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눈이찢어진아이

 
 
 
'나는 꼼수다' 콘서트 이후 주요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한 '눈이 찢어진 아이' <위키프레스>가 만났다. 만남은 극비리에 서울의 모처에서 이뤄졌으며 인터뷰이의 요청에 의해 사진 촬영은 신체 일부만 했고실명 공개 역시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하지 않기로 했다. 단 인터넷에 잘 알려진 '눈이 찢어진 아이'로 인터뷰 기사를 싣기로 합의 했다.
위키프레스(이하 위): 어렵게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세상에 나오기 쉽지 않았을텐데.

눈이찢어진아이(이하 찢): 왜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하는지 모르겠다.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나꼼수' 진행자들이 떠들어도(나꼼수 출연진에 대해 반감이 심한 듯 보였다모른척 지나가고 싶었지만워낙 관심들이 많고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한 번쯤은 궁금증을 풀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수많은 언론사들이 접촉한 것으로 아는데 굳이 <위키프레스>를 택한 이유가 있다면?

: 최근 들어 위키프레스 뉴스를 자주 접했다. 언론사로서 크게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기사들이 많아 즐겨찾기를 하고 하루 한 두번은 꼭 찾는다. 무엇보다도 내 말을 왜곡 없이 실어줄거라 믿었다. 특히 편집장의 팬이기도 하다.
: 궁금한 점이 많지만 먼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것부터 묻고 싶다. 눈은 언제부터 찢어진 것인가.

: 기자님께 거꾸로 묻고 싶다. 기자님은 언제부터 코가 그렇게 높았는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눈은 찢어졌고, 코는 이 모양으로 생겼다. 부모님 닮은 것 아니겠는가.
: 미안하지만 나는 25살에 코가 높아졌다. 의학의 힘을 빈 것이다. 어쨌든 좋다. 당신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 우리 부모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괜찮다면 어머니 이야기만 하고 넘어갔으면 한다. 아버지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 그것은 안 된다. 우리가 정말 궁금한 것은 아버지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당신의 아버지가...(이때 갑자기 말을 끊으며)

: 아버지, 아버지... (상당히 격앙된 목소리로) 이제 지긋지긋하다. 내 인생에 나는 없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의 눈을 꼭 빼닮아 아버지 아들로만 불렸다. 내 이름보다 '000 아들' '000붕어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버지 얼굴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 (성급하게 말을 받으며) 잠깐, 그러면 당신의 생부가 누구인지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단 건가?

: 말했듯이 붕어빵이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만큼 우리는 닮아 있었다. 다만 어려서부터 아버지는 집에 거의 오지 않았다. 중동 건설 현장에 있다는 말만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 혹시 눈 모양에 대해 부모님... 특히 아버지에게 불만은 없었나.

: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진지하게 말씀드린 적이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이런 눈이 면접이나 대인 관계에 있어서 마이너스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남자가 부모님께 성형수술을 시켜달라고 할 때의 기분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결국 부모님도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셨다. (잠시 휴지로 눈가를 닦았다) 그리고 지난 해 이맘 때 쯤 압구정역 4번 출구 40미터 방향에 있는 밀봉 성형외과에 갔다. 처음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러 해 드나들었던 것 처럼 따뜻한 분위기가 좋았다.
: 가격이 비싸지는 않았나

: 의사 선생님께서 내 눈을 보시면서 여러가지 수술 방법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시고 수술 후 어떻게 모습이 변할지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보여주셔서 마음이 한결 놓였다. 아마 수술 뒤의 내 모습에 대한 불안감은 누구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설명과 간호사 누나들의 헌신적인 배려, 첨단 의료용 기기와 비데 설치된 화장실 등이 내 맘에 쏙 들었다.
: 수술 과정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

: 수술용 침대에 누우면 간호사 누나가 눈만 뚫린 녹색 천을 얼굴에 덮어준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내 손을 꼭 잡아 주는데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이어 인자한 표정의 의사 선생님께서 들어와 국소마취용 주사를 눈꺼풀 곳곳에 놔줬다. 약간 따끔 하는 정도의 고통이 있었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나 비명이 샐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후의 일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사흘 만에 큰일 보는 정도'의 통증만 있었다. 약간 따갑고 얼얼했다. 붓기는 사흘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고 이제 내 눈은 지금처럼 바뀌었다.
: 혹시 사진을 찍을 수 있나

: 다른 곳은 어렵고 눈 사진만 찍는 것도 괜찮다면 그 정도는 허락하겠다.
: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 자신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살길 바라겠다.

이렇게 눈이찢어진아이 와의 인터뷰는 끝이 났다. 앞으로도 <위키프레스>는 독자가 궁금해하는 모든 것을 찾아 진실을 파헤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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