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야구의 전설 'BIG 5'

고등학교 운동장 너머로 동여맨 스파이크 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울려 퍼진다. 길고 긴 겨울이 끝나고 고교야구 시즌이 찾아온 것을 알리는 소리다. 광복 후 첫 고교야구 대회가 열린 것은 46년 8월. 제1회 청룡기가 고고성을 울렸으며, 47년에는 황금사자기가 개최됐다. 한국전쟁으로 잠시 중단된 고교야구는 60년대 말 전성기를 구가한다.
67년 대통령배에 이어 71년에는 전국의 모든 고교야구부가 참가하는 봉황기가 시작됐다. 또한, 4개 전국대회 외에도 화랑기, 대붕기, 미추홀기, 무등기 등 지방대회도 열리며 지방 야구팬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그러나 82년 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도 모교의 명예를 걸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뜨거운 열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고교야구는 지난 65년간 한국야구의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를 길러 내며 야구를 사랑하는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그 추억을 전국대회(청룡기, 황금사자기, 대통령배, 봉황기) 최다 우승교 Big 5를 통해 살펴봤다.
 
‘고교야구의 전성기는 경북고의 황금기와 일치한다.’ 야구인이라면누구나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다. 그 말 그대로 경북고는 고교야구 전성기의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했다. 67년 대통령배와 청룡기를 제패하며 2관왕에 오르며 경북고 시대를 알렸다. 그 중심에는 임신근(작고)이 있었다. 김양중 백구회 명예회장은 “좌완투수 특유의 커브 낙차가 컸으며 제구력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타격도 아주 뛰어났다”고 회고했다.
투타의 에이스인 임신근에 조창수, 강문길 등이 뒤를 받치며 68년에는 최초로 전국대회 3관왕(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에 올랐다. 2년 연속 대통령배 MVP에 빛나는 임신근이 연 경북고 무적함대는 원조 돌직구 남우식을 앞세워서 또 한 번 천하 통일을 달성한다. 70년 우수투수상과 타격상을 받은 남우식의 활약 속에 대통령배를 제패하며 준비운동을 한 경북고는 71년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봉황기, 화랑기를 싹쓸이한 것이다. . . . . .
전국 규모의 5개 대회를 모조리 석권한 71년 경북고는 고교야구 역대 최강팀으로 손꼽힌다. 전관왕은 고교야구의 전력이 평준화되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나오기 어려운 대기록이라는 게 야구계의 중론이다. (사진=남우식 제공)
정현발, 천보성, 황규봉, 배대웅 등 산삼 깍두기에 인삼 총각김치가 즐비한 호화멤버 중에 단연 돋보인 것은 에이스 남우식. 천보성 한양대 감독은 “당시 동문 사이에서는 1점만 내면 이긴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위력적인 속구를 던졌다”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실제로 남우식은 대통령배와 청룡기, 봉황기 결승전에서 완투하며 1:0 승리를 지켜냈다.
“그해 11월 일본 원정에서는 1년 후배인 황규봉과 둘이 번갈아 던지며 6전 전승을 기록했다. 지금과는 달리 일본 야구가 한국보다 우위에 있던 시절이라서 일본에서도 난리가 났던 게 기억난다.” 남우식 푸르밀 대표이사의 설명이다. 72년에는 황규봉, 이선희 등의 활약으로 유일하게 대통령배 3연패를 달성했다.
81년 경북고는 또다시 고교야구 최강자로 군림한다. 당시 박노준과 김건우라는 확실한 쌍두마차를 앞세우며 최강 전력으로 평가되던 선린상고(현 선린인고)를 연거푸 꺾으며 3번째로 전국대회 3관왕(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에 올랐다. 초고교급 유격수 류중일에 좌완 에이스 성준과 잠수함 문병권이 뒤를 받쳤다. 류중일은 82년 7월 17일 잠실야구장 개장기념 우수고교초청야구대회에서 부산고 김종석을 상대로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며 일찍부터 스타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경북고는 93년 라이언킹 이승엽이 투타에서 맹활약하며 청룡기를 제패한 것을 끝으로 더는 왕좌와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경남고는 46년 제1회 청룡기 결승전에서 부산상업(현 개성고)에 패배하며 분루를 삼켰다. 하지만, 47년과 48년 청룡기와 황금사자기를 2연패 하며 초창기 고교야구 최강자로 군림했다. 49년에는 청룡기에서 김양중의 광주서중(현 광주일고)에 일격을 당했지만, 유일하게 황금사자기를 3연패 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경남고가 40년대 후반 거의 무적신화를 작성한 것은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린 장태영(작고)이 있었기 때문. 어우홍 스포츠앤스토리 고문은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55년과 67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강팀의 전통을 이어가던 경남고가 또다시 전국 무대를 호령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부터다. 73년 중앙고와의 최종 결승전에서 좌완 투수 천창호의 호투로 2:1로 승리하며 25년 만에 청룡기 왕좌에 복귀했다. 76년 청룡기에서는 군산상고와의 결승전에서 9:1로 대파하며 우승기를 휘날렸다. 이 경기에서 은테안경 최동원은 20탈삼진을 기록하며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했다.
73년 대형 유격수 김용희와 좌완 투수 천창호를 앞세운 경남고는 25년 만에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어우홍 당시 감독은 “부산역이 환영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며 그 시절의 고교야구 인기를 전했다. (사진=어우홍 제공)
이후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던 경남고는 90년 청룡기를 제패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98년 송승준, 강민영 원투펀치에 막강 타선을 자랑하며 최강 전력으로 평가됐지만, 대통령배 결승전에서는 동향의 경남상고(현 부경고)에 7:8 대역전패를 당했다. 하지만, 청룡기와 봉황기에서 우승하며 고교 정상에 우뚝 섰다. 특히, 봉황기에서는 포수 김진욱이 6경기 연속 홈런을 포함해 대회 최다인 8개 홈런을 기록하는 괴력을 발휘했다. 숱한 우승을 경험한 전통의 명문 경남고가 봉황기를 제패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도 경남고의 우승 행진은 멈출 줄을 모른다. 03년 또다시 봉황기 정상에 선 경남고는 06년과 07년에도 청룡기를 2연패 했다. 특히, 06년 진흥고와의 결승전은 보기 드문 명승부로 유명하다. 연장 16회까지 가는 혈전 끝에 무사 만루에서 터진 신본기의 끝내기 안타에 힘입어 2:1로 이겼다. 08년에도 청룡기 결승에 오르며 50여 년 전에 못 이룬 대회 3연패에 도전했지만, 대구고 임세원에게 9회 말 끝내기 2루타를 허용하며 무릎을 꿇었다.
‘청룡기 선연, 대통령배 악연.’ 경남고는 작년에도 청룡기 정상에 오르며 통산 9회나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대통령배에서는 4번이나 결승에 진출했지만, 번번이 왕좌에 오르는 데는 실패. 경남고가 대통령배와의 악연을 언제쯤 끊을 수 있을지도 고교야구의 관심사 중 하나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명포수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 광주서중(현 광주일고)과 경남중학(현 경남고)의 49년 청룡기 결승전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 경기였다. 0:1로 뒤진 광주서중은 9회 말 2사 후 상대 실책에 이은 김양중의 적시타로 극적인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연장 11회 말 경남고 내·외야수의 잇단 실책을 틈타 1루 주자 김용욱이 홈을 밟으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광주일고가 다시 전국 무대에 명함을 내민 것은 75년. 대통령배 결승전에서 경북고에 6:2로 승리하며 26년 만에 전국대회 정상에 올랐다. 이 경기에서 김윤환은 성낙수로부터 고교야구 사상 최초로 3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80년 대통령배 결승에서는 사상 최초로 광주지역의 팀끼리 한판 대결을 펼쳤다. 초고교급 선수들인 광주일고 선동열(투수)-허세환(유격수)과 광주상고(현 동성고) 김태업(투수)-이순철(유격수)의 맞대결로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승패는 싱겁게도 광주일고의 8:2 낙승. 김태업 씨는 “예상과는 달리 차동철이 선발 등판하면서 경기가 꼬였다”며 “정신력에서 광주일고가 앞선 것 같다”고 밝혔다.
49년 청룡기에서 무적함대 경남중은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겨두고 나온 실책에 무너졌다. 그러나 극적인 동점과 역전은 광주서중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한 결과였다. (사진=김양중 제공)
광주일고가 고교야구 최강팀으로 우뚝 선 것은 83년이다. 문희수, 이강철, 박준태, 김선진, 김성규, 서창기, 정영진 등 막강멤버를 자랑하며 대통령배, 봉황기, 황금사자기를 차례로 차지했다. 특히, 에이스 문희수는 3개 대회에서 최우수투수에 선정되었고, 봉황기에서는 평균자책점 1.09라는 짠물 투구를 선보였다. 84년에도 박준태, 이강철, 정회열 등이 활약하며 황금사자기를 2연패 했다.
88년 청룡기 결승에서는 군산상고를 상대로 11회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5:4로 역전승을 거뒀다. 마침내 39년 만에 청룡기를 품에 안은 것이다. 3:4로 뒤진 11회 말 2사 1, 3루에서 끝내기 2루타를 친 이가 바람의 아들 이종범. 훗날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다운 일타였다. 95년 청룡기에서는 메이저리그 출신 트리오인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이 힘을 모아 7년 만에 왕좌에 올랐다. 김병현은 덕수상고(현 덕수고)와의 결승전에서 18탈삼진을 뺏는 역투를 펼쳤다.
02년에는 김대우, 고우석 등의 활약으로 청룡기와 대통령배를 품에 안았다. 이후로도 황금사자기 3회, 대통령배 1회를 더 우승 컬렉션에 추가하며 80년대부터 시작된 광주일고의 기세는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상윤, 선동열, 이종범, 서재응, 최희섭, 김병현 등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명가의 자존심은 내일도 계속될 것이다.
 
부산고 에이스는 고교야구의 에이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명투수를 수두룩하게 배출했다. 부산고가 고교야구 정상에 처음으로 선 것은 62년. 청룡기에서 김소식-박명렬 배터리와 하일 등이 활약하며 대구상고(현 상원고)를 최종 결승에서 6:0으로 꺾었다. 이후 침체기를 걷던 부산고는 70년대 말부터 고교야구를 호령하기 시작한다.
78년 부산고는 초고교급 에이스 양상문을 앞세워서 대통령배와 청룡기를 잇달아 석권했다. 79년에도 안창완, 김민호, 조성옥(작고) 등의 활약으로 대통령배를 우승한 선린상고를 5:2로 제압하고 2년 연속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김민호 부산고 감독은 “당시는 수비 포메이션이 뭔지도 모르는 시대였는데, 지금 프로에서 하는 번트 시프트를 비롯해 수비 포메이션 훈련을 많이 했다. 그런 수비 조직력이 우승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김민호 부산고 감독은 연습이나 경기 때나 작전을 거의 내지 않는다. 선수들이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다. 감독의 욕심(우승)이 아니라 선수의 장래를 생각하는 게 지도자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진=부산고 제공)
양상문-안창완의 좌완투수 계보는 82년 김종석으로 이어졌다.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마운드에서는 6피안타 3실점 완투하고, 타석에서는 6회 역전 3점 홈런을 치는 원맨쇼를 펼치며 우승으로 이끌었다. 85년 봉황기에서는 최동원-선동열을 잇는 강속구 투수의 대명사인 박동희가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냈다. 34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은 ‘0’. 84년부터 시행된 이닝 수 제한이 없었다면 더 많은 우승을 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86년에는 사이드암 권영일이 두각을 나타냈다. 대통령배에서 노히트 노런을 작성한 그는 봉황기 결승에서 광주진흥고 오희주와 팽팽한 투수전 끝에 2:1로 승리를 거뒀다. 전년도에 이어 대회 2연패를 달성했다.
89년 대통령배에서는 투타에서 맹활약한 강상수를 앞세워서 돌풍의 주역 경주고를 4:2로 잠재우며 우승기를 휘날렸다. 92년에도 손민한, 주형광, 진갑용 등이 활약하며 대통령배 정상에 섰다. 93년 봉황기에서는 주형광이 맹위를 떨치며 성남고를 물리치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경북고와의 32강전에서 2:2 동점이던 6회 말 결승 2점 홈런이 나왔다. 홈런을 친 이는 주형광이며 홈런을 맞은 투수가 이승엽. 야구관계자들 사이에는 홈런왕이 홈런을 허용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으로 인구에 회자하고 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는 2년(99, 00년) 연속으로 대통령배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2년 연속으로 MVP에 선정된 것은 임신근, 남우식, 김동수, 그리고 추신수뿐이다. 지역의 라이벌 경남고가 대통령배에서 무관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산고는 통산 6회나 왕좌에 올랐다. 하지만, 황금사자기에서는 단 한 번도 정상에 서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다.
 
75년 8월 11일 야구부를 창단한 신일고는 76년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게다가, 최동원의 경남고와 김용남의 군산상고를 연파했기에 그 의미는 더 컸다. 우승의 주역은 일몰 일시정지경기로 연이틀에 걸쳐 최동원과 완투 맞대결을 펼쳐 1:0 완봉승을 거둔 김정수(작고). 78년에도 함께 황금사자기에서 우승을 맛본 양승호 롯데 감독은 “정말 불같은 강속구를 던졌다. 또 타격은 얼마나 잘했는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91년에는 황금사자기와 봉황기에서 정상에 서며 고교 최강의 자리에 올랐다. 당시 신일고는 조성민, 설종진, 강혁, 백재호, 김재현, 조인성 등 ‘소녀시대’가 부럽지 않은 멤버 구성. 당시 휘문고와의 봉황대기 8강은 야구팬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경기고 손경수와 함께 ‘서울 빅3’로 불린 임선동과 조성민이 맞대결을 펼쳤기 때문. 조성민은 임선동에게 솔로홈런을 맞았지만, 8이닝 1실점 하는 역투로 4:1 승리를 이끌었다. 대통령배와 청룡기를 제패한 경남상고가 없었다면 71년 경북고에 이어 전관왕도 가능했을 것이다.
91년 신일고는 2관왕에 올랐지만, 호화멤버를 생각하면 2% 부족한 결과다. 에이스 조성민이 부상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사진=야구라)
2관왕의 아쉬움은 97년에 풀었다. 고교야구의 수준이 상향평준화되며 83년 광주일고 이후 나오지 않던 3관왕에 올랐다. 대통령배에서는 광주일고와의 8강전에서 치열한 난타전 끝에 10:13으로 패배했지만, 청룡기에서는 배명고를 8:6으로 물리치며 창단 이후 처음으로 청룡기 정상에 섰다. 봉중근은 타석에서는 4타수 4안타 3타점을 기록하며 고비마다 마운드에 올라 불을 껐다. 봉황기에서는 경북고를, 황금사자기에서는 광주일고를 물리쳤다. 특히, 황금사자기 결승에서는 7:7 동점이던 9회 말 1사 만루에서 김광삼의 끝내기 안타로 대통령배에서의 아픔을 되갚았다.
신일고가 3관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봉중근, 김광삼, 안치용, 현재윤, 조재영 등 초호화멤버의 힘이 컸지만, 한동화 감독의 지도력도 빼놓을 수 없다. 한 감독은 82년 MBC 코치를 시작으로 해서 95년 5월까지 쌍방울 감독을 역임하는 프로야구에서 잔뼈가 굵은 지도자 중 한 명. 프로야구의 기술을 아마야구에 접목하며 한 단계 높은 지도력을 발휘한 것이 3관왕이라는 성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93년 황금사자기에서는 덕수상고와의 결승전에서 홈런 3개를 몰아친 조현의 활약으로 2년 만에 정상에 복귀했다. 또한, 96년에도 황금사자기를 차지하는 등 신일고는 유독 이 대회와 인연이 깊었다. 87년 박철홍과 동봉철이 맹위를 떨치며 V3를 달성했으며 97년과 03년에도 우승컵을 들면서 총 8회나 환호성을 올렸다. 09년에는 1학년으로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하주석 등을 앞세워 청룡기를 제패하며 신흥 명문의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고교야구의 새로운 변화, 주말리그제
2011년 고교야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주말리그가 시행되기 때문이다. 강승규 대한야구협회장은 “학생야구선수의 학습권을 보장하는 주말리그를 통해 지·덕·체를 겸비한 인재 양성이야말로 학원야구가 나아갈 바”라고 밝혔다. 학원야구가 더는 야구기계를 양산하는 공장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학원스포츠의 본래 의의는 교육의 일환에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학원스포츠는 교육과 가까이할 수 없는 당신이 된 것이 현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야구기계 양성이 아닌 전인교육을 통해 학원야구에 교육을 되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진=야구라)
오는 3월 26일 개막할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전국을 8개 권역별로 나눠 리그전을 펼치고, 전·후반기 왕중왕전을 겸해 황금사자기와 청룡기가 각각 열린다. 또한, 주말리그가 끝난 8월에는 대통령배가 여름방학을 이용해 개최된다. 방학기간 외에는 주말과 공휴일만 경기를 가져서 학원야구에 공부하는 풍토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구계 일부에서는 열악한 인프라 등을 이유로 주말리그는 시기상조라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말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시기상조일까? 음악과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다 받듯이 야구선수가 수업과 담을 쌓을 이유가 없다는 점만 생각해도 이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시기상조가 아니라 이미 하고 있어야 할 것을 뒤늦게나마 따라가는 것. 한 해 프로에 지명을 받는 선수는 최대 80명밖에 안 되는 바늘구멍인 것이 현실이다. 그 바늘구멍을 통과했다고 해도 2, 3년이 지나면 상당수가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고교야구 주말리그는 야구실업자를 근본적으로 방지하는 제도 개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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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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