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암동 괴담


소규모 상점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서울 은평구 응암동 재래시장 옆의 한 골목. 평화롭기만 하던 이곳에 지난달 17일부터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 집에서 자꾸 사람이 죽어나간다더라’. 인근 한 건물 지하에서 중년 여성의 암매장 사체가 발견되면서 비롯된 소문이었다. 문제의 장소는 골목 안으로 30m쯤 들어간 지점에 있는 3층 다세대 주택의 지하.

의문의 변사체를 확인한 경찰은 먼저 그 지하실을 거쳐 간 세입자들과 건물주를 상대로 탐문에 나섰다. 세입자들의 면면이 어느 정도 파악될 무렵, 경찰은 소름이 돋는 듯한 전율을 느껴야 했다. 지난 10년 동안 그 지하실을 거쳐 간 세입자 가운데 6명이 줄줄이 숨진 사실이 발견된 것. 이번에 발견된 암매장 사체까지 포함하면 그 지하실과 관계된 사람이 모두 7명이나 죽어나간 것.

 

▲ 여인의 변사체와 함께 세입자들의 잇단 죽음으로 눈길을 끈 서울 응암동 한 주택의 지하실

 

과연 12평 남짓한 지하 공간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혹시 죽은 사람의 원혼이라도 서려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다세대 주택 건물주 장은수씨(가명63)가 별러왔던 지하실 개조공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9월 중순께. 그동안 주로 소규모 공장으로 사용되던 지하실은 지난 6월 마지막 세입자가 나간 뒤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 장씨는 이 참에 지하를 깨끗한 원룸으로 개조해 세를 놓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서는 빈 방만 있던 지하에 화장실을 마련하는 것이 급했다. 마침 지하로 통하는 계단 아래에는 한 평이 조금 안 되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창고가 있었다.

지난 9월17일 오전 공사가 시작됐다. 인부 한 명을 고용해 창고를 화장실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던 장씨의 눈에 어색하게 튀어나온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왔다. 높이 60cm, 길이 40cm, 폭 1m 가량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가뜩이나 좁은 창고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 장씨와 인부는 해머드릴을 이용해 콘크리트 더미를 깨버리기로 했다.

돌을 깨는 기계음이 얼마간 계속되자 난데없이 쉬파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콘크리트에 구멍을 내면서 퍼져나온 역한 냄새는 예사롭지 않았다. 게다가 5인치짜리 블록에 콘크리트를 부어 만든 구조물은 여간 두꺼운 게 아니었다. 집주인 장씨는 커다란 선풍기를 가져다주며 작업을 독려했지만 냄새가 지독하기는 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연방 “이상하다”며 불안해하는 인부를 도와 콘크리트 덩어리를 깨던 장씨의 눈에 이상한 물체가 발견된 것은 바로 그때. 겹겹이 비닐에 싸여 있던 그 물체는 다름 아닌 겨울점퍼 차림의 여자 시체였다. 소스라치게 놀란 장씨와 인부는 경찰에 이 사실을 알렸고, 출동한 경찰은 오후가 돼서야 콘크리트에 짓눌린 사체를 꺼낼 수 있었다.

좁은 공간에 사체를 구겨넣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그대로 부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에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사체는 정상적으로 부패하지 못하고 마치 미라처럼 바싹 말라 굳어 있었다. 두꺼운 콘크리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얼굴도 한쪽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 왼쪽 사람이 앉아있는 부분이 시체가 발견된곳.

 

사체를 발굴한 경찰은 일단 신원확인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다른 한편으론 지하에 세들어 살던 세입자들과 집주인을 상대로 수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경찰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난 92년 건물이 신축된 이래 지하를 거쳐간 5명의 세입자와 9명의 종업원 등 14명 가운데 모두 6명이 줄줄이 죽었다는 것.

원래 이 집터에는 문구점이 있는 단층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3층 다세대 주택이 새로 들어선 것은 지난 92년 1월. 그때부터 지하와 1층은 소규모 공장이나 일반 상가로 이용됐고 2∼3층에는 가정집이 입주했다.

지하에 가장 먼저 세든 사람은 정동한씨(가명•사망 당시 56세). 92년 5월 전세 1천3백만원에 입주한 정씨는 ‘J라사’라는 이름으로 양복 재단공장을 시작했다. 그럭저럭 유지됐던 그의 공장은 입주한 지 두 해가 지난 94년부터 휘청거렸다. 그의 딸에 따르면 당시 정씨는 주변 사람에게 1억원짜리 빚보증을 서 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잘못돼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는 것.

이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게 된 정씨는 94년 6월 공장을 그만두고 대전의 한 기도원으로 요양을 떠났다. 그로부터 3개월 뒤 갑작스레 목매 자살하면서 그는 이 건물 지하를 거친 첫 번째 사망자로 기록됐다. 정씨 다음으로 지하층을 임대한 사람은 김문호씨(가명•사망 당시 51세). 원래 김씨는 전 세입자 정씨가 재단공장을 운영할 때 그의 밑에서 재단사로 일하던 종업원이었다. 그런데 정씨가 갑자기 기도원으로 내려가자 얼떨결에 공장운영을 맡게 된 것.

기도원으로 내려가기 직전 정씨는 김씨에게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전세금 1천3백만원 가운데 9백만원은 내 부인에게 전해주고 나머지 4백만원은 당신이 가져라”라는 말을 남겼다. 정씨에게 얼마간 받을 돈도 있었던 김씨는 이를 근거로 당시 집주인 박아무개씨에게 전세금 반환을 요구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나는 돈이 없으니 당신이 세를 놓아서 다음 세입자에게 받든지 하라”며 김씨의 요구를 거절했다.

결국 김씨는 2년 만인 지난 96년 9월에야 새 세입자 이성자씨(가명•여•47)를 통해 전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었지만 그 역시 지난 2001년 3월 암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김씨의 뒤를 이어 지하에 입주한 이씨는 스웨터용 털실공장을 운영했다. 약 2년쯤 공장을 운영하던 이씨는 수지가 맞지 않자

98년 들어 공장을 거의 놀리다시피 했다고 한다.

같은 해 9월 지하실은 네 번째 세입자인 한성훈씨(가명•50)에게 넘어갔다. 옷가게를 운영하던 한씨는 보관창고로 지하를 활용했다. 한씨와 세 번째 세입자 이씨는 내연의 관계였다는 게 경찰의 귀띔.

지하실의 마지막 세입자는 김도경씨(가명•40)였다.

지난 99년 3월 보증금 2백만원 월세 20만원에 입주한 김씨는 종업원 9명을 두고 스웨터 옷감공장을 운영했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종업원 가운데 한명이었던 홍아무개씨가 지난 2000년 교통사고로 사망하더니 지난해에는 신아무개씨가 간암으로, 이아무개씨가 폐암으로 차례로 병사한 것. 올 5월에는 급기야 세입자 김씨의 친구이자 종업원이었던 최아무개씨마저

당뇨로 목숨을 잃고 말았다.

집주인과 세입자들을 상대로 한 탐문수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경찰은 영 개운치 않은 표정이다. 물론 이번에 발견된 변사체의 죽음과 다른 지하 입주자들의 사고사나 병사를 결부시킬 만한 근거는 없는 상태. 하지만 단지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이들이 연이어 당한 액운이 너무 공교롭기 때문이다.

같은 지하실에 입주했던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 나간 사실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소문처럼 변사체 여인의 원혼과 이들의 죽음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묘한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사건을 둘러싼 무성한 추측들은 또 하나의 ‘괴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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