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에서 최고의 레전드 두명을 배출한 가문

조선에서 가장 존엄한 가문은 왕족 가문인 전주 이씨일 것이다.

2000년 인구 통계 기준으로도 단일 본관 인구수가 260만명이 넘을 정도로 현재까지 가장 융성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조선 중기인 1500년대 덕수 이씨 집안에서 두명의 레전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 중 한명은...

 

오천원권 지폐의 인물로 널리 알려진 율곡 이이.

 

 

동시대를 살았던 퇴계 이황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성리학자로써 존경을 받았고 그의 학파가 후일 서인으로 발전하여 인조 이후 주구장창 정권을 장악함으로써 학자로써 최고존엄의 위치로 추앙 받았다.

 

 

물론 당대 동아시아에서는 율곡의 사상보다 퇴계의 사상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다만 퇴계 학파들이 인조 이후로 쩌리가 되버린 나머지...

 

 

보통 사대부 집안에서 정실 부인에서 난 아들이 없을 경우에 같은 문중의 사내를 양자로 입양해서 가문을 잇지 결코 첩에게서 얻은 서자로 가문을 잇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몇안되게 예외로 적용된 사람이 바로 율곡 이이 가문...

 

 

율곡 이이는 정실 부인과 사이에 딸 한명만 있어서 가문을 잇지 못하게 되자

서자가 대를 잇도록 나라가 허락했다 .

 

이이가 죽었을 때 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문성(文成). 학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시호를 받았다.

 

 

 

그리고 덕수 이씨 집안에 또 다른 레전드는..



바로 충무공 이순신되시겠다. 율곡 이이와는 19촌 관계.

 

 

문(文)으로는 덕수 이씨 문성공파가 대대로 조선에서 존중 받았다면

무(武)으로는 덕수 이씨 충무공파가 대대로 조선시대에 엘리트 무관 집안으로 존중 받았다.

 

 

어느 정도냐면 덕수 이씨 충무공파에서 배출한 무과 급제자만 267명이고 수군삼도통제사만 13명을 배출했다.

 

 

영조 시절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사로 잡힌 충청 병마절도사 이봉상은 충무공의 5대손인데 이인좌가 항복을 권유하자

"충무공 집안을 뭘로보고 그딴 소리를 하냐? 그냥 죽여라."라고 외친 뒤 살해 당했다.

 

 

충무공의 13대손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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