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슉.
슉.
슉.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사키는 눈을 떴다.
침낭의 지퍼를 열고 몸을 일으킨 사키는 멍한 머리로 금방 들린 소리가 꿈 속의 것인지 현실의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슉.
소리와 함께 텐트가 안 쪽으로 크게 휜다.
당황한 사키는 침낭에서 빠져 나와 텐트를 뛰쳐나갔다.
바깥에는 여러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혼자 여행하며 여자가 혼자 여행하는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던 사키는 순간 위험을 느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캠프장의 관리소에 도착한 사키는 설치된 긴급 전화로 경찰을 부르고, 문을 안에서 걸어 잠궜다.
몇 분 뒤 도착한 두 사람의 경찰과 함께 텐트로 돌아가보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텐트는 떡하니 서 있었다.
경찰 한 명이 손전등을 들고 텐트 주위를 돌며 점검하고 사키에게 되돌아 왔다.
[위기일발이라는 것 같네요.]
[그, 그렇게 위험했던건가요?]
사키는 떨리는 입술로 겨우 물었다.
경찰은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뭐,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만...]
그 경찰은 텐트를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자세히 보니 텐트에는 작게 갈라진 틈이 여럿 보였다.
2.
12월 15일.
일기장을 사기는 했는데 뭘 써야 하나...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건 아니지만,
우선 자기소개라도 해볼까.
부모님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돌아가신후,
나는 작년부터 여동생과 둘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여동생도 올해 봄부턴 유학중.
그래서 이번 겨울은 혼자 생활하고 있다.
심심하고 시간도 남으니까 일기라도 써보려 한다.
참고로 이건 작년 크리스마스에 여동생이 선물한 노트다.
표지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그려져있다.
그나저나 일기라고 해도 의외로 별로 쓸 게 없구만.
오늘은 이제 그만 자야겠다.
여동생아,잘 자렴,
12월 16일.
펜은 손에 쥐었지만 쓸 내용이 없다.
여동생과의 추억을 적어나가려 해도 좀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여동생없이는 정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12월17일.
오늘은 친구놈한테 떠밀려서 미팅 약속을 잡았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에 미팅을 하는 것 같다.
여동생에게 말하면 화내려나?
12월18일.
문득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정말,오빠도 참!똑바로 좀 하란 말이야!」
다시한번 그렇게 말해주면 좋겠다.
그럴 수 없는 걸 알지만.
12월 19일.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미팅에 관해 이야기 했더니,
「글쎄... 괜찮지 않아?마음대로 하라구.」 라고 대답했다.
신경쓰고 있는 걸까?
귀여운 녀석이다.
물론 난 미팅 따위 안 나갈거지만.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12월20일.
여동생에게 작년 크리스마스에 준 선물...
이제는 내가 소중하게 쓰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올해에는 여동생에게 선물을 안 사줘서 돈이 꽤 남는다.
하...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12월 21일.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설날에도 안 오니까 만나려면 세 달은 기다려야 하나...
돈도 좀 모였겠다, 내가 미국으로 가 볼까?
12월 22일.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여동생을 만나고 싶다.
12월 23일.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가 보냈는지 적히지 않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아서 깜짝 놀란 모양이다.
서프라이즈 선물이라니, 역시 오빠 밖에 없지.
12월 24일.
정했다!
여동생이 있는 곳으로 갈 거야!
역시 난 여동생이 없이는 안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 일기인 셈이다.
그럼 안녕!
12월 25일.
메리 크리스마스!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동생은 갑자기 일본에 돌아오려는 것 같다.
하마터면 내가 미국에 갈 뻔 했는데, 다행이다.
여동생은 그렇게 세뱃돈이 받고 싶은걸까?
그렇지 않으면 내가 보고 싶어졌나?
귀여운 녀석이다.
세뱃돈 잔뜩 준비하고 기다려야지.
12월 27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본으로 돌아오던 여동생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한다.
시체의 꽉 쥔 손에는 내가 선물한 지갑이 있었고, 지갑 속의 신분증으로 신원이 판명된 것 같다.
이틀에 한 번씩 써 오던 일기도 이제 오늘로 마지막이다.
페이지는 아직 남아 있으니, 언젠가 이 슬픔에서 회복될 날이 온다면 내년 12월에는 여동생과의 추억이라도 적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