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고산자 김정호를 주제로 한 영화가 나왔더라고. 국뽕으로 유명한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고산자, 대동여지도> 라는 영화야.
나는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는데 혹시 이 영화를 볼 생각인 펨창들은 이 글을 먼저 읽고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해.
우선 김정호의 신분에 대해 알아볼게. 영화 예고편을 보면 천한 지도꾼이라는 표현을 썼더라고. 지도 만드는 일을 천하다고 하는건지, 아니면 김정호 본인의 신분이 낮은 인물이라 보는건지 확실히는 모르겠어. 다만, 분명한것은 실제 역사에서 김정호의 신분은 딱히 낮은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야.
일단 현재 알려진 김정호의 신분은 몰락한 양반(잔반이라고 하지) 또는 중인 출신이야. 어쨌든 딱히 부를 누리는 신분은 아니었다는거야. 대신, 당대에 유명한 사람들과 친분이 아주 두터웠어.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와의 교류가 두터웠을 뿐만 아니라 실학자인 혜강 최한기와는 그야말로 절친이었어. 김정호는 최한기가 만든 세계지도인 지구전도, 지구후도 (아래 사진) 의 목판인쇄를 담당했고 최한기는 김정호가 만든 청구도(지구전,후도 아래 사진)의 서문을 작성해줬어.
이게 지구후도, 지구전도이고
이게 청구도야.
지구전도와 청구도에 대해서는 아래에 다시 설명해줄게.
어쨌든 지금까지 보면 권력과는 거리가 먼 실학자들 하고만 친하게 지낸듯 하잖아. 사실 그렇지는 않았어.
이 근엄해보이는 관리는 신헌이라고 하는 사람이야. 바로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데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야.
당시 삼도수군통제사였고 이후에는 병조판서에 판중추부사까지 하고 나중에 강화도조약때 조선대표로 협상에 나선 대신이야. 참고로 무과 출신인데 추사 김정희의 제자야. 아까 김정호가 김정희랑 친했다고 그랬잖아. 이 부분은 내가 하는 추측인데 어쩌면 스승 김정희에 의해 김정호와 연이 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 물론 내 추측이지만.
암튼, 김정호의 신분과 인맥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쓰도록 할게. 더 쓰다가는 내용에 끝이 없겠다.
이번에는 대원군 얘기를 좀 해야될 것 같아. 알다시피 철종 사후 조선 왕실에서는 그 다음 왕이 누가 될 것인지 고민에 빠져있었어. 특히 안동 김씨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어. 철종은 5남 6녀를 낳았지만 나중에 박영효와 혼인하는 영혜옹주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렸을때 병으로 죽었고 철종마저 30대 초반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으니까. 직계 왕통이 끊겨서 철종을 데려온건데 철종이 죽으면서 또 직계 왕통이 끊긴거야.
흥선군 이하응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있었어. 그리고 마침 재집권을 노리고 있던 조대비를 찾아갔고 정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기 아들 명복이(철종이랑 18촌 차이야. 이정도면 거의 남남이지.) 를 익종(효명세자, 요즘 하는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맡은 역할이야.)의 양자로 들이기로 쇼부를 보고 곧 철종 다음의 왕으로 즉위해. 바로 고종이야. 참고로 이때 안동김씨도 딱히 고종 즉위에 반대하지는 않았고 따라서 대원군이 소싯적에 안동김씨 밑에서 수모를 당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 집권 이후에도 일부나마 권력을 유지해.
고종 즉위 이후 집권한 대원군이 실시한 내정 개혁에 대해서는 잘 알거라고 생각해. 서원을 정리하고, 환곡제를 폐지하고, 치안도 정비할 뿐만 아니라 군사까지도 키웠어. 만주에서 말을 수입한다거나 일본에서 서양식 화포를 수입한다거나 훈련도감의 정원을 늘리는 식으로 말이야. 또 여담인데 야사이긴 하지만 서양의 증기선을 본따서 조선의 기술력으로(물론 위 사진의 해국도지라고 하는 중국에서 만든 서양문물을 소개하는 책을 많이 참고하긴 했어.) 숯으로 움직이는 화륜선이라는걸 만들었는데 이게 한 3m쯤 가다가 멈췄다고 해.
아무튼 이런 내정개혁을 하면서 대원군은 또 한가지 일을 벌이기로 했어. 바로 흩어져있는 지도를 하나로 합치는 일이야. 사실 지도를 만드는 일은 어느 왕이나 다 중시했던 사업이야. 대표적으로 영조와 그 뒤를 이은 정조가 집권하고서 한 일이 각 군현에 명령해서 그 지방의 지도를 만들도록 하고서 그 지도들을 규장각에 보관했어.
위에 있는 해동지도(영조때 만든 지도로 추정 돼)가 대표적인데 이런 지도들은 초행길을 떠나야 하는 암행어사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목적도 있었고 그 지방의 행정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도 있었어. 그리고 인접한 청과 일본도 지도에 담은 해동지도가 그랬던 것처럼 주변국가의 정세도 파악할 수 있었고. 그러니까 일반적인 대동여지도 비하인트 스토리의 오해처럼 권력층이 외세를 두려워해서 굳이 정교한 지도를 불태울 필요가 없었던거야. 오히려 중시했지.
대원군이 집권한 당시 조선에는 비변사에서 보관중인 지도와 규장각에서 보관중인 지도가 서로 나뉘어져 있었어. 이 지도들을 하나의 지도로 만들 필요가 있었어. 그리고 마침 당시 조선에는 이 일에 아주 적합한 인물이 있었지. 바로 김정호야.
물론 대원군이 김정호에게 직접 일을 맡긴건 아니야. 대원군은 신헌에게 일을 맡겼어. 그리고 신헌이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적격인 김정호에게 일을 부탁한 것이야. 이미 이때 김정호는 지도제작으로 조선팔도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었어. 일단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집한 책인 동여편고를 쓰고 청구도, 동여비지, 여도비지도 편찬했어. 그리고 앞에 얘기한 것처럼 최한기의 지구전,후도의 목판을 만든 사람이 바로 김정호야. 특히 위에 사진으로 있는 청구도는 당시 조선으로 유입된 서양식 지도제작법이 가미된 지도였어. 이렇게 지도 관련해서 일 열심히 하고 또 잘하는 사람이 있는데 신헌이 이를 놓칠리가 없지.
이렇게 해서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지게 된거야. 정부의 주요관료인 신헌이 아무리 이름난 지도제작자라고 해도 함부로 볼 수 없는 비변사와 규장각의 지도를 김정호에게 빌려주고 김정호는 비변사와 규장각에 있는 수많은 지도들을 일일히 대조해가며 겹치는 부분만 지도에 남기고 만약에 어느 지도도 믿을 수 없을만큼 심하게 변조된 경우, 그리고 심하게 상충되는 경우에만 실측하면서 빈 공간을 채워나갔어.
그러니까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드는데 전국 팔도를 몇 번을 돌고 백두산을 일곱번인가 여덟번인가 올라갔다는 얘기는 구라야. 대신 아예 집 안에서만 틀어박혀서 편집한건 아니고. 본인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실측이 필요한 부분만 실측한 것이지. 그리고 그렇게 해서 마침내 대동여지도가 완성되었어.
그럼, 이쯤에서 알아봐야 할 것이 있어. 왜 사람들은 김정호가 발품을 팔아가면서 대동여지도를 완성했고 대원군이 이를 불태우고 김정호를 죽이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해. 일제가 만든 설화거든.
이 사람 아는 사람은 다 알거야. 육당 최남선이라고 고등학교 문학시간때 이름 많이 들어봤을거야. 이 사람이 우리나라 문학에 역사를 남기긴 했지만 동시에 악질 친일파, 일제의 어용지식인이기도 했어.
김정호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는 사실 최남선이 1925년에 동아일보에 남긴 칼럼에서 비롯되었어. 여기에 김정호가 지도를 만들려고 백두산을 왔다 갔다 했다더라, 근데 그렇게 만든 지도를 몰라주고 정작 김정호는 감옥에서 죽었다더라. 하는 얘기를 쓴거야.
여기에서 끝난게 아니야. 1934년에는 조선총독부의 지시를 받고 조선어독본 편찬에 참여하여 대동여지도 썰을 남겨. 그 내용을 요약하면 김정호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홀로 고생하면서 만든 지도를 나라에 바쳤지만 그 가치를 모르고 도리어 엄한 곳에 쓰일까 두려워한 대원군과 조선 조정이 김정호 부녀를 옥에 가두고 지도는 압수했으며, 그 통한을 이기지 못한 김정호 부녀는 옥사했으나 그 가치를 알고 있는 일본인들은 대동여지도를 러일전쟁에서도, 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에서도 유용하게 사용하였다는 내용이야. 그런 내용을 학생들 보는 조선어 교과서에다가 쓴거야.
왜 썼을까? 왜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학생들 보는 교과서에다가 쓴걸까? 답은 바로 나왔지. 책에서 일본인들은 대동여지도를 러일전쟁에서도 쓰고 총독부 토지조사사업에서도 썼다고 얘기했잖아. 조선인들은 이 귀한 지도를 몰라보고 없애버리려고 했는데 우리 일본인들은 아니다. 우리는 귀한 것이 있으면 그 가치를 알아볼줄 아는 눈을 가졌다. 그럼 너희 조선인들은 무지한 권력자 아래에서 통치를 받아야 할까? 아니면 우리같이 똑똑한 사람들의 지도와 가르침 속에서 통치 받아야 할까?
하는 내용인거지.
흔히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 할 때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붙어. 인물을 통해 현재를 비교하고 그 인물을 통해 현재를 비판하거나 또는 찬양하는거지. 그리고 역사적 인물의 재조명에 있어 의도적인 과장과 왜곡이 개입되는 순간 재조명은 단순한 재조명이 아닌 날조와 선동이 되는거야. 안타깝게도 광해와 불꽃처럼 나비처럼 두 영화는 단순한 재조명의 틀에서 벗어났어. 그리고 김정호 역시 마찬가지고.
3. 집구석에서 지도를 완성했다고 해서 김정호의 업적이 위축되는건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