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면 더 기묘해지는 이야기 (완)

1)

너는 죽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날 떠났다.

그런 너를난 보지도 못한 채 떠나보냈다.

후회스럽다고 말해도 너에게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잊고 싶다.

나는 이제널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

2)

하굣길에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네가 남기고 간 우산이 길바닥에 떨어져있다.

나는 그 우산을 들고 멍하니 서서

너의 집으로 가는 길을 바라본다.

웃으며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댔던 너의 얼굴이

눈물로 흔들리는 내 시야에 맺힌다.

작별이라는 건 예감하지 못할 때 더 슬프다는

노랫말이 어느선가 흘러나와 내 귓가에 조용히 울린다.

"가지 마."

네가 남긴 마지막 말이였다.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내게 조용히

속삭였던 말이였다.

하지만 그 한순간 나는 널 떠나야했고

너는 그렇게 나를 떠나버렸다.

P양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으니 네가 떠오른다.

너보단 나이 어린 소녀지만

빗줄기에 적셔지는너의 우산이 P양의 얼굴에 겹친다.

"미안해."

이런 말은 뒤늦은 후회를 더 아프게 만들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아직 너의 모습은 그대로,

지금 이 거리 위에서 웃던 얼굴 그대로 남아있어.

K는 우산을 들고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는 한 방울씩 떨어져 작은 자국들을 새기며 땅을 적시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지금은 아무런 말도 그에게 들리지도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3)

"가만히 있어. 저항해봤자니까."

하얀 살결이 부드럽게 내 손에 붙는다.

비명을 지르는 그녀의 입을 막을 땐

왠지 모를 흥분감이 내 가슴을 가득 채운다.

"제발... 그만하세요. 제발."

그녀가 울면서 몸부림을 친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녀의 저항은 내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어줄 뿐이다.

"이제 제대로 해봐야지?"

나는 그녀의 몸을 구석으로 밀친 다음

벨트를 풀고 그녀에게 웃으면서 다가갔다.

"너도 좋은 거야. 마지막으로 즐겁게 해주는 거니까."

그녀의 부드러운 젖가슴은 어느새 딱딱해져있었다.

4)

아무런 연계성도 없이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

모르겠다면 네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알게 될 거야.

뭐라고 지껄여도 부정할 수 없는 너의 길을 보게 된다면 말이야.

5)

"임형사님, 오늘은 못 나가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책상에 쌓인 수많은 파일들을 살피던 중 K에게서 문자가 왔다.

"무슨 일이야. 왜 못 나오겠다는 건데?"

나는 K에게 문자를 보내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천천히 연기를 들이마시며 허공을 향해 내뿜었다.

내뿜어진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보니

언뜻 K의 책상에 있는 달력이 눈에 띄였다.

"오늘이... 4월 13일."

그의 달력의4월 13일에는 붉은색 표시가 그려져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달력을 집어들고 그표시를살펴보았다.

4월 13일에 칠해진 붉은색 동그라미 밑에는 이런 작은 글씨가 적혀있었다.

'그녀가 죽은 날.' 이라고.

















<범인의 시점>

"시체는 금방 찾을 것 같고."

짧아진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일주일에서 이주일 후면 시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봤자지."

어느새 어둠이 내리고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내린 비에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눌렀다가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우산을 챙기고 편의점으로 갔다.

담배도 사려고했지만집에 지갑을 두고 와 돈이 부족해 커피만 사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가로등아래 한 여자가 우산을 쓴 채 아무도 없는 어둠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지만 옆모습을 보니 꽤 예쁜 얼굴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말에 계속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비가 오는데 집에 안 들어가시고 여기서 뭐 하세요?"

끄덕.

"술 마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집에 데려다 드릴까요?"

끄덕.

"집이 어디시죠?"

끄덕.

"집이... 어디세요?"

끄덕.

"말을 하셔야..."

끄덕.

"알겠습니다. 전 이만..."

끄덕.

그래서 난 아주 기분 나쁜 여자구만,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약간 빠른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예쁜 얼굴이라 약간 흥분이 됐지만 여자의 그 묘한 기운이 이상하게도

내 흥분감을 제어해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뭔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랄까.

아니, 내가 죽인 여자 중의 한 명인 얼굴 같다는 느낌이였다.

<K의 시점>

너의 무덤 앞에 서서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

네가 남기고 간 우산이 길바닥에 떨어져있다.

나는 그 우산을 들고 멍하니 서서

너의 집으로 가는 길을 바라본다.

웃으며 내 어깨에 살며시 기댔던 너의 얼굴이

눈물로 흔들리는 내 시야에 맺힌다.

작별이라는 건 예감하지 못할 때 더 슬프다는

노랫말이 어느선가 흘러나와 내 귓가에 조용히 울린다.

"가지 마."

네가 남긴 마지막 말이였다.

우산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내게 조용히

속삭였던 말이였다.

하지만 그 한순간 나는 널 떠나야했고

너는 그렇게 나를 떠나버렸다.

P양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으니 네가 떠오른다.

너보단 나이 어린 소녀지만

빗줄기에 적셔지는너의 우산이 P양의 얼굴에 겹친다.

"미안해."

이런 말은 뒤늦은 후회를 더 아프게 만들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아직 너의 모습은 그대로,

지금 이 거리 위에서 웃던 얼굴 그대로 남아있어.

이제 나도 죽으면 나와 같은 날 만날 수 있겠지?

<임형사의 시점>

벚꽃이 다 저물고 마침내 봄이 죽었다.

봄이 죽어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던 K를 생각했다.

긴 머리에 담배를 달고 살던 K가 죽은 지 오늘이 3년 째 되는 날이다.

"바보 같은 놈."

K는뭐라고 중얼거리다강물에 빠져 죽었다.

경찰은 당연히 자살로 처리했고 사건은 종결되었다.

달력을 보니 4월 13일. 다시 봄이 찾아왔다.

봄이 오면 나는 항상 K의 무덤에 찾아간다.

무덤에 갔다 오면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몸이 항상 피곤해졌다.

봄이 다시 왔으니 내일 K의 무덤에 찾아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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