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도 없고 살인자 씨리즈나..

시체 전시자 -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
 
 
당신이 어느날 길을 가는데 땅에 꼽혀 있는 긴 장대에 잘린목이 걸려 있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것이 잘려진 개의 목이든, 사람의 목이든 말이다.

'펑범한 청년' 제프리 다머는 평범한 나머지 사람머리를 장대에 꼽아서 길에 전시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의 머리만 전시 했다.




미국 오아이호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제프리 다머의 가정은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모는 하루가 멀다하고 싸움을 했고, 아들 제프리 다머를 돌볼 시간은 없었다.

외톨이가 된 제프리 다머는 홀로된 시간을 취미 생활로 보내기 시작했다.

다람쥐 같은 작은 동물을 잡아다가 가죽을 벗겨 염산에 녹려 버리는 것이다.
그는 동물의 시체를 위한 동물 묘지를 만들기도 했고, 해골을 모아 놓은 전시실을 만들기도 했다.

그의 나이 18세.
동성애를 즐긴 한 남자를 토막살해를 하면서 그의 살해 행각은 시작된다.

그 후 6년으로 예정된 군대에 입대 했으나, 2년에 조기 전역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여러 직장을 옮기면서 그의 살해 행각은 잠시 주츰 했으나 다시 게이클럽에서 만난 남자를 토막살해 하면서 그의 살해 행각은 다시 시작된다.
1980년대 후반 13세의 동남아시아 소년을 성폭행한 이유로 10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을 하게 된다.

1991년 제프리 다머에게 탈출한 한 남자의 신고로 제프리 다머의 실해 행각은 멈추게 된다.

그의 집에는 염산에 녹여 버린 시체,
토막내어 잘려진 머리가 들어 있는 냉장고를 비롯해서 수십구의 시체와 유골이 발견되었다.
그의 방안에서 나온 훼손된 시체만 11구.

제프리 다머가 시인한 살해 횟수는 총 17명.

그는 재판중에 금고에 시체를 보관하고, 시체성애를 하고, 식인까지 하고 싶다고 시인했다.
그는 정신병판정을 원했지만, 최후진실에서 "죽고싶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의 소원은 이루워 졌다.
법정형이 아닌 1994년 11월 교도소의 다른 죄수가 그를 몽둥이로 때려 죽인 것이다.

제프리 다머 사후, 재판은 계속되었다.
이유는 그의 뇌를 부검해서 반사회적인물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그의 모친과 모든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싶어 모조리 화장하고 싶어하는 그의 부친의 법정 싸움 이였다.

1995년 12월.
재판부는 그의 시체를 모두 화장하라는 재판을 끝으로 제프리 다머는 이 세상에서 완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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