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한편이 한글에 다 안들어가네요,... 부득이 하게 잘라 올립니다.
도대체 지금이 몇 시지?
새벽 세 시. 피비린내와 배설물의 냄새를 맡으며,
이 곳에서 다섯 시간이나 있었구나.
내 온몸은 피와 오물로 가득했다.
어서 빨리 끝내고 목욕이나 했으면 좋겠다. 우선은 좀 쉬자.
내가 지금까지 도대체 뭘 했지? 시체의 머리는 미장원에 있는 가발 마네킹처럼 세면대 위에 잘 모셔 놓았고,
그 뒤에 어깨와 대퇴부에 있는 경동맥에서 피를 대충 뽑아냈다.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그리고, 지금 욕실 바닥엔 인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고깃덩이와 뼈들이 늘어져 있다.
자꾸 바닥이 미끌거려 몇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자칫하면 여자애가 그랬듯, 내가 뇌진탕으로 죽었을 지도 모른다.
자, 다시 시작하자. 난 피로 물들어 있는 커터를 들었다. 그리고, 얌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머리를 집었고, 두피를 벗기기 시작했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 하긴,
10kg이 넘는 쓰레기 봉지를 수백 바퀴는 돌렸으니..
뼈는 의외로 차지하는 부피가 적다.
문제는 피와 수분을 잔뜩 머금고 있는 내장들.
구멍을 뚫은 쓰레기 봉지에 그것들을 넣고
쥐불놀이를 하듯이 돌린 탓에 욕실의 천장이고, 바닥이고 할 것 없이 온통 피가 튀었다.
원심력의 원리를 이용한 인간 탈수기가 된 것이다.
진짜 탈수기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기야, 탈수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런 것들을 넣고 돌릴 순 없는 일이지.
나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두 개의 쌕에 들어가기에는
부피가 커 보인다.
피나 오물들은 배수구나 화장실 변기에 쏟아 버리면 그만이지만,
내장은 그럴 수도 없다.
결국, 그 방법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피하고 싶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천국으로 비상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쌕. 사람의 위는 상당히 많은 양을 담을 수가 있다. 난 두 눈을 감고, 한 손으로 코를 막았다.
그리고, 쓰레기봉지에 손을 넣었다. 물켱한 것을 한 웅큼 집어냈다.
느낌으로는 간(肝) 같은데.. 얼만큼 내 위에 담을 수 있을까.
새벽 다섯시. 욕실 청소를 끝냈다.
선반과 새면대, 욕조,
구석구석 단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닦고 또 닦았다.
이 곳에서 인체 분해가 일어난 것은 나와 시체만이 알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을 때, 청소를 멈추었다.
그리고 피바다에서 헤엄이라도 피고 나온 듯한 내 몸을 씻었다.
피 비린내와 구역질나는 냄새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몇 번이고 비누칠을 했다.
그리고, 양치질도.. 상쾌하게 샤워를 끝낸 나는 룸으로 돌아왔다. 엄마의 품같이 한 없이 편해보이는 침대가 나를 유혹했지만,
아직 할 일이 많았다.
우선, 여자애가 하고 있던 커다란 링 귀걸이를 이용해 귀를 뚫어야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귀를 뚫어보고 싶었는데
그걸 이런 식으로 하게 되다니..
날카롭게 갈긴 했지만,
귀를 뚫는 순간, 너무나 아파서 눈물이 나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다니.
거울에 비치는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내 모습은 처량맞기 짝이 없었다.
이 다음에 할 일은.. 화장대 위에 곱게 올려진 천연 가발. 시체의 머리에서 벗겨낸 두피를 머리ㅔ 써 보았더니,
약간 작긴 했지만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이것이 바로 시체를 걸어나가게 하는 방법이다.
내 천재적인 머리가 어떻게 이런 작전을 생각해 냈는가 하면,
그녀의 키가 나만큼이나 크다는 것에서 시작했다.
사람의 눈과 기억은 참 편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눈은 피사체의 특징적인 부분만 잡아내고,
기억은 그 특징적인 부분만 자신의 뇌에 각인시켜둔다.
데자뷰(dejavu)라는 현상 역시 이런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처음 접하는 것을 보고 어딘가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그것과 비슷한 것을 보고 인간의 뇌가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 모텔에 들어올 때, 빨간 머리는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내 뒤에 멀찍이 서 있던 여자의 무엇을 보았을까.
첫 째는 큰 키다.
둘 째는 긴 머리칼, 세 번째는 눈에 띄는 귀걸이. 이 세가지라고 난 확신한다. 그리고 난 이 세 가지로 빨간 머리의 눈을 속일 것이다.
여자의 키가 커서 분해하는데는 힘이 들었지만
그것은 나에게 유리한 점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의 노력이 크다.
워낙 곱게 자란 탓인지, 내 피부는 여자 못지 않다.
철없던 대학 1학년 때, 잠깐 머리를 기른 적이 있었다.
그때, 참 이런 경우를 많이 당했다.
"영숙아, 어디 가니?"
"예?"
"어머,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어요"
그때는 여성스런 내 외모가 불만그러웠지만,
지금 나는 그것 덕분에 탈출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두 개의 쌕에는 시체가 나뉘어져 담겨있고,
귀걸이와 가발도 준비되었다.
난 핸드백에서 루즈를 꺼내 처음으로 화장을 하는
여대생의 기분으로 그것을 입술에 발랐다.
전체적으로 화장을 하는 게 변신에 더욱 유리하겠지만, 일단은 내가 화장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어설프게 되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나중일도 생각해야 한다.
화장을 지울일을.. 그래서 입술만 바르기로 했다. 강력한 빨간 색을 바르면 시선은 그 곳으로 모아지기 마련이니까.
천연 가발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청테이프로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붙였다.
나중에 떼어낼 때, 얼마나 아플까. 모자를 썼다.
완벽하다.
자세히 보면 이런 어설픈 변장은 눈에 띄겠지만,
지금은 새벽녘이고, 대개의 모텔과 마찬가지로
이 모텔의 조명도 그리 밝지는 않다.
그리고 여자들이 이런 곳에 드나들면서 수줍어하는 건 당연한 일.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이고 정문을 나간다 해도,
빨간 머리는 눈치를 못 챌 것이다.
자, 이제 출동 준비 완료다.
복도를 걷는데, 자꾸 다리가 휘청거린다.
누가 하이힐이란 걸 만든 거야!
그러고 보면, 여자들은 참 대단하다.
이런 걸 신고 잘도 걸어다니니..
하이힐 뿐 만이 아니다. 키는 비슷했지만, 이 여자의 코트와 치마가
나에게는 맞지가 않았다. 하기야, 남자와 여자는 어깨, 골반의 뼈의 모습이 현저히 마르다.
하지만
겨울이라는 계절이 그걸 막아줄 것이다.
코트로 감싼 몸을 보고, 남자니 여자니 관찰해 내기는 쉽지않다.
1층으로 내려왔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쌕 안에 있는 것들이 터지지 않을까. 혹시, 넘어지기라도 해서 가발이 떨어지면 어쩌지, 갑자기 옷이 투두둑 하며 뜯어지면..
아니야. 불길한 생각은 하면 안 돼.
프런트 앞을 지날 때, 빨간 머리가 고개를 내민다.
"저, 몇 호 손님이시죠?"
심장이 금새 폭발할 듯 뛴다. 대답을 하면 눈치를 채버릴 것이다.
내가 여자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한번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