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저주


여기에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저주라는 걸 믿어? 나는 심령 현상이라던가 그런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저주 따위 믿지 않는다. 저주가 존재한다면 나 같은 놈이 아직 살아있을 리가 없으니까. 스스로 밝히기도 싫지만,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렇다고 살인까지 해본 건 아니지만, 몇 명의 여자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나니까, 만약 저주가 존재한다면 나는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시시한 내게도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친구의 이야기이다. 글이 기니까 시간 많은 사람은 읽어봐. ​지금부터 1년 반 정도 전. 친구가 날 부르길래 나가봤다. 그때는 서로 일이 바빠서 약 3개월 만에 만난 거로 기억한다. 약속 장소에 가보니 친구인 A가 나보다 빨리 나와 있었다. [오~ 빠른데?] 나는 그렇게 말하며 A에게 말을 걸었다. A는 웃으면서 [가끔은 빨리 올 수도 있지.]리고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 A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평소라면 마시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올 건데 왠지 그날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미소가 사라진 A의 얼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집에 같이 갈래?] A의 얼굴에는 여유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내 물음에 A는 집에서 이야기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그 자리에서 떠났다. A의 집에 도착하자 A가 말문을 열었다. [형이 일하다가 죽었어.] 그 말을 들은 나는 [아.. 근데 2년 전에 돌아가시지 않았어?]라고 무심코 되물었다. [2년 전에는 큰 형이고 이번에는 작은 형이야.]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업무 중의 사고 같다. A의 작은 형이 일한 곳은 대형 타이어 공장이었다. 그 공장에서 주로 공작 기계의 유지 보수와 관련된 공장 공무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작업 후에 유지 보수를 위해 정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형 공작 기계가 작동하는 바람에 그 기계에 머리를 끼인 A의 작은 형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즉사였다고 한다.

그것을 듣게 된 나는 A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2년 전에 큰 형이 사고로 죽었을 때도 이상했어.] A는 큰 형이 사고로 죽은 얘기를 했다. A의 큰 형은 가족 세 명이 차를 타고 가던 중에 대형 트럭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즉사였어. 세 명 모두.] 그 사고는 편도 2차선 도로에서 일어났다. 현장 검증에서는 A의 큰 형이 반대 차선으로 들어가 주행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트럭 운전사의 이야기로는 피할 순간도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A가 말한 이상한 점은 갑자기 차선을 바꾼 것도 그렇고 브레이크 페달과 바닥 사이에 고양이가 들어가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 고양이도 사고로 죽어버렸다. 충돌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 같지만 사이에 고양이가 있어서 먹히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브레이크가 제대로 먹혔더라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고양이 같은 건 키우지도 않았는데. 큰 형말이야.] 그 말을 듣고 내가 길에서 주운 건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고양이를 싫어했기 때문에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하고 난 A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조금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슈퍼에 가서 맥주와 안주를 사왔다. 슈퍼에 갔다 와서 A에게 맥주를 건네주고 나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나는 이제 천애의 고아가 되었어. 아, 물론 아이는 아니지만..] A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A의 어머니는 유치원 시절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4년 전에 돌아가셨다. 남겨진 사람은 A뿐이었다. ​A의 표정은 매우 쓸쓸해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표정이 바뀌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주라는 걸 믿어?] 그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가끔 TV 공포 프로에서 나무에 밀짚 인형을 못에 박고 치는 그런 행동?] 나는 있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나의 그런 반응에 A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큰 형과 작은 형. 그리고 아버지도 저주로 죽은 걸지도 몰라.] 거기에서 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A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A가 살았던 곳은 평범한 시골 마을인데 불가사의한 사건이 일어날 만한 곳은 없었던 것 같다. A의 집 근처에는 A가 어린 마음에도 상대하기 싫은 집이 있었다고 한다. 단순하게 그 집 아줌마를 보기가 굉장히 무서웠던 게 이유라고 한다. 야구를 하는데 우연히 공이 그 집 마당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인사를 하고 공을 잡으려고 할 때 그 아줌마가 낫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그런 일도 있어서 A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한밤중에 참을 수 없어서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난 적이 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의 작은 창문으로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까 거기에는 낫을 든 아줌마가 정원에 있는 큰 나무를 향해 여러 번 내리찍고 있었다고 한다. ​ 어쨌든 그 광경이 너무너무 무서워서 그 밤은 자지 못한 것 같다.

다음날 학교에 가는 길에 조심스럽게 그 나무를 확인했는데 수많은 상처와 큰 못이 하나 박혀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은 단순하게 무서웠을 뿐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줌마는 불쌍한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 집 남편은 술주정이 매우 심해서 매일 밤 마시고 날뛰고 있었다. 당시에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던 걸까. A는 그렇게 말하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서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났다. 하굣길에 A와 3명의 아이가 그 집의 큰 나무 아래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자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도 궁금해서 다른 아이가 부모를 불러서 확인했는데 곧 구급차가 불려 왔다. ​쓰러져 있던 사람은 그 집 남편이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이웃에게 소식을 들은 아줌마도 즉시 병원으로 갔다. 어렸던 A는 떨었다고 한다.

시체를 본 공포심과 그날 밤 아줌마의 이상한 행동이 겹쳐, 불필요하게 무서워한 것 같다. 그리고 아줌마는 사람이 바뀐 것처럼 밝아졌다.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아줌마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 집에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그 집에 있지 않았다. 둘째는 성격도 좋고 성실하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두고 있었지만, 장남은 아버지를 닮아 술주정이 심하고 개차반에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명목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부터 아줌마는 이전과 같은 괴로운 나날이 시작되었다. ​낮부터 술을 마시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웃들에게 여러 번 주의를 받아도 달라지는 점은 없었다. ​장남이 어머니를 계속해서 때리자 차남도 여러 번 말린 것 같다.

며칠이 지난밤. A는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현관을 격렬하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옆집에 사는 누나였다. [저쪽 나무 아래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그렇게 말하는 누나는 떨고 있었다. 아버지가 곧바로 확인하러 갔다. 그리고 확인하고 돌아온 아버지는 구급차를 부르고 아이들에게 집 밖에서 절대 나오지 말라고 말을 남기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구급차가 와서 소란은 커지기 시작했다. ​창문을 통해 확인하면 이번에는 경찰차까지 온 상태였다. ​그 소란은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다음 날 아침,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살해된 사람은 그 집의 장남이었다. 괭이로 머리를 여러 번 난타당해 죽었다. 살해당한 장소는 집 뒤였던 것 같은데 마지막 힘을 쥐어짜서 사람의 눈에 닿는 그 큰 나무 아래까지 와서 숨진 것 같다.

 

집에 있던 아줌마가 자신이 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에 아줌마는 경찰에 끌려갔지만, 다음날 낮에 차남이 출두했고 아줌마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 일은 지역 신문에도 크게 보도된 것 같다. ​형량은 그다지 무겁지 않았다. 동기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였고 주위의 증언이나 그간의 이미지도 좋았기 때문이다. 둘째의 형이 확정되던 날, 아줌마는 집에 있는 그 나무에서 목을 매달고 자살했다. A는 학교에 있어서 사건이 일어난 것을 집에 갈 때까지 몰랐던 것 같다. 그 집에서 2년 사이에 사람이 세 명이나 죽었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에 그 집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그 집 앞을 바로 지나가지 않고 멀리 돌아서 갔다고 한다. 집 현관에서 보일 정도로 가까운 집인데도.

사건이 일어난 지 5년 정도 지났을 무렵, 둘째가 형기를 마치고 돌아왔다. 이웃집에 사과하고 다니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A의 집에도 찾아왔다. 아버지가 그런 둘째로 맞아주면서 [괴로웠죠. 앞으로 노력하세요.]라고 얘기했다. 원래 평소 둘째의 됨됨이를 알던 이웃들은 따뜻하게 맞아줬다. 둘째는 열심히 일하며 이전의 삶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둘째의 아내도 남편이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었다. 2년 후, 그런 두 사람에게 아이가 생겼다. 이웃들은 모두 기뻐했다. 태어난 아이는 남자아이. 하지만 그 아이는 심장에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둘째는 그 아이의 수술을 위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일했다. ​하지만 아이는 생후 반년 만에 세상을 떠나 버렸다. 그로부터 2개월 후 부인은 분신자살을 하고 말았다. 뒤를 쫓듯이, 둘째는 그 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주변은 흉흉한 분위기가 되었고 결국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나무가 있으면 앞으로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나무를 베는 편이 좋지 않을까? 모두 나무를 안 좋게 보고 욕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무도 나무를 자르려고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자살한 아줌마의 먼 친척이라는 남자 두 사람이 와서 [우리가 이 나무를 처분합니다.]라고 말했다. 만약을 위해 두 사람은 신사에서 간단한 제령 의식을 받고 전기톱을 사용해서 시원스럽게 베어냈다. ​꽤 큰 나무였던 것도 있어서 베어 내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고 뿌리 부분은 나중에 제거하기로 했다. ​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뿌리는 그대로였다. 나무를 자르고 난 후에 한 사람은 술에 취한 상태로 3M 정도의 논두렁에 떨어지는 바람에 두부외상으로 사망. 또 한 사람은 농사 중에 트랙터가 전복하는 바람에 깔려 죽었다고 들었다. A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을 떠날 무렵에도 여전히 그 뿌리는 남아있었다고 한다.

 

나와 A가 처음으로 만난 곳은 같은 학교. 지금부터는 나와 A가 친구일 때 일어난 일이다. ​A는 나와 달리 머리도 좋고 성격도 좋았다. 그런 놈이니까, 취업에도 지장이 없었다. 나와 달리 A는 곧바로 취직했다. ​A가 취업하고 나서도 우리의 교제는 계속되었다. 만날 때마다 나의 여자 문제에 관해서 설교하던 것이 지금도 생각 난다. ​ 취직해서 3년 정도 지났을 무렵.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A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A의 말에 의하면 질병 같은 증상이나 징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A는 굉장히 충격받은 것 같다. A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두 명의 형이 돌아와서 장례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장례식도 끝나고 세 사람은 오랜만에 친정에서 술을 마신 것 같다. 그때 장남이 두 동생에게 말했다. [둘 다 그 집 나무 봤지?] [무슨 일이라도?] [뿌리만 남아있던 나무.. 이제 공터만 남았어. 그 뿌리를 캐낸 사람이 아버지야.] 그것을 듣자 A는 무서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둘째가 큰 형에게 소리쳤다. [웃기지 마! 그럼 아버지가 그 나무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거야? 그냥 뿌리만 뽑은 것일 뿐인데 그렇게 된다고? 바보 같은 소리.] ​A가 궁금해서 큰 형에게 물었다. [왜 아버지가 나무뿌리를 갈아엎은 거지. 형들은 뭔가 들은 건 없어?] 그 물음에 두 형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장남은 고개를 흔들며 [뿌리를 뽑은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갈아엎은 후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아무래도 내 생각엔 우연은 아닌 것 같아.] 둘째는 [형. 그만 둬. 그런 얘기..]라고 말했지만, 장남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젯밤 꿈에 아버지가 나왔어. 나를 보면서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둘째는 [왜 형 꿈에만 나오고 나랑 A에게는 안 나오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 물음에 관한 장남의 대답에 A와 둘째는 놀랐다고 한다. [다음은 나인데. 그러니까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지.] 두 사람은 그것을 듣고 침묵했다. 그 날은 더이상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 형제들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 이상으로 연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은 지 1년 9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갑자기 큰 형과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집에 전화를 해도 형수조차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의심스럽게 생각해서 형이 근무하는 회사에 전화를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돌아온 말은 의외였다. 1개월 정도 전에 갑자기 퇴사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바로 장남의 집으로 향했다. 여러번 초인종을 눌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그 소리에 옆집에 살던 이웃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어요.] 이웃이 그렇게 말했다. 두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우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 것일까? 그토록 긴밀하게 연락하는 사이였는데. ​그리고 두 사람은 이웃이 가르쳐 준데로 큰 형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틀 후, 두 명의 경찰에게서 연락이 왔다. 큰 형의 가족이 사고로 모두 죽었다는 소식이었다. 사고의 원인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다. 장례식이 끝나고 두 사람은 침묵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장남 일가의 집 정리에 들어갔다. 집 정리를 하고 있는데 A는 장남이 남긴 것 같은 메모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이상한 글이 적혀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걸까?] 그 말이 한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나와 00 그리고 00 이렇게 세 명이다. 이제 그만 해줘.]라고 적혀 있었다. 둘째와 A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본 둘째는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이런 글을 적었을 거라고 말했지만 끝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바라만 볼뿐이었다.

A는 진심으로 위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거부하는 둘째에게 무리하고 권유해서 전국에 유명한 주술사나 무속인 같은 사람들에게 제령의식을 받았다고 한다. 세세하게 쓰면 정말 굉장한 양이 되어버리니까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해해주길 바란다. 장남이 죽은지 2년이 지났을 무렵, 둘째가 사고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내가 듣게 되었다. 저주라고는 말해도 나에게는 아무래도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 A에게 말했다. [저기 A. 만약 저주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저주받게 되어 있어. 너도 알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 여자 인생을 파멸시켰잖아. 네가 모르는 이야기도 있어. 그야말로 언제 밤길에 칼을 맞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야. 저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원망을 받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 현실에 저주가 존재한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A에게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 자신이 하나하나 설명을 해봐도 이야기는 제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A는 나와 이야기 한 후에 곧바로 가지고 있던 차를 처분했다. [자동차 사고로 죽는 건 싫으니까.] A는 씁슬하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동안에도 나와 A는 가끔 만났다. 만나서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만남이 끊기게 되었고 A의 근황이 궁금하기 시작했을 때 A에게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있어. 한가하니까 문병이라도 와줘. 할 이야기도 있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즉시 병원으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가서 A의 모습을 봤을 때는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여윈 A가 거기에 있었다.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1인실이라니. 대단히 호화스럽네!]라며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A는 [나는 그래도 돈이 좀 있잖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병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들은 얘기로는 진행이 빠른 암이라고 했다. 수명 3개월. 너무 갑작스런 선고였다. ​A는 계속 이야기했다. [저주야..] 그렇게 단언했다. 나는 곧바로 [그런 게 있을리 없어.]라고 받아쳤다. A도 대꾸했다. [믿기 싫지만, 우리 가족은 이렇게 단기간에 모두 죽겠지.] A의 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후, 마음을 가라앉힌 A가 말했다. [너에게 부탁이 있어.]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줄테니 말해봐.] 물론 지금에 와서는 이 말을 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A의 부탁은 A의 여자친구의 일이었다.

A는 학생 때부터 B라는 여자와 사귀고 있었다. A의 여자친구라서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착한 아이였다. A와 잘 어울리는 여자. [B의 일인데.. 네가 B에게 잘 얘기해줄래?] 그것을 듣고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A는 B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말했는데 B에게서 지금 결혼하자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난 자기 주장이 강한 여자는 관심없어.] [너 이외에 그런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없어.] [그런 바보 같은 부탁을 들어줄 사람이 나뿐이겠지만, 이건 무리한 이야기야. 내가 B의 입장이라고 해도 쉽게 너와 헤어지기는 싫을 거야.] 그렇게 말하며 A를 타일렀다. [만약 B가 나와 결혼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A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힘들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원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해서 저주가 B에게 걸리면 나는 죽어도 죽을 수가 없어.] A의 말은 절박했다. 그래도 A가 저주에 그렇게나 신경이 쓰인다면 일단 B에게 말이나 해보자고 생각했다. 나 자신은 저주를 부정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현실적으로 다가오면 솔직히 무섭다. 만약 B의 몸에 뭔가 일어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했다. 어쨌든 며칠 후에 B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억지로 시간을 만들게 해서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B의 얼굴은 보기에도 지쳐 있었다. 서로 미소가 없었다. [A의 일인데..]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B는 나의 말을 자르 듯이 [헤어질 생각은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갑작스럽겠지만.. 들어줘.]라고 말하며 B의 얼굴을 보았다.

B의 눈을 빨갛게 충혈된 상태였다. B는 내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예측하고 있었던 것일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갑자기 [이제 헤어질 수는 없어.]라고 말했다. [그건 그만큼 오래 사귀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A는 뜻밖의 얘기를 꺼냈다. ​[그런 게 아니야. 사실 아이가 생겼어. 그 사람의 분신이 이 안에 있어.] 그렇게 말하고 B는 배를 문질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다. B는 [아이가 생긴 것을 그에게 말하면 혹시 병이 나을지도 몰라.]라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정신을 차린 것 같다. [절대로 가르쳐주지마.] 그 말에 B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가게 안이라는 것도 잊고 둘이 티격태격 말다툼했다. 점원에게 주의를 받았지만, 다툼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이야기는 제자리만 맴돈 채로 가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가게를 걸어나오면서 B를 설득할 방법을 생각했다. 나는 걸으면서 B에게 물어봤다. [원래 몇 년 동안 사귄 거야?] [이만큼 오래 사귀었는데 지금에서야 임신한 거야?] [피임은 제대로 하고 있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아이가 생긴 것을 알았다는 건, A가 병원에 이번 일 말고도 입원한 적이 있었다는 거네?] 정말 끔찍한 질문법이었다. 그제서야 B가 대답해주었다. [지금까지 제대로 피임했어.] B는 계속 말했다. B의 이야기를 듣고서 나는 온몸에 한기를 느꼈다. 4개월 전에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한다. 그 꿈은 3일 동안 계속 되었다.꿈에서는 본 적도 없는 처음 보는 사람이 나와서 몇번이나 똑같이 [미안, 미안하다.]라는 말만 계속했다고 한다.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인데 A와 생김새가 닮았다고 했다. 그 다음 꿈은 죽기 전에 소개된 둘째였다. 마찬가지로 미안하다는 말만 몇번이나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꿈에서 나타난 사람이 A였다. 여러번 B를 향해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 꿈에서 싫은 예감을 느끼고 서둘러 결혼할 생각을 한 것 같다. 예전부터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A가 싫어했던 것 같아서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그렇다면 차라리 임신을 하면 어떨까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임신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A는 입원했다. B는 이렇게 말했다. [그 꿈이 이런 걸 전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래서 아이가 생긴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병을 고쳐 줄거야.] 머리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다시 얘기하자.] 나는 B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날은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무엇이 최선일까. 자문자답을 반복하던 끝에 나온 생각은 B에게 저주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다음날은 B를 우리집에 불러서 얘기했다. 이런 이야기는 밖에서 할 만한 것이 못된다. ​나는 B에게 그간의 모든 이야기를 가르쳐주었다. B는 한숨을 쉬면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저주라니..]라고 말했다. [결혼을 꺼려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B는 울고 있었다. 나는 B에게 말했다. [그 녀석이 저주를 믿는 이상, 임신한 사실을 알면 100% 낙태하라고 말할 거야. 만약 낳을 생각이라면 절대로 B에게 말하지 마.] B는 [그 사람의 생각을 당신이 단정지어 말할 순 없겠죠. 하지만.. 어쩌면..] 눈물을 참아 가며 말하는 B를 보고 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후에 우리 두 사람은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사람의 인생을 이만큼 심각하게 생각했던 적은 그때가 처음 이었을지도 모른다. A의 병이 기적적으로 완치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때 나는 시간만 나면 A에게 병문안을 가서 B의 이야기를 했다. A의 건강 상태는 좋지 못했다. 그리고 2개월도 지나지 않아 A는 중태에 빠졌다. 결국 A는 그대로 죽고 말았다. 내가 병실로 뛰어갔을 때는 이미 A의 몸에서 온기는 사라져 있었다. ​A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B 앞으로 들어놓은 보험이나 유산, 나와 B에게 장례를 부탁하고 그 후의 처리방법. B에게 보내는 편지와 나와 B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편지. 나와 B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감사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B에게 보내는 편지도 같은 것인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달랐다. 그 편지의 내용을 B에게 보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A가 죽은 지 반년 정도 지났다. B는 곧 출산한다. 무사히 태어나줬으면 한다. 사고없이 성장하길 바란다. 오로지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다.​ 나는 A 남긴 유언으로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이런 유언을 남긴걸까. A가 남긴 편지에는 나와 B의 혼인 신고가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A가 남긴 편지. [B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다. 너의 아이다. 래서 니가 책임지고 B를 행복하게 해줘라.] A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내 아이라고 하지 마라. 너 나름대로는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겠지.

내 머릿 속은 저주의 일로 가득차 있다. 너의 기분은 잘 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 마지막으로 A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제발 B를 행복하게 해 줘. 제발.. 소원을 이루어줄래. 만약 들어주지 않으면 너를 저주할 거야.] A의 신변에서 일어난 것은 우연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그렇다면 A가 나를 저주할 필요는 하나도 없었을 거니까. 어쩌면 이것은 나 자신이 당해야했을지도 모를.. 그러니까 지금까지 저질러 온 일들의 벌일지도..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유머게시판 베스트

글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