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 三島由紀夫 (1925.1.14. ~ 1970.11.25.)
어릴 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잘 써서 12살 때 첫 작품을 냈음.
하지만 나치빠였던 아버지가 독일법 공부를 하라고 시켜서 도쿄대 법대로 진학함.
낮에는 학교에서 법 공부하고 밤에는 집에서 계속 글을 쓰는 생활을 함.
그 와중에 고시에 붙어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고위관료가 됨.
그런데 일을 시작하니까 글 쓸 시간이 없어져서 바로 때려치우고,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도움을 받아 전업 작가가 됨.
(옆에 있는 장동민 삘 나는 사람은 그 이름도 유명한 극우 망언제조기 이시하라 신타로다)
전업으로 전환하고 발표했던 작품들이 하나 둘 대박이 터져서 20대 중반의 나이에 순식간에 유명 작가의 반열에 합류.
사상은 좀 꼬롬하고 수꼴기질도 있었지만 글 하나는 겁나게 잘 썼음.
서구권에서도 인지도를 얻어서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두 번 오름.
그런데 1968년에 스승인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게 되면서 당분간 상 받을 가망이 사라짐.
그래서인지 이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우익 정치활동에 몰입하기 시작함.
(좌익 성향의 대학생 운동 단체인 전공투와의 대담. 그야말로 극과 극의 만남.)
미시마 유키오의 정치적 주장을 요약하자면 텐노 중심의 통치 체제로의 복귀, 공산주의 타도를 위한 재무장이었음.
재밌는 건 미시마 본인은 군 복무 경험이 없음. 2차 대전 때 입영통지서도 받았지만, 감기를 결핵이라고 속여서 면제 받음.
1970년 11월 25일. 자신의 추종세력들을 이끌고 자위대 사령부에 난입하여 간부들을 인질로 잡고 자위대원들을 집합시킴.
자위대원들에게 혁명을 일으켜 텐노를 옹립하고 옛 일본제국의 영광을 되찾자며 쿠데타를 종용하는 일장 연설을 펼쳤지만,
호응은 커녕 태반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고 야유하고 조롱하는 애들도 있었음.
그래서 홧김에 배를 가르고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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