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층간소음. 내가 윗집으로부터 배운 것

*깨알베스트에 올림된 게시물입니다.*

윗집에 젊은 부부가 산지 2년 가량 되었다. 처음 이사 올 때는 조그마한 남자아이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아이 동생도 생겼다. 처음 이사 올때부터 새댁이 참 싹싹했다. 이사왔다고 떡을 들고 찾아와 인사를 하길래 참 근래 보기 드문 젊은 부부구나 싶었다.
 
그 날부터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남자아이가 즐겁게 뛰노는 듯했다. 하지만 늦은 밤까지 들리는 소리는 아니고 어른이 내는 층간 소음과 달리 견디기 괴로운 묵직한 저주파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길래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쯤 지났을까. 과일을 들고 그 새댁이 찾아왔다. 자기 아이가 뛰어서 시끄럽지 않으시냐고, 죄송하다고 하며 과일을 주고 갔다. 또 한달 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새댁이 남자아이 손을 꼭잡고 같이 찾아와 훈제 오리구이를 주고 갔다. 그 다음에는 친정 어머니라는 분이 찾아와서는 밭에서 기른 것이라면서 상추와 무우를 주고 갔다. 그 이후로도 잊을 만하면 새댁이 아이와 함께 찾아와 먹을 거리를 주곤 했다.
 
그 후로 우리 식구는 윗집에서 쿵쿵거리면 '녀석, 밥값하는 구나.' 하며 웃었다. 아이가 뛰는 덕에 윗집에서 먹을 거리가 내려오니 말이다. 쓰다보니 윗집에서 주는 먹을 것에 길들여진 돼지 처럼 보일 수 있겠구나 싶은데, 중요한 것은 지금 부터다.
 
어느 날 저녁 벨이 울리길래 인터폰을 확인하는데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장난인가 싶어 무시하려는데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시냐 했더니. '도너츠 드세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나가 봤다. 문앞에 윗집 남자아이가 도너츠 상자를 들고 서있었다. 나를 보더니 '도너츠 드세요.' 한다. 혼자왔냐 물으니 고개를 끄덕끄덕. 아이구 그래 고맙다 잘먹을께 하고 상자를 받으니 아장아장 계단을 걸어 올라간다.
 
내가 느끼기에 분명 계단 위에서 아이 엄마가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 아이 혼자 내려 보내 아랫집 사람에게 인사하고 도너츠를 건내주라고 시킨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교육의 일환이었다. 
 
'너는 집에서 즐겁게 뛰놀지만 아랫집 사람은 그 때문에 불편함을 겪고 있단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너의 잘못이다. 잘못을 한 사람은 용서를 구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아마도 윗집 새댁은 자신의 아이에게 그런 교훈을 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에 더해 소음의 주체인 아이를 직접 대면하게 함으로 미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아랫집 사람의 마음까지 고려하는 센스가 엿보였다.
 
윗집 새댁은 아이가 뛴다고 무조건 뛰지 말라 강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집에서 내애가 뛰는데 니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무조건 아이를 감싸지도 않았다. 아이의 본성을 고려하면서 가르칠 것은 가르쳐 스스로 깨닫게하는 교육 방식, 그리고 이웃의 감정을 고려할 줄 아는 현명함에 나는 탄복했다.
 
자식 교육은 이렇게 하는게 아닐까? 처음에는 먹을 거리 건네주는 좋은 이웃 생겼네 했지만 지금은 양육자로써의 자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만들어준 소중한 이웃으로 대하고 있다.
 
윗집 남자아이는 그동안 꽤 의젓해졌다. 좋은 부모에게 배우니 생각이 남달라진 게 아닐까. 그덕에 요즘은 쿵쿵거리는 소리가 많이 줄었다. 한편으론 아쉽다. 이젠 먹을 거리도 끝이 아닌가 싶어서. 아 참, 그러고보니 동생이 있었지. 남자앤가? 후후, 아직 이벤트는 끝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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