동실에 얼려놓은 밥을 꺼내서 전자렌지에 돌려서 참치에 밥비벼 먹는 것은 참 비참한 일이다. 애엄마가 앉아있는 쇼파 옆에서 먹고 있으니 아까 한 얘기를 또 하기 시작한다. 성질낼 힘도 없다 이제는.
직장동료들끼리 집안에서 어쩌구저쩌구 시시콜콜한 사는 얘기할때면
그 비참함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얼마전 결혼한 남자직원 한명이 당연하다는듯 아내가 해주는 밥상이야기를 할때면 부러운만큼 내 자신이 비참해진다.
아무리 늦어도 아침은 꼭 먹고 가야한다며 한사코 아침밥상을 차려주는 그 직원의 아내분의 모습을 상상하다가
아침에 내가 출근을 하는지 마는지 늦잠을 자는지 마는지 그저 일어날기색도 없이 입벌리고 자고 있는 "나의 아내"를 보며 그저 조용히 잠깨시지 않도록 쥐새끼마냥 조용히 빠져나와 속쓰린 허기를 느끼며 출근하자마자 컵라면으로 때우는 아침이면 더욱 더 그렇다.
그러다가 울컥 내가 뭐하러 결혼을 한 걸까. 총각때보다 더 못챙겨먹고 다니는 이 꼬라지가 무어란 말인가.
삼시세끼중에 단 한끼조차 아내라는 인간이 차려주는 밥상은 구경조차 해본적이 없고, 날밤새며 일해 돈몇푼 밖에 못주는 내가 한심하기 짝이 없고.
야금야금 생활비를 퍼먹는 아내는 돈을 어디다가 뿌리고 다니는 건지 알길이 없으며, 본인이 일하던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이 얼마인지는 절대 말하지 않으며. 내 고정지출(보험,통신비,기름값,밥값)을 빼고 모든돈을(그래봤자 200만원도 안되는 푼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애엄마한테 주면 돈이 적다며 늘어놓은 감정적인 푸념을 들을때마다 내 스스로가 불쌍하고 한없이 화가 난다.
이 여자는 가정이라는 틀속에서 남편의 아내라는 자각이 있는걸까.
둘째가 무럭무럭 크며 불러오는 저 여자의 배를 보면 한없이 미워지기 시작한다. 괜시리 다 밉기마련이다.
그러다 대뜸 치킨을 시켜먹자고 한다.
내가 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니 조용히 닥치고 있지만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오를텐데.
전세대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 계약금때문에 은행가서 6100만원을 대출한걸 불과 어제 같이 봐놓고선.
빚을 갚는건 오로지 나의 몫인가보다.
하지만 나의 퇴직후 연금은 공동의 소유일테고. 본인의 퇴직금과 중간중간 프리랜서로 번 돈의 행방에 대해선 내가 감히 알려고 해서도 안되고 알 수도 없는 일인 것이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이유를 알지만 뭐하나 할 수 있는것이 없다는게 곱씹을수록 더 슬픈 일이다.
남들과 비교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고 도움될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래..먹고 살자고 하는데 그 먹는거 하나에 이렇게 소심한 섭섭함을 끼적이는 내가 부끄럽지만
이런 내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되려 화를 내는 "나의 아내"라는 존재가 하루가 다르게 낯설고 불편하다.
미간를 찌푸리며 억지로 차려주는 밥..이라고 해봤자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반찬을 통째로 꺼내다주는 차가운 반찬 몇개.. 그것도 재래시장이나 마트에서 사다나른것들.. 손이 잘가지도 않는 그런 것들. 성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눈꼽만치도 느낄 수 없는 밥아닌 밥을..
어쩌다 한번 먹게 되면 그게 또 그렇게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게 모래를 씹어먹는 듯한 기분이라 그런가보다.
내가 지금 밥을 달라고 한게 잘못된 일인가 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나에게 반문하는 상황은 언제나 그렇듯 익숙하지가 않다. 그리고 이 여자는 3년이 다되가지만 편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