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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동훈(29)씨는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려진 코피노들의 절박한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기 위해 필리핀 현지에서 코피노 가정의 삶을 카메라에 담아 내고 있다. ⓒ 김건표 |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성동훈 씨(29). 사비를 털어서 카메라 한 대를 들고 필리핀 세부로 날아갔다. 코피노(kopino, 한국인 Korean과 필리핀인 Phillippino의 합성어)들의 삶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다. 3개월 전에 필리핀 세부로 들어 갈 수 있는 항공료만 챙겨서 날아갔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떠날 때는 한 달만 있다가 돌아올 계획을 세웠다. 세부현지에 도착해서는 사정이 달라졌다.
코피노 가정을 어렵게 수소문했다. 카메라로 그들의 삶을 앵글로 찍어내고 싶었다.
셔터를 누를 때는 가슴이 떨리고 손가락이 움직이질 못했다. 뷰파인더로 떨어지는 눈물이 많아졌다. 카메라를 들수록 다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이들을 두고 다시 비행기를 탈수가 없었다. 자신의 작품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마음이 달라졌다. 사진 속 주인공들인 이들을 위해서 다큐멘터리로 사진을 남기겠다고 마음을 고쳤다. 돈은 바닥이 났다. 이들을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었다. 돈을 마련해 세부로 다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피곤한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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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훈씨는 한국인 아빠들은 지금 한국에서 뭐하고 있을까라며 그들의 무책임함에 한 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 김건표 |
“3개월 동안 코피노 가정을 찾으러 곳곳을 누볐습니다. 내 작품을 위해서 갔지만 이들을 보고서는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아이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어요. 이제는 그들을 위해서 사진기를 들고 다시 들어가려고 합니다. 버티려면 기본 생활비라도 있어야 하는데 급하게 돈을 좀 구하려고 나온 겁니다. “
그는 며칠 후 다시 세부로 돌아간다. “비행기도 가장 저렴한 항공료로 타고 가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대기하는 중 입니다.”
그는 목이 말랐는지 들고 있던 생수통을 들었다.
“한국인 아빠에게 버려진 코피노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보시면 누구나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그만큼, 말로 표현을 못합니다. 이 아이들의 아빠들은 지금 한국에서 뭐하고 있을까요?. 한숨만 나옵니다.”
작은 눈매에서 흐르는 절망의 빛이 표정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눌러쓴 모자로 표정을 가린다. 그가 말하는 필리핀은 이렇다.
섬으로 이루어진 필리핀. 지형의 특성상 코피노들의
통계는 추산하기가 어렵다. 대략 1만 명 가량 될 것이라는 예측뿐이다.
세부에서만 1천여 명의 코피노들이 힘겹게 살고 있다. 코피노 가정은 유독 극빈층들이 많다. 분유 구할 돈이 없는 가정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젖을 물리지만
모유도 마른지 오래다. 아이들은 엄마 젖 가슴을 만지작거리면서 배고픔을 잊는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달래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빠의 빈 존재감은 무감각해 졌다. 그래도 아이는 방안에서 놀면서 하루에 수 십 번씩 아빠를 소리 내서 부른다. 그 소리가 다시 빈 메아리가 돼서 아이들의 마음을 휩쓸고 간다. 그 만큼 이들의 삶은 절박하다.
“이들의 삶이 절박합니다. 살다가 애가 태어나면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애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활비는 고사하고 모든 연락처를 끊고 잠적합니다. 이들을 두 번 죽이는 거죠.”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엄마는 그 말 한마디에 희망을 놓지 않고 아이들을 키운다. 소식이 끊긴지 몇 년째. 근근이 부쳐오던 생활비도 바닥이 났다.
“떠날 때는 문제가 생길까봐. 몇 달 동 안은 생활비를 보내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요. 한국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태어나면 필리핀에서의 기억이 무서워지는 겁니다. 잠적하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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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훈씨는 한국으로 떠나 버린 코피노 아이들의 아빠는 대부분 유학생 신분으로 만났거나 관광객. 사업차 현지에 머물면서 필리핀 여성과 관계를 맺고 한국으로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 김건표 |
아이의 엄마는 전자우편과 핸드폰으로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울리지 않는다. 보낸 전자우편 주소는 몇 년째 주인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불안했다. 아이의 엄마는 한국인 남편이 떠날 때 손에 쥐어준 편지 봉투를 들었다.
“이 여성들이 힘겹게 현지 코피노 모자가족 후원회를 찾아요. 남편이 떠날 때 주고 간 편지봉투를 손상될까봐 뜯지도 않고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연락이 안 되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에 찾아오는 겁니다. 그런데요. 적힌 편지내용을 보면 기가 찹니다. 입으로 담기 힘든 욕설을 섞고 자신을 찾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참 기가 막히죠.”
편지를 읽어본 후원회 직원은 눈물을 삼켰다.
“그런 내용을 어떻게 말해 줍니까? 주소가 바뀌었으니까 편지를 태워 버리자고 설득하면 딸의 아버지가 남긴 흔적인데 태울 수 없다고 울면서 말합니다. 도저히 그 편지를 쥐어서 보낼 수 없어 설득해서 태워버리잖아요. 이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도 울고 가슴이 갈라집니다. 아이의 엄마인 필리핀 여성은 그래도 한국인 남편을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가고 있어요.”
한국으로 떠난 버린 코피노 아이들의 아빠는 대부분 유학생 신분으로 만났거나 관광객. 그리고 사업차 현지에 머물면서 필리핀 여성과 관계를 맺고 한국으로 떠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카메라 앵글로 담고 싶었다. 그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카메라를 들고 이들의 삶을 담아내서 세상에 내놓고 싶었다.
“제가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 더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카메라만 달랑 들고 필리핀 세부로 날아온 겁니다. 한국에서 생활을 잘하고 있는 아이들의 아빠들이 이런 참혹한 현실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자식이 아빠가 보고 싶어 매일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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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훈씨는 카메라만 달랑 들고 필리핀으로 간 것은 코피노, 이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세상에 더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김건표 |
아이들의 엄마 대부분이 세부와 떨어진 마닐라의 클럽에서
양육비를 모은다.
클럽에서 벌어오는 돈으로 힘겹게 생활을 해 나간다. 그게 이들의 유일한 수입이다. 아이는 그대로 방치되거나 할머니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이 많다.
5살의 코피노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코 속으로 50원짜리 크기의 수은 건전지가 코 속으로 들어갔다. 할머니는
수술비 800페소(2만원)가 없어서
병원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손으로 빼보려 하면 건전지는 더 깊숙이 멀어져 갔다. 그렇게 3주 동안 아이의 몸속에는 수은 건전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수은 건전지의 누액이 흘러서 아이의 코 속에 타들어가는 지경이 되어서야 코피노 봉사단체를 찾아 온 겁니다. 다행히 수술을 받고 건강해 졌지만, 이들의 삶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국민의 70%가 하루 42페소로 생활을 합니다. 우리 돈으로 1100원입니다. 필리핀에서 물 한 병이 12페소하고 인스턴트 라면이 9페소 정도 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들의 생활이 이토록 어렵게 이어갑니다. 코피노 가족들은 이중에서 더욱 심각한 극빈층으로 살아갑니다. 떠난 한국 사람들에게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가 말하는 얘기는 이렇다.
10년 전, 전라북도에 위치한 작은 마을에 국제결혼으로 시집을 온 필리핀 여성이 한국남성과 결혼해서 아이를
출산했다. 남편의 폭력으로 견디지 못한 여성은 필리핀으로 돌아갔고, 남편은 필리핀으로 와서 그 아이를 빼앗아 갔다.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여성을 다시
임신을 시키고 그 아이가 필리핀 현지에서 아빠와 떨어져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여성이 결국에는 당뇨병을 얻게 됐어요. 한국으로 가버린 아이 생각에 가슴이 메어진다고 하더군요. 필리핀에 남겨둔 아이를 보면 더 이상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든다고 말을 합니다.“
그는 긴 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간다.
“한국 가족으로 전화가 걸려왔답니다. 경비 일체를 부담할 테니 배 속의 아이를 지우라고 협박을 했답니다. 그 여성은 당연히 그 요구를 거부했겠죠. 5살 된 아이를 양육하기 위해서 왕복 4시간 걸리는 거리를 왕복하면서 전화상담원으로 힘겹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듣고 말하는 사람도 눈을 감았다.
“어떤 분들은 저한테 혼자 고귀한척 하지 말라고 해요. 한국에도 배고프고 어려운 아이들이 수 없이 많은데 왜 들춰내지 않아도 될 일을 거들먹거려서 국가
이미지에 왜 먹칠을 하느냐고 합니다.”
말하는 도중 감정이 견디기 힘들었는지 상의를 벗는다.
“우리들의 무책임으로 내팽개쳐진 코피노 가족들의 고단한 삶을 단 한 시간 만이라도 그 분들과 생활을 해 본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반문해 보고 싶습니다. 저도 부족한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지만 이것으로 그분들을 위해 따뜻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서 시작하게 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