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천민에서 장군까지 오른 한 남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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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6년 광주 출생. 

할아버지 말단 병졸, 아버지 말단 병졸, 어머니 나주 노비출신. 노비종모법에 따라 노비의 신분으로 태어남.

일찍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하급 아전으로 있던 17세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주 목사 권율 장군 휘하로 징발됨.

주로 지휘관 심부름, 연락책 등의 일을 함

어느날 17세의 소년은 곰곰히 생각을 함..

'나가 말이여.. 그래도 불알달고 태어났는디 전쟁통에 왜놈 잡것들 목아지 한 번은 따봐야 하는 것 아니여?'

그리고 자청하여 서너명과 동행하여 적군 진지를 염탐하고 더불어 왜놈 머리까지 베어들고 돌아옴(원래는 혼자 간다고 po패기wer 부렸다가 까임)

어느 날 선조가 피난해있는 의주로 장계를 올려야 하는데 왜군의 포위가 두려워 아무도 가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음. (이 때 전황은 평양까지 먹힌 상태..) 그러자 패기의 소년이 조용히 손을 든다

"나가 다녀올라요"

그리고 한마리 조선산 미친말처럼 왜놈들의 포위를 뚫고 달려 전라도 광주에서 평안도 의주로 장계를 전달함.. 

이 때 소년에게 보고를 받으며 가만히 지켜보던 병조판서 이항복은 이 소년의 싹쑤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이윽고 한가지 결심을 한다.

'허허 요놈보소.. 

.. 한 번 키워봐?'

이항복은 이 소년을 의주에 새로 차린 자기 집으로 데려가 마치 커스 다마토가 타이슨을 키워냈듯이 먹이고 재우며 본격 하반기 9급 무관직 대비 집중교육을 시킨다

'그해에 만상에서 과거를 설행하도록 명하여 공은 무과(武科)에 급제하였으며 선조[宣廟]께서 공을 불러 보시고 장려하며 유시하기를, “나이가 아직 어리니 조금 더 자라면 크게 쓸 만하다.”고 하였다.'

이항복은 노비였던 소년에게 충신(忠信)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선조는 그를 노비에서 면천시켜준다.

이후 소년은 임진왜란 동안 호남과 부산을 오가며 왜정을 정탐하였고 평양성 수복 전투에도 참전하여 활약하였다.

왜 란이 끝난 후에는 명나라에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알리는 주청사의 일행으로 참여하는데 충신의 실제 임무는 당시 무섭게 성장하고 있었던 여진족의 정세에 대해 파악하는 임무였다.(아무리 배운 게 도둑질이라지만 염탐질, 남들 몰래 뭐 파악하기 이런것만 하는 충신찡ㅠ)

그리고 이 때 당시 주청부사인 장만과 운명적인 만남을 함. (이 장만이란 인물은 후에 전시에 임명되는 최고사령관인 도원수에까지 오르는 인물로 충신과는 나이와 신분을 떠나 평생에 걸쳐 의형제와 같이 지냈으며 충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그를 변호하기 위해 조정에 '나 때문이다 충신이 잘못업쪄요 ㅠㅠ' 라고 까지 한 사람임.)

충신은 주청사에 다녀온 후에는 조산보 만호, 포이 만호에 임명되어 북방에서 군관생활을 하였는데 스승인 이항복이 인목대비 폐모론에 반대하다 유배되자 자신도 관직을 사직하고 유배지인 북청까지 스승을 수행하였고 결국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이항복이 세상을 떠나자 상주로써 정성스레 상을 치루고 초야에 뭍혀 조용히 살아간다. 

그러다가 충신이 장만에게 불려가 그 밑에서 군관생활을 다시 하던 무렵, 후금과의 전투에서 강홍립이 패하자(일부러 투항했다는 말도있는데 그건 넘어갑니다) 후금에 사신을 보내는 일에 적임자를 누구로 임명하느냐를 두고 조정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때 광해군이 셧더마우스 시전함.

"다 아갈 닥치고.. 그 옛날에 겁대가리 상실한 놈 하나 있었자네. 장만이가 데리고 있다고 하던데 아 이름이.."

"정충신이옵나이다 전하"

"그래그래 충신이.. 그 놈 오라고 해봐"

' 공이 건주에 들어가서 여러 대추(大酋)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그들도 모두 공의 말에 감복하여 공에게 묻기를, “너희 나라는 매양 우리를 적(賊)이라고 하는데 어째서인가?” 하였다. 이에 공이 말하기를, “너희들이 천하를 훔치려고 마음을 먹으니 적(賊)이 아니고 무엇인가?”라고 하자, 대추들이 웃기만 하고 더 이상 트집을 잡지 못하였다. 

이에 그 요령(要領)을 모조리 얻어가지고 돌아와서 고하였고 또 말하기를, “이들은 장차 천하의 걱정거리가 될 것입니다. 어찌 우리나라만의 우환(憂患)이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렇게 되었다.'

충신은 1621~1622년 동안 후금을 오가는 사절로 활동하며 

1. 명과 후금 사이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2. 후금의 침략에 반드시 대비할 것 

등의 의견을 조정에 피력하였다.

이 후 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는 명나라를 도와 후금을 치겠다며 북방군을 편성하여 장만을 도원수에 이괄을 부원수로 임명해 1만8천명의 대군을 북방으로 보낸다. 그리고 당시 평안도에서 평양 다음 중요 도시인 안주에는 충신을 안주목사 겸 방어사로 임명한다.

그 런데 다음해인 인조 2년 1624년. 인조가 즉위한지 채 1년도 되지도 않은 그 해 1월, 인조 반정의 공신이자 북방군의 부원수인 이괄이 역모를 일으킨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사실 난의 발단은 서인 세력의 무고한 거짓 고변이었는데, 이괄과 아들이 북방 군관들과 함께 난을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 이었다. 

사실 이괄은 자칫 실패할수도 있었던 인조반정에서 작전지휘를 맡아 과감하게 성공시킨 핵심 공신이었지만 기회주의적인 공신들에게 밀려 반정의 포상에서 2등공신에 임명되었고 딱히 정치색이있는 인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를 껄끄러워 한 서인들이 정치적 공작을 펼친 것인데, 이에 분노가 폭발한 이괄이 실제로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괄은 자신의 군영에 찾아온 금부도사를 죽이고 잠복부대를 보내 체포된 아들 등을 구출한 후 마침내 한양을 향해 진격한다.

그 러나 이괄의 억울한 사정과는 별개로, 북방군의 수장이 장만이긴 했지만 최초 편성된 북방군 병력인 1만8천명에서 이괄이 인솔해 이끌고 간 병력이 1만3천명이었고 이 북방군은 왜란 때 활약한 정병들과 항왜(투항한 왜인) 등으로 구성된 정예군이었기 때문에 조선의 입장에서는 이괄한테 져도 문제였고 이괄을 물리쳐도 문제인 진짜 뭣같은 상황이었다.

이괄은 유능한 군사령관 답게 앞길을 막는 대항군들을 모조리 괴멸시키며 19일만에 인조가 피난하고 없는 도성까지 함락시킨다.

처음 군사를 일으킬 때 이괄은 부하 장수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른 자들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충신 이 자만은 조심해야한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슴니다 ( .... )

난을 일으킨 이괄 대신 충신이 부원수에 임명되어 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안현과 무악재에 진을 치고 이괄과 대치한 것이다.

사실 충신은 한양에 당도하기 전 황해도 황주에서 이괄의 거짓 계략에 한 번 대패를 하였었는데 다행히 장만의 도움으로 군사를 추슬러서 다시 추격을 해 온 것이다.

총지휘관은 장만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충신과 이괄의 대결이었고 충신의 설욕전이었다.

이괄을 잡기위해 충신은 몸을 사리는 늙은 장만을 닥달하며 마침내 무악재와 안현 일대에 진 친 것이다. 

시간을 끌면 반군인 자신들이 불리하단 걸 알고있는 이괄은 날이 밝자 군사를 여러갈레로 나누어 무악재를 포위 돌격하였고 관군 또한 무악재를 지킨 채 별군을 빼내어 반군의 뒤에 매복시킨다.

반군의 선봉은 정예포수와 항왜의 맹공이었다. 관군은 험지를 선점하고 굳세게 방어했지만 이괄군의 기세에 밀려 계속해서 방어선이 밀려났다.

그러다가 양군이 죽기를 각오하고 맹렬하게 싸우던 중 이괄군의 장수 이양이 전사하고 한명련이 화살에 맞자 "이괄군이 패했다!" 라고 소리치며 총공세를 감행했고 반군은 마침내 패퇴했다.

미리 매복시켜놓은 별군에 퇴로를 차단당하고 기병대가 추격하여 앞에서 들이치자 이괄군은 마침내 괴멸되었고 도망치던 이괄은 이천에서 부하장수 기익헌과 이수백에게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정사가 아니라 청성잡기에 실린 야담이지만 전투가 끝난 후 정충신은 그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고 한다.

"전투는 다행히 이겼으나 이괄마저 죽는다면 북쪽 오랑캐는 누굴 시켜 막게 한단 말인가"

이 후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부원수에 다시 임명되어 임진강에서 적을 막으려고 했으나 후금군은 강화도로 피신한 인조를 대신해 원창군을 인질로 삼아 형제의 관계를 맺고 철병하였다.

전후에는 후금과 마찰을 만들지 말 것을 상소했다가 조정에서 탄핵을 받아 인조의 비호에도 유배당하였다.

말년에는 포도대장과 경상병마절도사에 역임하기도 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자 사직하고 물러났다가 1636년 61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 가 죽은 그 해 겨울에 후금이 다시 한번 조선을 침공하니, 이른바 병자호란이다. 충신이 죽기 전에 병세가 위독한데도 불구하고 주전론이 득세하는 조정의 상황을 보면서 나라를 걱정하며 ‘국가의 존망이 올해 안에 결판날 것이다’ 라고 우려한대로 된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인조는 계획되었던 연회를 취소하고 ‘팔 다리를 잃은 듯 하다’ 라고 탄식하였다.

충무공 정충신(鄭忠信) 장군 (1576~1636)

충무공은 500년 조선 역사동안 단 9명에게만 내려진 시호이며 금남군이란 그의 군호는 광주광역시의 금남로의 유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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