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저의 이야기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큰아들의 첫째였던, 장조카인 저를 끔찍하게 생각해주셨습니다.


병명은 암이셨고, 이미 말기를 지나 임종을 기다리는 때였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부르셨고, 저에게 만원짜리 하나를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 가서 떡이랑, 과일 좀 사오너라. "


전 이상했지만 얼른 달려가 인절미와 사과를 사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엄마, 아빠가 모르게 빨리 인절미와 사과를 장농 안에 숨기라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어날 기력도 없으셨으니까요.


속으로 항상 죽도 제대로 못넘기시던 할아버지가 이걸 왜 사오라고 하셨을까?? 라고 생각하며.. 전 할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였고, 그렇게 한 일주일이 지난 후였습니다.


늦은 밤 소변이 마려워 잠에서 깬 저는 할머니댁의 푸세식 화장실이 무서워서 마루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할아버지 방에 있는 요강이었고, 조용히 문을 열고 요강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어두운 방 안에서 기력도 없으셨던 할아버지가 우뚝 일어나셔서는 장농문을 반쯤 열고 그 안으로 몸을 쑥 넣으시고 무언가를 하고 계신 것이었습니다.


전 어린 마음에 그 모습이 할아버지가 건강해 지신 것으로 보고, 너무 좋아했습니다.


" 와!~ 할아버지! 이제 일어설 수 있으신 거예요? "


그런데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으셨고, 전 이상해서 불을 켰습니다.


불이 켜지자 갑자기 할아버지가 굉장히 놀라신 듯 저를 힐끔 쳐다보시더니 인절미랑 사과를 바닥에 던져 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할아버지 얼굴은 정말 딴사람 같더군요.


할아버지의 손과 얼굴에는 인절미의 콩가루가 범벅이 되어 계셨고, 저를 힐끔 쳐다보시고는 장농문을 닫으시고 마치 시치미를 때 듯이 바닥에 앉아 아무 말도 없이 벽만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전 너무 놀라서 밖으로 뛰어나가 엄마를 깨웠습니다.


온 가족이 모두 늦은 새벽에 일어나 할아버지의 방으로 모였고, 그때 할아버지는 이불 위에 다시 누워계셨습니다


무슨 일이냐며 저에게 물으셨고, 전 자초지종을 설명드렸죠.


평소 불교신자이셨던 할머니는 어디론가 전화를 거셨고, 새벽 3시쯤이 된 시각에 웬 스님 한 분이 오셨습니다.


스님은 가족을 내보낸 뒤 할아버지 앞에서 불경을 외시더군요.


그리고 나오셔서 말씀하시길,


기력이 약해지신 할아버지에게 머슴귀신이 씌였다고 하시더군요.


이어, 앞으로 3~4일 후에 임종을 하실 것이라며, 내일 아침이 밝으면 맛있는 음식을 원없이 대접한 후에 임종 사실을 알려주라고 하더라구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할머니는 스님이 시키는대로 하셨습니다.


그 날 아침에 전이며, 불고기, 떡, 생선, 국 등 제삿상에나 올려질 듯한 맛있는 음식들이 한상 만들어졌습니다.


놀라운 건 할아버지가 상을 보시고는 벌떡 일어나셔서 허겁지겁 드시기 시작하더라구요..


그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마치 일주일 굶은 건장한 청년처럼 드시는데...


밥을 두 세 공기나 드시더니 배가 부르다며 주무신다고 하셨고..


할머니는 가족이 있는 앞에서 앞으로 3~4일 후에 임종하실거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를 말렸지만...


할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더니 갑자기 목청을 높여 우시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더니 할머니의 손을 잡더니 평소 쓰지 않는 말투로,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내 한이 이제 없어 고맙습니다.. "


라고 말씀하셨고.. 그리고 정말 3일 뒤에 임종하셨습니다.


할아버지가 그때 왜 그렇게 행동하셨는지는 임종 전 의사에게 물어봤는데도 이해가 안 된다고 하셨다고..


그냥 둘러대기에는 아마 임종 전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셔서 잠시 그런 행동을 하신 것 같다고..


정말 귀신이 있기는 있나 봅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며 한편으로 안타까우면서, 오싹해지기도 합니다.



참고로 할머니한테 들은 말인데,


그때 할아버지와 함께 방에 있었을 때에 그 머슴귀신이 할아버지의 임종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그 혼이 할아버지 대신 저에게 옮겨 왔을 수도 있었다고 하시더군요...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유머게시판 베스트

글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