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경희대 76학번 국사학과 학생들이 1978년 여름 MT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 사회를 떠들썩 하게 했던 의문의 죽음과 관련된
기사와 몇몇 책을 참고로 재구성 해서 이야기 시작 할겠습니다.
그 날따라 날씨도 좋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배에 오른 학생들은 젊음을 만끽하며 배에 몸을 맡겼다.
선발대 20명... 후발대는 교수를 포함한 3명 이렇게 23명이 어우령으로 MT를 갔다.
후발대는 이튼날 뒤늦게 출발한 3명은 어우령 고개에서 선발대와 합류하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했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의 교통편은 미흡해서 후발대는 버스에서 내려 어우령의 길목에서 해가 떨어졌다.
렌턴 하나로 산길을 더듬으며 길을 찾았지만 워낙 길이 험해서 쉽게 나아갈수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매다가 계곡 왼 편에서 희미한 불빛을 발견하고 안도에 한숨을 쉬며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불빛이 보이는 곳 가까이 가자 초라한 집 한채가 나타났다
처마밑에 앉아 사람을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좀더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자 사립문이 열리면서 한 노파가 걸어 나왔다.
이젠 살았다는 심정으로 말을 건넸지만 그 노파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다.
제주도 방언이 아주 심한 할머니의 말은 알다가도 모를 말들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수를 포함한 2명의 학생은 방안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열려고 하자 할머니는 굉장히 화를 내면서 알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교수가 방문을 열자 아주 처참한 광경이 나타났다.
선발대로 먼저 떠난 20명 전원이 배낭과 물건을 꼭 쥔채 방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입을 떼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 죽어 있었던 것이다.
후발대 3명은 부리나케 그 집을 뛰쳐 나왔다. 다음날 경찰과 함께 그곳을 다시 찾아갔다.
경찰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한편 대참사의 경위를 알기 위해 여러가지 조사를 시작했다.
나중에 밝혀진 이야기로는 20명도 어우령으로 들어가는 초목에서 길을 잃었다.
밤길을 헤매다 불빛을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 왔던 학생들은 할머니 집에서 잠시 쉬다가 어우령으로 오르기로 했다.
한 학생이 제주도 출신이라 방언을 알아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때 할머니가 어우령으로 오르지 말라고 당부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젊음의 호기로 결국 산을 올랐던 것이다.
그러자 할머니는 대성통곡을 하며 마지막으로 당부 하기를 어우령에 도착하면 오른쪽 길로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선발대 20명은 집을 나와 할머니가 말해준 길로 걸어와 무사히 어우령의 갈래길로 접어 들었다.
역시 두갈래길이 나타났는데 왼쪽 길로 들어가고 만 것이다.
할머니의 말을 무시한채..
오른쪽 길보다는 왼쪽 길이 더 등산로 답고 길이 반듯했기 때문에....
수사진은 할머니에게 왜 사람들이 죽었는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20명의 주검들은 외상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사망원인을 추측했는데 가스 혹은 유독 물질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추측했지만 그 역시 부검을 통한 내과의 이상은 없었다.
그럼 도대체 의문의 죽음은 왜 일어 난 것일까?
그리고 끝까지 죽음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 할머니...
왜 할머니는 오른쪽 길로 가라고 했을까? 그리고 그 시체들은 그 방안에 신발도 신겨진 채로 몸 한구석 긁힌 자국도 없이 방 안에 누워 있었을까?
할머니는 알고 있다.
하지만 끝까지 그 비밀을 함묵한채 입을 열지 않았다.
할머니는 왜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을까?
아직도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풀리지 않았지만 세인들의 관심은 백지장처럼 모두들 이 죽음을 잊고 있다.
여러분이 혹시 젊은 세대라면 부모님이나 나이드신 분들께 물어보기 바란다.
70년대 말에 어우령으로 MT를 떠났던 경희대 국사학과 학생들의 의문의 죽음을 기억하는지...
지금은 후발대로 출발했던 3명은 교수는 사망하고 한명은 정신병자가 되었으며 나머지 한명은 모든걸 잊고 잘 살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내용들은 픽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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