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건에 대한 서울대 대나무숲 글

< 살아男지 않고 있어 >


인권 감수성이 그리 뛰어난 당신들은 공감을 넘어 남자들의 책임과 미안함을 요구하고 있네요.

그런 당신은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때, 구파발 의경 피살사건 때 얼마나 관심을 가졌나요?
아니면 언론엔 이제 보도조차 되지 않는 사상자들과 자살자들에 대해선 관심을 가질 수야 있었나요?

강남역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일상적 공포라서 비대칭적으로 반응할 수 밖에 없나요?
아뇨, 전술한 문제들은 슬프게도 강남역 만큼이나 남자에게 일상적인 공간인걸요. 
일상적인 죽음이고요, 국방부는 작년에 자살자가 56명 밖에 안 되었다며 "기념발언"을 남기기도 했을 만큼.

저건 여자가 가해한 행위가 아니니 온도차가 있는거라고요?
아뇨, 강남역 사건도 그 가해자가 XY 염색체를 공유할 뿐 나머지 남자와는 하등의 개인적 연련성이 없는걸요.
애초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는 연좌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걸요.

그 가해자가 여성혐오적 사상을 가지게 만든 사회구조가 문제고, 그 여성혐오적 사회문화의 변화와 반성을 주도하지 않은 일반 남성도 미안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요?
아뇨, 내곡동이나 구파발 사건도 기형적인 병역문화와 제도가 문제지만 여성들은 병역제에 참여한다거나 그 개선에도 주도적 역할을 하지 않는걸요. 수백 수십의 사망자가 발생해 왔지만 대중은 무관심했고 문제상황의 타개에 필요한 정치적 압력은 아주 미약한걸요.

여자들이 "남자라서 죽어가는" 국면에 미안해 할 책임은 당연히 없죠.

우리들은 모두 어쩔 수 없는 인지적 존재라서 본인에게 가까운 위험을 크게 인식하고 먼 위험을 작게 인식하죠.
그 결과 본인에게 가까운 위험부터 해결해 달라고 요구해요.

그러니 부디 각자의 온도 차를 보면서 인권과 평등이념을 모욕적으로 휘두르지 마세요. 마치 자신은 박애주의의 화신이라도 되는 양, 이 문제에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게 인권의식의 부재라도 되는 양 비난하는 건 멈춰주세요.
당신이 정의이고 나머지가 부정의한 게 아니에요, 이번엔 당신들이 문제에 가깝고 저번엔 나머지가 문제에 가까웠을 뿐.

그러니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공감에 근거한 참여를 요청하시고, 죄책에 근거한 반성은 요구하지 마세요.

그것이 죄책이라면 당신도 이미 죄지은 자에요. 

 

 

출처: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글 참 잘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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