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엘리트층 탈북기 (길어도 재밌음)


긴만큼 읽어볼만합니다


나의 탈북스토리 - 장진성

1.

나는 한국에서 홀로 힘들 때마다 긴장과 공포로 숨 가빴던 탈북 순간들을 생각해보곤 한다. 국적을 버릴 자유까지 허용돼 있는 자유민주주의 사고로는 탈북이란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결단인지 가늠조차 힘들 것이다. 자기는 이미 목숨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는 것이 북한 땅이다. 아니 붙잡힐 경우 자기 뿐 아니라 가족은 물론 친척들의 운명까지도 위협하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다.

내가 친구와 함께 국경연선에 도착한 시기는 오줌 싸면 얼어서 떨어진다는 2004년 북방의 추운 1월이었다. 초기 계획은 산 속 수림에 숨어 있다가 국경 경비대원들이 지나가고 나면 두만강을 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작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산은 높은데 몸을 숨길 나무가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와 나는 평양 밖을 벗어나 본적 없기 때문에 수 천리 떨어진 국경지역에선 거의 눈 뜬 소경과 다름없었다. 그래서 맞춤한 탈북 장소와 기회를 노리며 두만강연선을 따라 온종일 걸은 길이 백리나 되었다. 밤 열시 경, 한치 앞도 헤아리지 못할 캄캄칠야는 우리를 대담하게 했다. 하여 마침내 강기슭으로 들어서는데 “손 들엇!”하며 풀숲에서 병사가 불쑥 일어서는 것이 아닌가.

그때 반사적으로 내 팔을 꽉 잡는 친구의 손이 나를 더 전율케 했다. 때려눕힐까 하고 생각하는 찰나 그 병사가 이번엔 호각을 불었다. 그러자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여럿의 손전등들이 켜지며 우릴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변명의 여지조차 없이 우리는 총구들에 떠밀려 국경경비총국 6중대 병실에 들어섰는데 가장 눈에 보이는 것이 쇠살창으로 가려진 작은 감옥과 매달린 수갑들이었다.

“어떻게 이 밤에 두만강으로 접근하신 겁니까? 신분증과 통행증을 봅시다.” 북한 특권층의 아들이었던 친구는 생전 처음 당해보는 총구 앞에서 누가 봐도 탈북 용의자로 확신할 만큼 온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우선 이 친구가 너무 추워하니깐 몸 좀 녹이게 해주시오.”

그러면서 나는 신분증을 꺼내려 안주머니 손을 넣었는데 쿵쿵 뛰는 심장이 만져졌다. 가죽 케이스에 당마크가 새겨진 나의 신분증을 받아 쥔 중대장은 놀란 눈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경 연선에서 오랜 중대장 경험을 가진 그 군관도 아마 당마크와 빨간 색깔의 조선노동당중앙위원회 도장이 박힌 신분증을 처음 보는 듯싶었다.

북한의 최고위 신분증은 금박으로 당마크가 새겨진 당 신분증과 국장이 새겨진 내각 신분증이 있다. 그 중에서도 당마크는 북한의 절대권력 기관인 조선노동당 신분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총구도 공손해지기 마련이다. 더욱이 당 통전부는 대남공작이란 특수성이 부여되기 때문에 적화통일의 무기를 쥔 병사들에겐 신비감을 조성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왜 국경에 접근했습니까?”

중대장은 신분증의 무게와 달리 너무 어려보이는 내 나이를 의심하는지 아래위를 흩어보며 물어보았다.

“무산 시당에 간부사업 가던 중 너무 밤이 깊었고 춥기도 해서 군인병실이라도 찾아서 하루 밤 자고 가려했을 뿐인데”

“아닙니다, 강에 발을 짚었습니다!”

우리를 단속했던 그 재수 없는 병사가 막 소리 질렀다. 나는 이럴 땐 무엇보다 배짱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멍청한 놈! 너 어디 감히 총을 들이대고 그래? 아까 널 한 대 쥐어박으려다 참았어!”

중대장이 짧게 지시했다.

“무산시당에 전화해봐, 통전부에서 간부사업 약속 있었는지”

나는 온 몸이 무너져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난로 앞에서 손을 비비고 있던 친구도 나를 쳐다보는 눈이 끝장이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일이!

“중대장동지, 정전이어서 무산시당에 전화가 연결 안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살수 있다는 희망이 내 발밑에서부터 머리까지 치달아 올랐다.

“그럼 내일 확인하기로 하고 일단 좀 자게 해줘! 어 중대장? 우린 피곤해!” 그때 순찰교대를 했는지 한 개 분대가 쓸어 들어왔다. 누군가고 서로 물어보던 병사들 중 소위 계급을 단 군인이 유심히 들여다보던 신분증을 흔들며 소리쳤다.

“어따, 여기 근무하면 혹시 오광일이라고 알아요?”

오광일? 기억을 애써 더듬는데 갑자기 친구가 말했다.

“김책시에 사는 오광일이? 아버지가 김책시당 책임비서 하는 그 애?”

소대장의 얼굴에 금시 화색이 돌았다.

“네 맞아요, 맞아요, 중대장동지 그 시당책임비서 아들이 내 친구예요”

중대장은 의심과 신뢰가 교차하는 얼굴로 소대장과 내 친구를 번갈아보았다. 나는 하늘이 준 기회다 싶어 큰 목청으로 말했다.

“그 오광일이가 정말 친구 맞어? 친구의 친구를 여기서 보다니, 그럼 우리 여기서 좀 재워줄 수 있어?”

나는 중대장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배낭에서 술과 담배를 꺼냈다. 그날 일부러 술을 세잔이나 마셨지만 취하지 않았고 소대장 이불을 쓰고 누웠지만 잠도 오지 않았다. 순찰근무 교대는 한 시간에 한 번씩 하였고 초소로 나갈 때마다 병사들은 실탄과 심지어는 수류탄으로 무장하곤 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소대장이 쓴 우정의 편지를 받고 다시 길을 떠났다. 은밀한 어둠만을 믿었던 우리에게 병실에서 본 경계의 밤은 거의 절망적이었다. 친구가 불쑥 물었다.

“우리 다시 평양으로 들어갈까?”

우리는 두만강이 옆에서 흐르는 둔덕의 레일위에 맥없이 마주 앉았다.

“우리가 직장에 출근하지 않은지 벌써 3일이 됐어. 이 시간이면 벌써 평양에선 비상이 걸렸을 거야. 알잖아, 당 규정을! 이젠 돌아설 수 없어”

“방법은?” 친구는 마치도 포기하는 방법을 묻는 듯싶었다.

“방법은 기상천외야, 군인들이 우릴 보는 밤이 아니라 우리가 역으로 그들을 볼 수 있는 대낮이야, 지금 뛰자!”

우린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재빨리 본능적으로 나는 중국 땅을 살폈고 친구는 북한 땅을 흩었다.

“군인들이 안보이니 셋까지 세고 뛰자”

“하나, 둘, 셋!”

우린 서로를 마주보며 비장하게 셋을 합창했지만 일어서는 데는 똑같이 실패했다.

군인들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문제라는 인식 앞에서 친구와 나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말없이 십 분이란 시간이 흐르자 국경의 고요로부터 서서히 충전되는 새로운 담력이 심장을 달구었다. 우린 마침내 말없이 손을 맞잡았다.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는 순간 운명의 끝에 함께 섰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니 이미 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린 동시에 힘 있게 솟구쳤다. 그리고 돌처럼 단단한 두만강 얼음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소원의 순간이었고 실행의 순간인 것이다. 뛰어가는 발걸음마다 운명을 두드리는 듯 요란했다.

그런데 뒤에서 누군가 소리치는 것이 아닌가?

“저 놈들 봐라! 저 놈들 잡아라.”

본능적으로 돌아보던 나는 아연했다. 우리가 뛰어 온 그 몇 미터 굽이돌이에 바로 병사들 한 무리가 총 들고 서있는 곳이 아닌가. 격발장치를 당기며 총구를 겨누는 것까지 보고 뛰자니 갑자기 뒤통수가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죽었구나! 아니 죽지 않으리라! 우리는 멀리 보이는 중국의 이름 모를 산만 노려보며 그곳을 향해 서로에게 의지한 채 뛰고 또 뛰었다.

한 발을 짚을 때마다 뼈 없는 살처럼 주저앉았고 또 다른 발을 내 밀어도 마찬가지였다. 산이 가까워질수록 따라오는 주먹들도 가까워지는 것만 같아 차마 돌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달리는 동안 이상하게도 나는 공포를 초월하는 분통함이 치솟았다. 이 몇 미터 강을 넘지 못해 이때껏 북한에서 짐승처럼 살았는가! 이 몇 미터가 그렇게 혹심한 인권의 차이였던가! 이 몇 미터를 달리는데 나는 왜 죽는다고 생각하는가!

드디어 북한과 달리 수림으로 우거진 중국 산기슭에 엎어졌을 때는, 따라오는 북한병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살았다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쫓겨 온 남의 나라가 쫓아오는 자기 나라보다 더 은혜롭고 감사함에 억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선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떠나온 북한 땅을 마지막으로 바라보던 친구는 돌을 쥐고 힘껏 던지기도 하였다.

이어 친구는 나무가 울창한 산의 깊은 내면에서 안정감을 얻었는지 두 팔을 기껏 벌리고 눈 위에 덥석 드러눕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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