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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어느 왕의 700년의 사랑

700년 전, 한 왕비가 난산 끝에 숨을 거뒀다. 
왕비를 무척이나 사랑한 왕은 오래도록 아내의 시신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하여 걱정이 된 신하들의 대표로, 왕의 충신인 최영이 왕에게 아뢰었다.

"전하, 부디 슬픔을 거두시고 침소를 옮기시어 옥채를 보존하시옵소서"

왕이 말했다.

"나는 공주와 언제나 같이 있기로 약속했소. 여길 떠나고 싶지 않소."

나라를 가지고 가정을 가지는데 배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렇게 내조의 공을 세운 이에 대해서는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노국공주 덕에 고려가 오늘까지 존속하게 되었다. 영원히 국가를 지키고 함께 살아야 할 터인데 그만 세상을 떠났구나. 슬픈 마음은 더욱 깊어만 간다.

-고려사 후비열전中-

2.jpg


고려 말, 나라의 등불이었던 개혁군주 공민왕은 오랫동안 배필의 곁을 지키다 일어나 그녀의 무덤을 만들기 시작했다.
왕비인 노국공주의 정릉 바로 옆엔, 자신이 들어갈 현릉을 만들었는데, 이는 긴 고려 역사에서도 없었던 일이었기에 많은 신하들이 반대했으나, 왕은 묵묵히 왕비의 무덤 바로 옆에 자신의 무덤을 지었다.
무덤의 주위엔 3천명의 승려를 수용할 영정, 공주의 초상화를 걸어둘 전각을 지었고, 공사에는 모든 관언을 참여시켜 나무와 돌을 운반케 했다. 그로인해 어기어차 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며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

-고려사-

3.jpg


이후 공민왕은, 홍윤의 난으로 죽기까지 모든 후빈들을 멀리했다.

공민왕의 모친 명덕태후가 묻기를

"어찌하여 후빈들을 가까이 하지 않소?"

라고 하였고, 이에 왕이 답하기를

"공주만한 여자가 없습니다."

라 하였다. 이에 태후께서 몹시 호통을 치며 왕을 꾸짖었다.

-고려사절요 1373년 3월


4.jpg

5.jpg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에 있는 공민왕릉.
쌍릉형식으로 병립되어 있는데, 서쪽은 공민왕의 현릉, 동쪽은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고려조 최초이자 마지막인 왕과 왕비가 나란히 모셔져있는 쌍릉.

능의 자리부터 건축, 장식, 내부 벽화까지 공민왕이 직접 왕비를 위해 고안하였고, 능의 규모는 한반도 최대 규모로써 역대 왕릉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능으로 평가 받는다.

제 37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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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이 게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는데... 이런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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