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린 시간에 비해 한참이나 짧은 문장을 뱉어냈다. 5년 전, 처음 이 업계에 '입사 지원'을 하며 처음 본 그는
내 선택에 대해 그렇게, 메마른 웃음으로 축하를 대신했다.
***
2010년 1월. 나는 두 번째로 '수습 사원'이 되었다. 아니, 2004년의 첫 번째 '수습 사원'은엄밀히 말해서 '교육 기간'이었고한달 후, 교육 종료와 함께 정식 임용되었기에 실질적으로 나는 사회에 나온 지 6년여 만에 처음으로 '수습 사원'이 되었던 거다.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2009년의 나는 영업관리직이었다. 영업관리팀 대리.점차로 전산화가 진행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일들이 수기로 진행되는 것이 더 당연하던 경직된 조직이었기에, 낭비되는 시간이 많았다. 처음 몇 달. 무의미한 반복작업에 진이 빠지자꾸역꾸역 모든 일들을 엑셀로 서식화했다.그러고 난 후, 나는 왜 전임자들이 엑셀 서식을만들어두지 않았는지 깨달았다.일간,주간,월간 결과치만을 수정하며 숫자 몇 개만쳐넣으면 내 업무의 절반이 완료되었다.난 도대체 왜 여기 앉아 있을까?하루종일 내가 하는 생각은 그거였다.아무나, 솔직히 숫자만 제대로 가르친원숭이를 데려다 앉혀 놔도내 업무의 절반은 해 낼 수 있다는 것은나를 제대로 마모시켜 가고 있었다.재미있는 일을 해 보고 싶었다.그래서였다.2010년 1월. 나는 게임 기획자가 되었다. 아니, '수습'게임 기획자.연봉은 진짜 딱 절반. 그리고 점심 식대 자기 부담. 아니, 진짜로. 연봉이 절반이 되니 점심 식대마저 부담되더라구....근데, 재미있었다.자려고 누워 있다가, 좋은, 아니 좋을 거 같은생각이 떠올라서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아이디어를 정리했다.특별한 일이 없는데 그날따라 분위기를 타 버려서문서가 술술 막 써 지는 거라,'일이 잘 풀리는 게 기분좋아서' 이걸 도중에 그만두기 싫어서 야근을 했다.작업자들이 '괜찮을 거 같은데요? 해 보죠.' 라고말하는 게 좋았다. 프로그래머가 '그때 그거 붙여서빌드 올렸으니 확인해보세요' 라는 말이 좋았다.그리고 그렇게 내 아이디어가 구현되어서 돌아가고 있는 게 기분 좋았다.내가 생각한 게 만들어지고, 그 만들어진 걸내가 또 주물럭주물럭 건드려 볼 수 있고,또 더 좋은 게 뭐가 있을까 핫식스를 들이켜가며 고민해보고.재미있었다....첫 번째 회사에서는 FPS를 만들었다. 투자자의 성화로 (모든 기획자들이 컨텐츠 로드맵도안 짜놓은 상태라고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오픈을 했다가 금세 컨텐츠 고갈 (그리고 다른 게임 내/외부의 문제)로홀라당 말아먹었고, 절치부심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에 게임을 판매했지만판매금은 모두 투자자가 회수해갔다.두 곳의 로컬 라이브 서비스를 하면서도 투자 여력은 커녕생존을 계속 걱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투자자의 결정이 있자마자 몇 달도 안 되어 회사는, 그리고라이브로 서비스하고 있던 게임조차 공중분해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가끔 궁금해진다.브라질에서 우리 게임을 서비스하던 퍼블리셔는과연 유저들에게 뭐라고 공지했을까?두 번째 회사는 나름 대기업이었다. ...게임회사가 아닌 대기업. 장난감에 들어갈, 혹은 장난감에 같이 붙여 팔거나장난감 판매를 견인할 '어플'을 만들라고 했다. 게임이 아니라.솔직히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긴 한데,업무시간의 반을 들여 지시사항- 어플을 기획했고나머지 절반의 업무시간에 나는 '게임'을 기획했다. 그리고 그 기획서는 포트폴리오가 되어내 이력서, 입사지원서에 첨부되었고, 그렇게 나는세 번째 회사로 잽싸게 갈아탔다.세 번째 회사는, 게임을 안 하는 사람들마저아니 우리 돌아가신 할머니도 아는 외국계 기업의 계열사 스튜디오였다.온갖 복지가 진짜 속된말로 '쩔었다'.우리 여기서 오래오래 해먹자고 사람들과 다짐했다.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올 스톱되고2015년 개봉 예정인 유명 영화 IP 기반의 게임을 제작하라는오더가 떨어졌다. 프로젝트 홀드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너무나도 유명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애정하는 IP인지라 신나서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회사가 한국에서 철수했다. 정확히는 게임 부분만.5월에 그렇게, 어안이 벙벙한 채 실업자가 되었다.그리고 우리 중 몇몇은 남은 열정으로 모여 스타트업하고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도 거기에 합류했다.급여도 없고. 엄밀히 말해서 '고용' 상태도 아니기에동생 회사의, 얼굴도 모르는 사장님은 열심히 내 의료보험을 내 주고 계신다.***지난 주 금요일이었다.전 회사의 사업본부장이 연락을 했다. 돌아와라. ... 첫 회사에서 야근과 핫식스에 쩔어 있던 어느 날이었다.가산 디지털단지 앞에 찾아와, 고기를 굽다가부스스한 내 꼬라지를 보고는 돌아오라 말하던 그에게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꿈은 잠잘 때 꾸는 것이 아니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그 말을 듣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 말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내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돌아와라, 그만하면 충분하지?"
***이상한 곳이었다. 누구 하나, 게으른 사람은 없었다.영업관리직에 있던 내가 엑셀 숫자 몇몇개를 바꾸고검정색, 빨강색 숫자 몇 개를 써 올려 받아가던 급여의절반 남짓한 급여를 받는 사람들이수십, 수백배의 열정과 애정을 쏟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최근 보고 있는 드라마, '미생'에서 활약하는 인물들보다더 격렬하고, 더 활기차고, 더 열정적이었다. 아니, 정말로.그런데 말이지. 우리는 왜, 회사 어디 다니냐는 질문에'IT...' 라고 말을 흐리게 되는 걸까?우리는 왜,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해요? 라는후배들의 질문에 '하지 마요' 라고 대답하게 되지?우리는 왜 우리 일이 TV에 나오면 항상 분노하게 될까?아니 왜?왜 우리는 마약상이 되고, 애들을 짐승의 뇌로 만드는악마들이 되고, 외국으로 튈 생각만 하는 매국노가 되고한류니 문화수출이니 하는 얘기가 나올 때 마다걸그룹들의 가슴골과 허벅지 뒤에 숨어야만 했을까?그래서 왜,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 처럼투자자 맘대로 휘두를 수 있는 얇은 모가지를 가져야만 했지?그래서 왜, 우리는 시키면 시키는대로뚝딱 원하는 '어플'을 만들어내는 기술자여야만 했지?왜 디즈니는 우리나라에서 게임사업 못해먹겠다고 때려쳤을까?그래서 나는 왜?나는 왜, "돌아와라, 그만하면 충분하지?" 라는 질문에 그리도 순순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을까?***아직도 나는 이 일이 재미있다.지난 주까지 진행하던 스타트업 프로젝트의백그라운드 설정과 시놉시스 작성은 정말 재미있었다.자려고 누워서도 그 생각이었고아침에 출근하면서도 아이폰으로 관련 자료들을뒤적거리고 있었다.퇴근 안해? 라는 말을 아직도 자주 듣는다.'이것만 완료하고요.' 라는 대답, 저번주에도 두번쯤 했던가? 그런데 나는 왜?***참 이상하다. 결국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5년간, 이 업계에서 굴러다니며 내가무엇을 했노라고 남들에게 보여 줄 게 아무것도 없다.첫 회사에서 오픈한 FPS 게임은 한국 서비스는종료한 지 오래고,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서비스도 뭐회사 자체가 사라진 마당인데, 있는 게 더 이상하겠지.유툽 뒤져보면 동영상 몇 개는 올라와 있긴 하더라만. 두 번째 회사부터는 결국 완료 한 프로젝트가 없네?이상한 일이다.도대체 핫식스 부어넣어 지샜던 그 밤들은대체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월급도 안 나오던 회사에서 심의료 받아가던 애들은지들 뱃속의 어느 지방세포에 내 열정이 담겨 있는지 알고 있을까?'경쟁과 도전이 없는' '게임'을 만들라고 종용하던여성가족부는 알고 있을까?능력을 인정받아 일찌감치 외국으로 뜬 기획자들은 알고 있을까?자기 자식들이 무슨 게임을 하는지도 모르면서게임이 아이들을 망친다고 말하던 아줌마들은 알고 있을까?***"잡을 수가 없네요." 학교 선후배로 17년을 가까이 지낸, 그리고게임 업계 선배로써 나를 항상 도와주었던'친구'는 그 말만을 반복했다.왜 모르랴.17년이라는 시간은 참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하긴, 요즘 이 바닥 꼬라지 보면... 좋은 선택일지도. ㅎㅎ"미안하다고, 게임 업계에서 도망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하자첫 회사에서 같이 고생하던 기획자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그의 웃음이, 그의 자조가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것은 서른 둘에도 철이 덜 들어, 꿈을 찾던 어린아이의 투정이고 서른 일곱에 꿈을 접은, 참 늦게 아저씨가 된 아저씨의 자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