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 위치한 킹 카운티. 한명의 연쇄살인범이.
지역전체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게리 리지웨이 "그린 리버 킬러" 라는 별명이 붙으며.
그린강을 주 무대로 50명이 넘는 여성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역대 최대의 살인마입니다.
게리 리언 리지웨이 (Gary Leon Ridgway) 속칭 게리 리지웨이
게리 리지웨이. 그는 1949년 2월 18일.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3형제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그의 아버지 뉴튼 리지웨이는 버스 운전기사였고.
어머니인 메리 리타는 JC.페니사의 영업 사원이었습니다.
리지웨이 가족은 1958년. 워싱턴주로 이사했고. 이후 게리는
이곳에서 성인이 될때까지 성장하게됩니다.
일단, 그의 성장배경은 '정상적'이라고 할수없는 환경에 놓여있었습니다.
부모님. 특히, 그의 어머니 메리리타가 문제였는데.
그녀는 지배적인 성향의 여성으로 집안전체를 휘어잡고 있었죠.
남편인 뉴튼은, 부인의 행동에 무기력하게만 반응했으며..
아이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어머니에게 육체적인.정신적인
양면에서 거의 매일같이 폭력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어머니 메리리타와 고교시절 게리 리지웨이
이런 불안정한 양육환경 탓인지 게리는 야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걸핏하면, 오줌을 지리는 것이 다반사였죠.
하지만 어머니 메리리타는. 이것이 정서적인 결핍에서 나오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여. 사람들앞에서 대놓고 창피를 주는 식으로.
어렸던 게리 리지웨이에게 극심한 굴욕감과 증오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런 어머니가 밖으로 외출할때는. 꽉끼는 옷과, 짙은 화장을하고 나갔으며.
그 모습을 사람들이 말하길, 소위'길거리여성' 같다고 하였죠.
이는 게리가 그런 특정직업의 여성들에게 자기 어머니를 투영하여
그들에 대해 극도로 비틀어진 가치관을 갖게된 계기가 됩니다.
그의 이상성격이 본격적으로 들어나기 시작한 건. 그가 열여섯살이 되던해.
길에서 만난 여섯살짜리 꼬마를 꼬드겨..숲속으로 데려간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칼을 휘두른 일이었습니다.
칼날은 소년의 늑골을 통과하여 간까지 깊게 파고들었죠.
이 범행에 대해. 이후 게리가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죽이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항상 궁금했다.”
그후 1969년 6월. 게리 리지웨이는 스물살의 나이로 고등학교를 졸업.
그리고 8월18일 해군에 입대하여, 베트남에 파병되게 됩니다,
보급선에서 복무하게되면서, 그는 전쟁의 참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후 제대를 한 게리는 1970년 8월에 고교시절 사귀던 여성인
클라우디아 배로우즈라는 여성과 결혼하지만. 얼마간가 이혼.
이후 마샤 윈슬로와 결혼하여, 아들 매튜를 얻게 됩니다.
게리는 이때 기독교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녔는데.
두번의 결혼기간동안 이 열성은 광적인수준으로 발전했죠.
성경을 읽으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고
꾸준히 전도활동을 하며, 신의 자비와 구원을 설파했습니다.
그가 나중에 한짓을 생각해보면 정말 아이러니 한 행동이었죠.
(左) 웬디 리 코필드 (右) 데브라 보너
그로부터 얼마뒤 1982년 7월. 2명의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그린강위에
놓여있는 다리를 건너다가. 시체가 물가에 있는걸 발견하게됩니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그녀의 이름은 웬디 리 코필드.
16살이며 창녀였죠. 경찰에 조사에 따르면 사인은 '교살'이었습니다
그리고 8월 12일 23살의 데브라 보너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그녀 역시도 마찬가지로 매춘부였고 사인도 역시 동일하게 교살.
그렇게 그는 2명을 살해한것을 시작으로...
장차,역대최대의 살인마로 기록될 범행을 시작하게 됩니다.
물속에서 인양되는 오말밀즈의 시체
8월 15일. 한 청년이 그린강에서 래프팅을 하던도중 무언가에 걸리게 됩니다.
단순 장애물이라 여기고, 그것을 치울려는 순간. 보트가 뒤집혔고.
물속에 있던 그것을 보게되죠. 그건 사람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이 본게 마네킹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진짜 시체라는것을 깨닫고, 경악하게 됩니다.
허겁지겁 강둑으로 헤엄쳐 올라온 그는 경찰에 신고하게 되죠.
경찰의 지원병력에 따라, 사체를 인양하여. 검시한 결과.
16살의 오말밀즈라는 여성이며, 밧줄에 의한 교살인것으로 밝혀집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추가적인 수색에서 2명의 사체가 더 발견됩니다.
이들의 이름은 (31)마샤 채프먼. (17)신시아 힌즈.
이들도 앞선 희생자와 마찬가지로, 사인은 교살이었죠.
왼쪽부터 오말밀즈. 마샤 채프먼. 신시아 힌즈.
이렇게 불과, 한달동안 그린강에서 다섯 명의 여성들이 연달아 시체로 발견되었고.
사인도 동일하게 교살인 점을 볼때. 한명의 동일범의 소행으로 결론짓고.
FBI의 협력을 얻어, 특별수사본부가 발족되게 됩니다.
그들의 의욕적인 취지와는 다르게 경찰의 수사는 지지부진했죠.
쏟아지는 막대한 양의 정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으며.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수사하는 등의 실책이 뒤따랐습니다.
그동안 게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8월 29에는 16살인 케이스 앤 리와 테리 르네 밀리건을 살해.
그리고 9월 15일 19살의 메리 브리짓 미헌이 산책도중 희생됩니다.
1982년 17살의 지젤 A 로본이 시신으로 발견된 것에 이어.
이후, 추가적으로 열여섯명의 시체가 또다시 발견되게 됩니다.
이들 대부분이. 스트립에서 일을 했거나, 하고 있던 여성들이었습니다.
게리 리지웨이의 자택. 그가 사용하던 트럭
그러던 1983년 4월. 스트립바에서 일하던 마리말바라는
여성이 어느 남자와 이야기를 하던 중. 그의 트럭에 억지로 타는걸.
목격한 그녀의 남자친구가 트럭을 뒤쫒아갔으나, 그만 놓치고 맙니다.
그것이 그가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게된 순간이었죠.
이후 그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그가 봤었던 트럭을 찾아냈고.
그 트럭의 주인은 다름아닌. 게리 리지웨이.
남자친구는 그 트럭의 주인이 이자임을 확신하여.경찰에 신고.
이후 경찰이 도착하여 게리에게 마리 말바를 만난사실이 있냐고 물었지만.
게리는 당연히(...) "모르겠다. 만난적도 없다"고 하면서 부인했습니다.
경찰은 그것에 만족하고, 더 이상 조사하지 않고 떠나게 됩니다.
이후 공식적인 희생자만 해도 11명 추정되는 숫자만해도 20명을 넘기면서.
갖은 비난을 받게 되었지만. 수사는 진전이 없이 흘러만 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영원히 미제로 끝났지도 몰랐을 이 사건은,기술의 진보와.
한명의 진념어린 수사관을 통해 극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수사관의 이름은 데이비드 조지 데이브 레이처트.
현장을 조사하는 데이브 레이처드.
1950년 8월 29일 디트로이트 레이크스에서 일곱 형제중 맏이로 태어난.
레이처드는 1971년 공군에서 복무이후. 그의 부모가 그랬던것처럼.
킹 카운티지역의, 열성적인 법 집행관으로서 살아가게됩니다.
그러던 1982년 그의 인생에 있어, 운명적인 전화점이 될 계기를 만나게됩니다.
바로 그린리버킬러의 피살자중 한명인 마샤 채프먼과 대면한 날이었죠.
두 아이의 어머니였던, 여성이 처참한 모습으로 쓰레기처럼.
구겨져, 처참하게 버려진 모습은, 그에게 강한 충격을 선사함과 동시에.
범인에 대한 적개심과, 그를 잡기위한 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처음 사건이 발생한지 9년이 지나고, 50명 전후의 희생자들이 발생하고.
1천 5백만 달러를 쓰고 나서도, 수사본부는 여전히 그린 리버 킬러를 체포하지 못하자..
언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한 경찰에서는 수사 전담 팀을 해체되는 것에 이릅니다.
그 와중에 레이처트는 상부 지시로. 그린 강 연쇄살인사건 수사에서 손을 떼야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레이처트는 상부의 지시를 순순히 받아들여, 끝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수사권한이 없었음에도 그는 계속해서 개인적으로 살인자를 추적하였죠.
인내끝에, 과학 수사 기술의 발전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바로 DNA분석기술. 이를 통해 미처 확인되지 못한. 희생자의 신원을 밝혀냈으며.
다시 수사권한을 획득한 그는, DNA와 법의학 전문가들의 맴버로 구성된.
새로운 수사본부를 결성. 본격적인 재수사에 들어가게 됩니다.
과거 살인사건 조사에서 얻은 모든 증거들이 재조사되었고.
1982년에서 1983년 사이 살해된 세 명의 희생자에게서 채취된 정액샘플의 조사.
그리고 과거 주요 용의자로부터 채취한 체모같은 샘플들과,
증거보관실에 썩여두던 그 증거물들은, DNA 유전자 감식을 거치게 되었죠.
2001년 9월 10일, 레이처트는 실험실로부터 검사 결과를 통보받게됩니다.
이 소식은 지금까지의, 모든사람들의. 자신의 노력에 보답받는 결과였습니다.
희생자들에게서 채취된 샘플이 용의자 중 한 명과 동일함이 발견된 것.
그리고 그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자는 게리 리언 리지웨이였습니다.
그가 일하던 켄워스 트럭공장과 체포 당시 신문기사
2001년 11월 30일. 게리 리언 리제웨이는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가던 중. 경찰에 체포되게 됩니다.
자신들의 이웃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것에 대해 인근주민들은 경악했으며.
평소에 착실하고, 성실한 사람같았다고..믿을수없다는 반응이었습니다.
체포이후 용된 각종 혐의에 대해 그는 완강하게 부인했으며.
리지웨이의 변호팀은 살인에 대해 공개적으로 부인하며 변호했지만.
상황이 불리하다고 판단. 최소한, 사형을 피하기 위해서는...
당국에 협력해야 한다고 리지웨이를 설득. 그는 이를 받아들에게 되죠.
이후 변호팀은 플리바겐(사전형량조정제도)을 제안하게됩니다.
검찰 측과 사형 판결을 피하는 조건으로 모든 사실을 완전하게 자백할 것.
대신 당국의 희생자들의 유해를 찾는 작업을 돕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과 현장검증을 거치는 리지웨이. 그의 증언에 따라 사체를 발굴중인 모습.
합의사항에 따라 리지웨이는 사체를 유기했던 지역중 이전에 사체들이
발견되지 않았던, 곳으로 관계자들을 안내했습니다.
410번 주립고속도로에서 40피트 떨어진 곳에서 여성의 유골을 발견하였고.
이어서 8월에는 킹 키운티지역의 스코퀼미에서도 추가로 발견.
17살의 나이에 실종된 에이프릴 버트램으로 확인되었죠.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었던, 실종된 마리말바가 유골로 발견되게됩니다.
살해된지. 20년만에 그녀의 몸은 세상의 빛을 다시보게되었죠.
2003년 11월 5일. 킹 카운티법정은. 그린강 연쇄살인자의 희생자 가족들과
수사관. 경찰. 각지에서 몰려온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지켜보는 수많은사람들의 눈과,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지고 있는 가운데.
상급 판사. 리처드 존스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명,한명씩 거명하며.
리지웨이의 48건에 이르는 살인에 대한 유죄여부를 물었으며.
이에 리지웨이는 담담히,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다"고 말하였고.
이로서 그는 공식적으로" 미국역사상 가장 많은 살인을 저지른 자" 가 됩니다.
이후, 그린 강 연쇄살인사건의 희생자 가족들을 마침내 살인자와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리지웨이가 어디에서, 왜 희생자들을 살해했는지, 제프리 베어드가 설명을 하고,
리지웨이가 검사와 재판장의 질문에 답변을 할 때, 희생자 가족들은 흐느꼈습니다.
살인자가 열아홉 살 모린 피니 살인사건에 대한 혐의를 인정할 때,
그의 가족이었던, 분노에 찬 어느 남성은, 총을 쏘는 것처럼 리지웨이를 겨누었죠.
캐롤 크리스텐슨 이 1983년 사라졌을 때. 그녀의 딸이었던.
사라 킹은 당시 겨우 다섯살이었습니다. 그녀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내 어머니를 죽인 자와 얼굴을 맞대고,여기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겁쟁이며, 자신이 한 짓에 대해 쓸모 없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당신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있다.” 며. 리지웨이를 질책했습니다.
희생자가족들은 리지웨이가 희생자들이었던 많은 젊은 여성들을 쓰레기로 매도했지만,
리지웨이 그 자신이야 말로 진정한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며 분개하였죠.
특히, 열여덟 살 나이였던 1983년 사라졌다가, 20년이나 지나서 재판이 벌어지기
몇 달 전에서야, 유골로 발견된 마리 말바의 남동생 호세 말바 Jr.는 리지웨이에게.
강한 분노를 표출했고, 참지못한 그는 증언석을 나가면서 “개X끼”라는 말을하고 나갔습니다.
2003년 12월 18일, 킹 카운티 상급 법원 판사 리처드 존스는 리지웨이에게
가석방의 가능성이 배제된 총 48번의 종신형을 선고하게됩니다.
게리 리언 리지웨이는 선고를 들으면서, 사형은 면했다는 기쁨에서였는지..
어느 혹자가 말한듯이 참회(?)의 눈물이었는지 모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미리 준비한 글을 읽으면서 또 다시...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자기가 한 짓에 대해 후회스럽고 희생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살인자가 눈물을 글썽이며 건넨 사과는 과연 어느 정도의 진정성을 담고 있었을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이며. 정말로 회개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리지웨이의 자백이 담긴 비디오기록물. 좌측이 레이처드.
하지만, 그를 체포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데이비드 레이처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를 보고. 언젠가 비겁한 괴물,살인기계라고 쏘아붙인적이 있는데.
그는 동의한다는듯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리지웨이는 자신의 한 행동을 단 한번도 진심으로 후회한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들을 자신의 공적인양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고 언급했습니다.
어쨋거나 운좋게(?) 사형은 면한. 그는 워싱턴주립 교도소 독방에 수감되게 됩니다.
그러던 2010년 12월 21일. 워싱턴 주의 어느 산골짜기에서..그것도 과거
마리알바가 발견되었던 곳에서 100피트 떨어진 곳에서 두개골하나가
십대청소년들에 의해 발견되게됩니다. 조사결과 이 두개골의 주인은 레베가 베키 마레로.
당시, 세살된 딸이 있었고. 가족을 부양하기위해. 매춘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1982년 12월 3일 어느 모텔을 떠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는데.
이제와서야 두개골로서 발견된 것. 이로서 리제웨이는 레베카 살인사건혐의로
2011년 2월에 열린 재판에서 이미 판결을 받았던 48번의 종신형 에 이어..
49번째(...)종신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게리 리언 리지웨이. 특정 여성에 대한 증오로 살인을 시작하여.
공식적인 희생자만 해도 50명 가까이. 밝혀지지않는 살인까지 한다면.
90명이상은 족히 넘을것으로 추정되는. 최악의 살인귀.
그는 자신의 살인을 증언하여 살아남았고 여전히 생존해 있습니다.
게리 리지웨이는 공식적으로 미국 범죄 역사상. 다른 어떤 연쇄살인자들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죽인 인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 기록을 능가한 자는 아직까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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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게리 리언 리지웨이에게 살해당한. 희생자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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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이지만. 이 자에 대한 것도 영화의 소재로서 이용되었으며.
2005년 영화 ‘Green River Killer’가 개봉.
2008년에는 케이블 채널에서 ‘The Capture of the Green River Killer’를 방영되기도 하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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