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3월 28일 부산 북구 구포역 근처에서 일어난 열차 전복 사고로,
서울발 부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탈선-전복하여 78명의 사망자를 내고
198명이 부상당한 참사입니다. 기관사가 생존했기 때문에 전후 상황이 금방 파악됐는데,
전역인 물금역을 지나 구포역 정차를 앞두고 해당 구간을 통과 중
사고지점 100m 앞에서 선로 지반이 무너지는 것을 기관사가 발견하여
비상제동을 시도했지만 제동거리가 부족하여 기관차와 발전차가
무너진 지반 아래로 전복됐고, 뒷 차량도 탈선됐습니다.
참고로 사고의 원인은 선로 아래로 관통하는
전력관계 공사를 시공사 멋대로 발파까지 해가며 시공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공사는 악덕기업으로 낙인 찍혀
6개월 영업정지를 당하고
국내 공사 수주를 받기 힘들어졌는데
결국 해외로 가서 두바이에서 초고층 빌딩을 짓는 기업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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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4개월 뒤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1993년 7월 26일, 김포 공항엣서 출발해서 목포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였던
아시아나 733편 여객기가 전남 해남의 한 야산에 추락한 사고입니다.
당시 목포공항엔 강한 비가 내리고 있었고,
파일럿은 세번 착륙을 시도하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네번째 착륙을 시도하던 여객기는, 3분후 목포공항의
관제레이더에서 사라지며 통신이 두절되고, 공항에서 10km정도
떨어진 어느 야산에서 발견됩니다.
총 탑승인원 106며중 68명이 사망한 사고로,
파일럿의 무리한 착륙 시도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그리고 이 사고의 3개월 뒤,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일어나게 됩니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의 위도 근처에서 여객선
서해훼리호가 침몰해서 292명이라는, 한국에서 사고로 3번째로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입니다.
이 사고는 특히 인재로 꼽히는데,
먼저 출항 당시 기상여건이 매우 좋지 않았는데 무리하게 출항했고,
기기 조작도 상당히 무리수를 가했으며,
화물이 선박 앞쪽에 집중적으로 실려
무게중심이 앞으로 기우는 상황에서 결국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 초과승선에는 위도의 관광객이 크게 늘어난 것도 한몫했는데
계속해서 관광객들과 위도 주민들은 증편을 요구했지만 영세업체라면서 허가를 거부했고,....
1994년
1994년 10월 21일에 일어난 성수대교 붕괴사고입니다.
32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하루아침에 멀쩡해 보이던 다리의 가운데가 뚝 떨어진
사고로 전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습니다.
특히 붕괴시간대가 학생들의 등교시간이여서,
추락한 시내버스에 타고 있던 여학생들의 죽음이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