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미국 세인트 헬렌스 화산폭발...그리고 거기 남은 이들 사진



1980년 5월 18일, 한국 광주 시에서 끔찍한 학살이 벌어질때 미국은 화산이 터졌다.



세인트 헬렌스 산. 화산이 터지기 전에 사진. 그리고....



1908년 10월에 찍은 사진으로 그야말로 아주 다른 산이 되어버렸다


1857년 작은 폭발 이후 122년동안 조용하던 화산이었다


그러나 잦은 지진이 터지고 주변에서 연구하던 학자들은 대대적인 큰 폭발이 있으리라 짐작하고 이걸 알린다,

그것도 티브이에 나와 위험하다고 알렸던 것


근처 연방 보안관은 이걸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문제는 이 화산이 있는 워싱턴 주 주지사는 반대했다는 점

이 산 근처가 낚시하러 오는 전국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지역경제적 손실이 크다는 점이었다.(이 때문에 주지사는 사람죽였다고

고소당하고 기소당했다가 5년만 뒤에 무죄 판결되었다. 하지만 정치적 생명은 박살났다고)


 ㅡ ㅡ....덕분에 화산은 폭발 전만 해도 사람들이 근처에서 얼쩡거렸다.


그나마, 반발하던 학자들이나 보안관이 근처 순찰만 해도 지진이 늘고 화산이 흔들림도 느껴지고  위험성이 보이는데 이 무슨 개소리?

라고 반발했지만..


이 화산 폭발을 예측하던 당시 만 30세 젊은 학자인 존스턴은 화산 근처에 연구기지를 둬서 화산 상황을 관찰했다.


그리고..

미국 지리학자 겸 화산학자인 데이빗 알렉산더 존스턴이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

해리 글리켄이 사진을 찍었다.


웃으며 사진찍던 그는 24시간도 안돼 죽을 것이라는 예상을 했을까? 13시간 뒤 화산이 터지자 급히 무전 친 것이 마지막이었고

지금까지도 시신은 커녕 유품조차 전혀 찾지못해 가묘만 있다.


문제는 화산이 언제라도 터질지 모른다던 이들도 대체 상황을 알 수 없었다


5월 17일만 해도 화산은 잠잠했고 주지사는 호들갑이라고 관광객 더 오라고 빼애액거리던 판국이었다...그리고


기지에 남은 존스턴과 동료인 해리 글리켄이 이야기하고 글리켄은 화산 근처를 사진찍고 저렇게 존스턴도 찍었다




1980년 5월 18일 아침 8시22분쯤에 그야말로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Vancouver! Vancouver! This is it!!!!!!!!!!!!!!!!!!!!!!!!!!!!!!!"

(밴쿠버 기지 ! 밴쿠버 기지! 저걸 봐!!(또는 터졌어!!)


근처 간이 기지에 남은 존스턴이 급히 무전을 보낸 소리였고 곧 그 소리가 우렁찬 소리로 뭔가 뒤덮이면서 존스턴의 비명과 같이

영원히 끊겨졌다. 저기서 말한 밴쿠버는  캐나다 도시 밴쿠버가 아니라 미국 워싱턴 주에 있는 도시 밴쿠버로 지질학 연구소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하필 둘 다 영어까지도 똑같다..)


이후 수색이 이뤄졌지만 존스턴은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지 못했다. 화산이 터지면 나오는 설쇄류에 휘말려 그야말로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리라 추정될 뿐. 위에 사진을 찍은 글리켄은 울부짖으면서 친한 선배인 존스턴을 찾아 며칠이고 수색했지만 끝내 아무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화산 폭발은 핵미사일로 치자면 500개 위력에 맞먹으며 22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화산재가 날아갔다고 한다.



주말이라 낚시하러 온 이들이 여럿 되었던 것도 비극이었다. 아침에 와서 낚시하던 이들은 그야말로 광속으로 날라오는 설쇄류에 휘말려

이들도 시체조차 남기지 못했다.그래도 사망자는 57명


여럿 경고 방송과 홍보로 사람들이 불안해하면서 뚝 줄었기에 이 정도로 그친 것이었다. 아니라면 수천명 이상이 죽었을지도 몰랐다.

비록 사망자들에겐 그쳤다라는 말이 실례겠지만...



그리고 사망자들이 남긴 여럿 흔적도 전세계적인 화제를 일으킨다..그것은 바로


듣보잡 사진작가인 로버트 애머슨 랜스버그가 남긴 사진이었다.



1931년에 태어나 사진작가로 일했지만 사진작가로는 듣보잡이었기에 사진관 운영하면서 밥벌이를 하던 그는

1980년 세인트 헬렌스 화산을 찍으러 갔고 거기서 만 48살로 죽었다. 시체는 발견되었지만 그야말로 사람 형체가 아닌 

잿덩어리만 남았다.. 그래도 그는 유품을 통해 사진을 극적으로 남겼고 이로 인해 시체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화산이 터지는 현장을 사진으로 급히 찍던 랜스버그는 1분도 안가 몰려오는 설쇄류를 보고 이제 자신이 죽으리라 알아차렸다

그는 필름을 카메라에서 꺼내 비닐에 넣은 다음 옷으로 감싸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몰려오는 화산재 앞에서 배낭을 힘껏 

안고 엎드린 채로 세상을 떠났다.


시체는 17일이나 지나서 발견됐는데 도저히 사람 형체가 아님에도 타버린 채로 남은 배낭 에 필름은 손상이 조금 있어도 이렇게

랜스버그 최후의 모든 것을 다하여 찍은 현장을 생생하게 이 세상에 남겨두었고 랜스버그는 죽어서 이 사진으로 알려졌다

이 사진은 랜스버그 유족들에게 판권이 있다.




당시 또다른 사진작가인 레이드 터너 블랙번도 이 폭발로 죽었다..



1952년생으로 사진 입상대회로 상도 받은 바 있던 블랙번은 이 화산폭발 현장으로 사진찍으러 갔다가 ....




이렇게 차량에 탄 채로 화산재에 묻혀져 죽고 말았다.  오히려 블랙번이 타고 있다가  화산재에 묻혀진 차량은 

이 화산폭발로 유명한 사진이 되었다.


블랙번도 몰려오는 화산재를 보면서 자신은 곧 죽을 것이라고 느끼고 필사적으로 사진도 찍었지만..

랜스버그와 달리 카메라는 박살나서 필름 손상이 심해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그리고 해리 로버트 트루먼도 있었다.  사망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던 사람인데..


1896년 생으로 당시 만 83살인 트루먼은 근처 호숫가에 작은 모텔을 열고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1차대전 때 참전하여 훈장도 받았고  50대 초반 나이로 결혼하여 30년동안 아내랑 잘 살다가 1978년 아내가

먼저 병으로 죽자 모텔을 홀로 운영하면서 길고양이 16마리를 가족처럼 돌보면서 같이 지냈다.


1980년 5월 18일 화산폭발과 같이 그도 고양이들도 모텔도 휘말려 전혀 흔적을 남기지 못해 그와 고양이들도 

가묘로 남게 되었다. 나이가 많던 그는 화산폭발 위험성에도 얼마나 살겠냐고 모텔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화산 폭발로 인해 근처 숲이 아주 묻혀져서 사망자는 적었다고 해도 이런 숲을 지나던 도중에 화산재와 나무에 묻혀진 시체도 있었다고..



그리고 이후로도 화산은 작은 폭발을 일으켜 40년 지난 지금도 그대로 남게 되었다.



위에 존스턴을 찍은 지질학자 해리 글리켄은 

1991년 6월 3일, 일본 운젠 화산을 관찰하던 도중에 거기서도 터진 화산폭발에 휘말려 같이 연구하던 프랑스 지질학자인

크라프트 내외와 같이   존스턴처럼 똑같이 죽고 만다.

그 역시 시체를 찾지 못해 존스턴처럼 가묘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만 33살이었다.



2009년에 찍은 세인트 헬렌스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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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