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자살한 중년 남자의 자살하기 직전 일기 .txt

2011.06.15 수 14:28

전남문화산업진흥원, 내가 처음 시작한 CEO, 
내 손으로 뽑은 직원들에게 무한한 애정과 사랑으로 그들에게 대했다. 
물론 회사이다보니 큰소리도 나고 혼내기도 하고 하지만 
그들에게 내가 쏟은 정성은 정말 필요 이상이었다.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 모르지만 내부 고발자에 의한 쏟아지는 비리와 의혹, 
거기다가 믿었던 모든 이에게도 배신당하는 상황(지역의 교수 및 지인) 
정말 견딜수가 없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전남이라는 곳에 와서 왕따를 당하는 이기분....

그런데 왜 내가 이런 불명예를 뒤집어 쓰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전남에서 진흥원이라는 곳이 그렇게 큰 곳인가? 
3년전 시작할때 목포대학교에서 식당을 개조해 진흥원을 만들었고 
이제 간신히 도청옆에 사무실을 이쁘게 만들었는데....

과연 국비사업을 따기위해서 우리 직원들이 노력한 것은 있는 것일까? 
대부분 나의 인맥으로, 실력으로 사업을 수주해왔다. 
인맥으로 사업을 가져오면 실력없고 자존심만 있는 
엉뚱한 진흥원 팀장들이 사업을 망쳐 놓기 일쑤였다. 

개원초기 막 뽑은 대리를 멕시코로 출장을 보냈다. 
물론 상급기관에서 안된다고 했지만 난 보냈다. 
지금 당장은 불안하지만 난 우리 직원들이 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보낼 수 있었다. 
많은 국비사업을 통해 모든 직원들은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실력은 만들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대원장으로 해야 할일은 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직원들이 날 배신한다고 생각하니 모든것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2009년 연초인가 서울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약속시간이 2-3시간 비어서 같이간 직원과 목욕탕을 갔다. 
겨울이라서 춥기도 추웠고....한동안 진흥원에서 다른 남자직원이 
나랑 목욕탕을 못가서 서운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난 진짜 그들에게 상사이기에 앞서 큰형으로서 그들을 대했다.

회의 때 1년동안 말 한마디 못하는 직원 등 언
제까지 기다려야 역할을 할 수 있을 건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리고 그런 직원들도 이제 진흥원에서 역할을 하고 있어 
그때 나의 판단이 옳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전남의 문화산업은 우리 직원들이 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든것이 끝났다. 
사실이든 아니든 도의적인 책임은 내가 져야 하는 상황이다. 
더이상 날 믿고 따른분, 지지해준분께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래서 사람이 죽나 싶다. 
자꾸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본다. 
난 항상 대의명분과 명예를 바탕으로 남자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전남에서는 대의명분도 명예도 아무것도 가질 수 가 없다. 
그저 가슴이 쫄아 드는 상황이다. 얼른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가고 싶다. 
나의 모든것이 위축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남에서 나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받고 덕을 입었던 분도 외면하는구나 
오히려 서울에서 많은 지인들이 힘을 준다. 
전화도 오고... 내가 믿었던 전남이 이렇게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 가는 구나 
하는 생각에 하루 하루 견디기가 힘이 든다.

그제 경아에게 문자가 왔다 나엔겐 아빠가 최고예요, 
보고 울뻔했다. 
연고가 없는 전남에 오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든다. 
그리고 언론에 있는 사람이 진짜 언론인 인지 묻고 싶다.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파국으로 몰아 가는 것이....

가슴이 터질것 같다. 순천대 총장님의 자살 소식,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11.06.15 수 18:24

그 친구를 처음 본 것은 2008년 도청에서 봤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물론 서울의 모교수로부터 진흥원 팀장감이라 추천도 받았다. 
난 전남에 올때 몇몇분이 도움을 주셨고 그 분의 추천이라 꼭 지키겠다고 했다.

그때 당시 당장 약속은 못지켰지만 결국 진흥원으로 데리고 왔다. 
그런데 요사이 하는 것 보면 몹시 불쾌하다. 
내가 그팀의 여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노골적으로 못하게 한다. 
왜 그러는지... 오래됐다. 

지금은 담배를 끊었지만 예전에는 골초였다. 
내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웠고 밖에 나가서 피우는 직원들이 안쓰러워 
중기센터와 협의해서 주차장 일부를 막고 담배를 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다. 
그런데 이제 그 공간은 김기훈을 욕하고 비방하는 장소로 되어 버린것 같다. 
물론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세상에 약속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약속, 신뢰라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 친구 처음 나에게 원장님 충심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런데....어린 직원들에게도 쉽게 날 헐뜯고 하극상을 부추기고....

참으로 사람이 중요한것 같다. 
난 30대에 회사에서 명예와 신뢰가 없다면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다른 회사로 갔고, 항상 실력을 가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여기있는 직원들은 한번 들어오면 안간다. 
정규직이건 계약직이건 무슨 빽을 써서라도 여기에 남는다. 
지금은 나가고 없는 계약직 직원의 아버지가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분도 공무원으로 알고 있다. 내 아들은 언제 정규직 시켜줄껀가요?

여기가 학교도 아니고 부모가 나에게 전화를 한다. 
과연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상상 할 수 있을까? 
요즘처럼 힘들때 도의원이라는 분이 전화가 왔다 계약직으로 있는 내 조카가 있는데 
이쁘게 봐달라는 것이다. 참... 여기는 이런일이 비일비재한다. 
참으로 황당하다.그저 참고 죽어지내는게 외지인이 전남에서 사는 방법인가보다.


2011.06.15 수 21:36

내가 전남에 와서 어쩔수 없이, 힘과 권력이 없으면 
그냥 살아야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친구다. 
세상에는 실력으로만 사는 것은 아닌것 같다. 
실력이 없으면 속칭 센 빽이라도 있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 말이다.

2008년 개원하고 얼마 안지나 도의회 이**의원으로 부터 강역하게 인사청탁이 들어 왔다.
외지인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압박이었고 어쩔 수 없이 얼굴 한번만 보기로 했다. 
첫 인상은 건방지고 이미 얘기가 다 되어 있으니 나 몇일부터 출근 뭐 이런 분위기 였다. 

전남의 동*대학교를 나왔고 성적도 실력도, 경력도 거의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나이는 있었고 회사는 작게 몇번 만들어 다 말어 먹었고....
난 그 친구가 세상돌아 가는 것을 너무나도 모르는 것에 
엔지니어로서 당연히 알어야 할 내용을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데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도 그 의원로부터 꾸준히 압력을 받었다. 
감사를 해야 한다는 둥 꼭 1년을 버티다 국비사업을 따서 뽑아줬다. 
한마디로 죽을 고생을 해서 사업을 따 와서 저런 놈들 월급을 줘야 하나다고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솓는거 같았다. 그런데 어찌하겠나 지역인것을....

난 그래도 일을 갈켜보기로 하고 많은 노력을 했다. 
책도 읽으라 하고 문서도 꼼꼼이 봐주고... 그런데 그것이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너무 형편이 없어서.... 그 와중에 팀장을 뽑는 공고가 나가자 
그 의원이 전화로 그 친구를 팀장으로 해달라 요구 해왔다. 물론 거절했다. 
경력이 안되는 이유로 말이다.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더구먼....
내가 있는직장이 이런 친구들을 데려다 뭐 어찌 할라구...

2년 가까이 되어서 다른 직장을 알아 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국비 사업 종료) 
또 빽이 들왔다. 거절을못하게.... 
예산이 없어 정규직도 못뽑고 있는데 다른 계약직 자리를 만들어 그 친구를 또 살려 줬다.
이것이 내가 있는 이곳이다. 
그 친구는 오늘도 자랑스럽게 하루 하루를 보내는지 몰라도 
난 그 친구를 볼때마다 화가 나는 것을 꾸욱 참고 살아야 한다. 



-----------------------------------------------------------------------------

6월15일날 위의 일기를 쓰고 6월 16일날 자살



관련기사

[자살한 김기훈 원장 미니홈피 글…사실로 확인돼 논란]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87124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