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 Gein[엄청난 스압]시간 넉넉한분만..


 

1957년 11월 17일 미국 위스콘신 주의 플레인필드.

경찰들이 황폐한 농가에 도착했다.

소유주는 에디 게인(Eddie Gein).

그는 그 지방 철물점 주인의 실종과 강도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있었다.

에디는 그 가게를 찾은 마지막 손님이었고 그 구내에서 어슬렁거리고 있던 모습이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에디의 쇠락한 농가는 무질서하다는 게 무엇인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연구대상으로 손색이 없었다.

집 안의 바닥에는 온갖 잡동사니와 썩어가는 쓰레기들이 바닥과 조리대를 뒤덮고 있었다.

방을 가로질러 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물과 부패물에서 번져 나오는 냄새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한 경찰관이 손전등으로 부엌을 살펴보다가 뭔가가 쟈켓에 닿는 감촉을 느꼈다.

잔뜩 긴장한 채 살펴보던 그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천장에서부터 매달린 커다란 시체였다.

목은 잘려졌고,

절개되어 있었으며,

내장은 뽑혀져 있었다.

소름끼치는 광경임에 틀림없었지만 사슴 사냥 지역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라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특히나 지금은 한창 사냥철이었다.

시퍼렇게 놀란 가슴은 단련된 무쇠신경으로 이내 가라앉은 것 같았으나

얼마 후 경찰관은 그것은 결코 사슴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것은 난자질당한 머리없는 시체였다.

 

 

 


 

 철물점 주인은 그런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소름 돋치는 발견물들은 그 시체뿐만이 아니었다.

속을 파낸 두개골로 만든 사발이 있었고,

 



 





 

전등갓과 쓰레기통은 인간의 피부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음산하고 괴이한 목록들의 실체가 차츰 밝혀졌다

 

1.사람 피부로 만든 안락의자 하나.
2.구두 상자 안에 보관된 여자의 생식기 하나
3.젖꼭지 벨트 하나
4.사람 머리 하나


 
5.코 네 개
6.심장 하나

....기타 등등



 

 

 

 

마지막으로 경관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든 걸작품이 발견되었다.

순전히 사람 피부로 만들어진 옷 한 벌.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잘 이해되지 않는 황당한 전리품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곳에서

희대의 살인귀의 손에 살육당했을 여자들의 숫자를 조사하면서 경관들의 머리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에디는 이 기괴한 수공예품 덕분에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로버트 블록이란 작가는 이 실제 살인마에게서 영감을 받아 노만 베이츠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썼고

그것은 저명한 영화 감독 히치코크의 기념비적 스릴러 <싸이코>로 알려져 있다.

또한 1974년 영화 속에선 에디 게인 유형의 캐릭터는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다분히 에디 취향적인 고전적인 공포물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 The Texas Chainsaw Massacre>이

토브 후퍼라는 걸출한 감독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70년대 중반 '엽기 살인마 에디'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데 일조했다.



<이것은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매니아가 만든 마스크로 생각됨>

<이렇게 생긴 마스크를 쓰고 달밤에 춤추며 돌아다녔다고 함>

 


수년 후, 에디는 <양들의 침묵>이란 소설에 나오는 연쇄 살인범

'가죽 벗기는 빌(The Skinner Bill ; 일명 버팔로 빌)'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토마스 해리스라는 작가에게 소름끼치는 영감을 불어 넣었다.

에디처럼 빌 역시 여자들의 피부를 수집해서 그것을 몸에 걸치고

복장 성도착 의식(transvestite ritual)을 벌였던 연쇄살인귀였다.


<엄마, 엄마!>

어떻게 한 아이가 에디 같은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을까?

엽기살인마의 어린시절과 가정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적지 않은 단서가 나올런지도 모른다.

에드워드 디어도어(Edward Theodore)는 1906년 8월 27일 어거스터와 조지 게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위스콘신의 라 로스였다. 에디는 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두 형제 중에 동생이었다.

형의 이름은 헨리였고 에디보다 일곱 살이 많았다.

문제적 엄마 어거스터...

광신도였던 그녀는 작정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혹독한 도덕율에 따라 키워나갔다.

어거스터의 세계 안에선 죄인 아닌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매일매일의 생활 원리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성경의 가르침을 깜냥껏 세뇌시켰다.

이 엄마라는 사람은 틈만 나면 듣다 질릴 정도로 여자들의 비도덕성과 방탕함에 대한 설교를 늘어놓으며

죄지으면 지옥불에 떨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심어 놓아,

혹시나 아이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을 지도 모를 여자에 대한 성적 욕망의 싹을 잘라 버릴 심산이었다.

에디 어머니의 성격은 지배적인 성향이 두드려져 자신의 세계관은 절대적으로 옳고 진실하다고 믿을 만치 완고했다.

그러했으니 자식과 애들 아버지에게 자신의 광신을 주입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버지는 나약한 알콜 중독자였다.

자식들을 양육하는 데 어떤 발언권도 없었다.

아내는 남편을 무시했고 한 직업에 충실할 수 없는 무가치한 생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자신의 광신적인 신념에 맞추어 키우고 가족을 금전적으로 부양하는 임무를 자진해서 떠맡았다.


에디가 태어나고 일년 뒤부터 어머니는 식품점을 시작했다.

거기서 벌어들인 돈은 가족들이 안락한 생활을 해나가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억척스럽게 일했던 그녀는 이내 목돈을불려나갔다.

도시의 비도덕적인 작태와 그곳에서 독버섯처럼 살고 있는 죄인들에

넌덜머리가 난 그녀가 가족들을 데리고 시골로 이사갈 요량이었다.

1914년 마침내 가족 모두 공포의 농장으로 이주했다. 방대한 토지를 구매했다.

새로운 주거지는 가족 공동체를 붕괴시킬 지로 모를 사악한 영향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고립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가려면 족히 400미터는 걸어가야 했다.

에디 어머니가 아무리 기를 써서 아이들을 바깥 세상과 격리시키려고 해도 완전히 성공할 수는 없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에 다녀야만 했다.

에디의 학교 성적은 잘 하지도 않고 못 하지도 않는 정도였지만 독서 능력에선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모험 소설과 잡지들을 읽으며서 에디의 상상력은 자극받았고 깜빡깜빡 그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몰입되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에디가 사내답지 못하고 수줍음이 많다는 이유로 왕따시켰다.

에디는 친구가 없었다.

게다가 친구를 사귀려고 시도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아이에게 면박을 끼얹었다.

비록 자신이 친구를 사귀는 것조차 반대한 어머니 때문에 고독한 현실이 부정되진 않았지만,

에디는 어머니를 선의 화신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깜냥껏 어머니의 가혹한 명령에 순종했다.


그러나 성질이 유별나게 배배 꼬인 어머니는 애 자식들이 영 탐탁치 않았다.

꼬투리만 잡히면 욕설도 마다하지 않았다.

"너희들도 저 형편 없는 니 애비처럼 인생의 패배자가 될 팔자다! 애구애구~"

아이들은 농장 바깥의 사람들과는 일체의 교류 없이 오로지 가정 안에서 뱅뱅 맴돌았다.

이 폐쇄적인 생활은 그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에디는 형을 존경했다. 형은 부지런한 일꾼이었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1940년 아버지가 이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형제는 가정과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서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다시피 했다.

에디는 형이 일하는 습관을 본받아 열심히 일을 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믿음직하고 도탑다는 평판을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일은 잡역부나 할 일이었지만,

에디는 종종 이웃 사람들의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맡기도 했다.

에디는 아이보는 일을 정말로 좋아했다.

그의 동년배들을 사귀는 것보다 아이들이 훨씬 다정스러웠던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에디는 사회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발육 부진 상태였다.

형 헨리는 에디가 비정상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하는 버릇이 걱정스러웠다.

여러 번 내놓고 그런 관계를 지배하는 어머니를 공박하기도 했다. 형이 그럴 때마다 에디는 쇼크를 받았다.

에디는 어머니를 순백한 선(pure goodness) 그 자체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형이 어머니를 자신처럼 존경스럽게 대하지 않는다는 것에 '굴욕감'을 느꼈다.

이런 일들이 겹치게 되면서 헨리는 아버지가 죽고 나서 4년 후

뭔가 아귀가 맞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1944년 5월 16일. 형과 에디는 그대로 내버려 두면 농장에까지 번질 위험이 있는 산불과 싸우고 있었다.

경찰 보고에 따르면, 그 둘은 불을 끄기 위해서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들이 한창 불길을 잡고 있는 동안,

성큼 밤이 다가왔고, 에디는 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진화 작업이 다 끝난 후 에디는 형이 보이지 않는 것이 걱정돼 경찰에 연락을 했는데...



바로 수색대를 조직하고 농장에 도착했을 때,

경찰은 에디가 그들을 바로 이끌고 간 곳에 실종되었다던 형이 바닥에 누운 채 죽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경찰은 헨리의 죽음을 둘러싼 정황 속에 뭔가 석연치 않는 점이 있다는 것에 신경쓰였다.

일테면 헨리가 누워 있던 땅은 산불이 번진 지점이 아니었으며 머리의 타박상은 대체 뭐란 말인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지만 경찰은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무도 에디가 사람을 죽일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지만 친형만 했을까.


나중에 지방 검시관은 사망 원인란에 질식사라고 적었다.

이제 에디에게 필요한 유일한 혈육으로 엄마가 남아 있었지만 단 둘이 오붓하게 보낸 시간은 길지 않았다.

형이 죽은 그 다음 해 12월, 에디 엄마는 몇 번 발작을 일으키다가 죽고 말았다.

에디의 의지처는 산산조각났다.

한 전문가는 <정신이상자>라는 책에서 이때의 에디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에디는 단 하나밖에 없는 친구이자 진실한 사랑을 잃었다. 그것으로 그는 세상 속에서 절대적으로 혼자가 되었다"

에디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그 농장에서 살았다.

생계는 이제껏 해오던 허드렛일을 하고 받는 쥐뿔같은 소득으로 근근히 유지했다.

에디는 엄마가 기거했던 대부분의 방들, 윗층과 아래층 거실에 널을 둘렀다.

이렇게 함으로써 엄마의 성지처럼 보존했다.

그 후 수년 동안 그 방들은 사람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았다.

한편 에디는 부엌으로 쓰였던 공간과 붙어 있다시피한 조그만 방을 침실로 여기며 형편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갔다.

이런 넝마때기 같은 방에서 에디는 일하지 않는 시간에 죽음을 찬미하는 사교 집단의 잡지나 모험 이야기 등을 뒤적이며

외로움을 견뎌 나갔다. 다른 때에는 기괴한 취미 활동에 몰입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밤마다 무덤가를 어슬렁거리는 것이었다.


<바닥 없는...>

엄마가 죽고난 이후 에디의 고독감은 점점 짙어져갔다.

일하지 않는 시간의 대부분은 펄프 매거진과 해부학 서적을 읽는 것으로 메꿔졌다.

기거하는 방마다 나치와 남태평양의 머리사냥꾼들과 난파선들에 대한 정기간행물로 가득차 있었다.

탐독의 결과 에디는 사람 머리를 오그라뜨리고, 무덤에서 시체를 발굴하는 법과 그 시체를 해부하는 과정을 익히게 되었다.

에디는 점점 강박적으로 이런 이야기들의 환타지 속으로 끌려 들어갔으며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에게 그 과정을 설명해줄 때도 있었다. 또한 지방 신문도 부지런히 읽어갔는데,

그가 가장 좋아하는 기사는 사망 광고였다.

그 기사를 보고 에디는 그 지역에 어떤 여자들이 죽었는지를 알게 되었으리라.

단 한 번도 이성과의 교제를 즐겨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밤에 묘지를 방문하는 것으로 성욕을 해소하곤 했다.

에디는 나중에 경찰 조사에서 자신은 결코 썩은 내가 진동하는 시체와 성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맹세했지만,

시체에서 피부를 발라내고 그것을 몸에 걸치는 데 각별한 쾌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다.

에디는 가슴을 달고 여성 성기를 갖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이상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고

가끔 여자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에디는 여자들에게 매혹되었다.

남성들에 대한 여자들의 힘과 지배력에 현혹되어 있었다.

시나브로 에디는 머리를 포함한 인체 부위들의 컬렉션을 만들어 나갔다.

한 번은 에디가 돌보는 아이가 농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그 꼬마는 나중에 에디가 자신에게 침실에 보관한 사람 머리를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에디가 주장하길 그 쭈글쭈글해진 머리는 남태평양의 머리사냥꾼의 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 꼬마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겪은 일을 떠벌렸지만,

그저 어린애다운 상상에서 흘러 나온 도깨비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무시되었다.

아이의 말은 젊은이 둘이 에디의 농가를 찾아 갔을 때 사실임이 밝혀졌다.

그들 역시 방부 처리된 여자 머리를 보았지만 그것은 단지 할로윈 축제 때 쓰는 신기한 의상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문은 돌고 돌아 곧 마을 사람들은 에디가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그 물건에 대해서 입방아를 찧어댔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 철물점 주인이 실종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심지어 오글오글해진 그 머리통에 관해 에디와 농담을 나누었고,

그럴 때마다 에디는 그저 웃음을 흘리거나 방에 있지요 하는 식으로 어물쩡 넘어가곤 했다.

에디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거나 아마도 그게 설마 사실일 것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연쇄 실종>

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에 걸쳐 위스콘신 경찰에서는 실종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경찰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사건이 네 건 있었다.

조지아 웨클러라는 이름을 가진 여덟 살 난 여자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감쪽같이 사라졌다.

수 백 명의 마을 주민들과 경찰들이 실종 소녀를 찾아내려 주변 일대를 샅샅이 훑었지만,

안타깝게도 종적은 묘연했다.

용의자도 없었고, 경찰측에서 내세울 증거라고는 그 소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 근처에서 발견된 타이어 자국뿐이었다.

포드 승용차 바퀴라는 것만 확인되었을 뿐,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처리되어 수사 활동도 잠잠해지다가 수년이 지난 뒤 에디가 살인죄 판결을 받고 나서야 다시 불거져 나왔다.

그로부터 6년 후 15살 먹은 에블린 하틀리라는 소녀가 아기를 돌보고 있는 중에 실종되었다.

아버지는 딸애가 애를 돌보고 있는 집으로 미친 듯이 전화를 했지만 수화기를 들 사람은 없었다.

바싹바싹 애간장을 태우며 아버지는 딸애가 있는 집으로 차를 몰았다.

문을 두드려 보았지만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안을 들여다 보았을 때 딸애가 신던 신발 한 짝과 바닥에 떨어진 안경이 보이는 전부였다.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모든 문과 창문은 잠겨져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 하나 집 뒤쪽 지하실 창문은 열려 있었다.

아버지는 그 창문에서 핏자국을 발견했다.

돌처럼 긴장된 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 격렬한 몸싸움의 흔적을 발견했다.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경찰에 연락했다.

그 집에 도착한 경찰은 집 밖으로 이어진 풀밭에 떨어진 핏자국,

이웃 집에 찍힌 피묻은 손자국,

지하실 바닥에서 남은 발자국과 버려진 신발 한 짝 등 소녀의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진 증거들을 찾아냈다.

주변 일대 수색 작업이 펼쳐졌지만 소녀의 행방은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며칠 후 그 지역을 벗어난 고속도로 근처에서 소녀의 것이 확실한 피 묻은 옷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가고 있었다.

1952년 11월, 남자 두 명이 사슴 사냥을 시작하기 전에 목이나 축이자고 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두 사람은 이 술집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다음에 길을 나섰다.

그 이후 이 두 사람과 이들의 차는 두 번 다시 보이지 않았다. 대대적인 수색 작업이 펼쳐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휘이익 꺼져버린 것이다.

1954년 겨울, 한 술집 주인이 일하던 곳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경찰은 술집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이 주차장까지 이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강력 범죄가 발생했음을 알았다.

경찰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 줄 만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바닥에 떨어진 빈 탄창.

하지만 경찰은 단지 실종된 다른 네 사람들처럼 시체도 없고

뾰족한 증거 하나 없는 마당에 단지 어떤 일이 발생했었는지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사건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증거는 단지 이 지역 근처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뿐이었고.


<벽장 속의 해골들>

1957년 철물상인의 목잘린 시신과 무시무시한 수공예품을 발견한 후에

경찰은 그 농장과 농장 주변 지역을 이잡듯이 샅샅이 수색을 벌여나갔다.

경찰은 이 정도의 수공예품을 전시할 정도라면 한 사람으로는 부족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며

그 시신들은 이 주변에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죽은 사람들 중에는 실종자 네 명도 포함되어 있을 터였다.

농장 일대에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에디는 워토마 카운티 교도소에서 취조를 받고 있었다.

에디는 처음에 살인 혐의 일체를 부인했다. 그

러나 하루 남짓 침묵하던 끝에 마침내 에디는 자신이 철물점 주인을 어떻게 죽였으며

집을 장식한 신체 부위들을 어디서 어떻게 입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를 고백하기 시작했다.

에디는 살인의 세부까지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그 나쁜 기억력에 대한 이유를 밝히길,

자신이 살인에 이끌리는 순간부터 살인을 자행하는 시간까지는 언제나 정신이 얼빵하게 나가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는 철물점 주인의 시체를 포드 트럭까지 끌고

금전등록기를 가게에서 탈취해서 집까지 다시 돌아오는 과정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에디는 자신이 검시 결과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기록된 22 구경 총으로

철물점 주인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는지 어쨌는지도 도통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른 신체 부위들은 어떻게 된 거냐는 질문에 에디는 지역 묘지를 돌며 훔쳤다고 대답했다.

에디는 철물점 주인 하나만을 죽였을 뿐,

자기 집에 있는 신체 부위의 주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며칠 동안 계속된 강력한 취조 끝에 에디는 마침내 범행을 자백하고 살인을 하나 추가시켰다.

이번에도 그는 살인을 범하는 시간 동안 정신이 나가 얼빵한 상태였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당시의 정황을 세부적으로 밝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기로는 우연히 총을 쏘게 되었던 것 같다는 횡설수설을 늘어놓았다.

취조를 받는 동안 에디를 핥듯이 관찰해 보아도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한다거나 감정적으로 동요된 모습은 일체 나타나지 않았다.

에디는 살인과 무덤 약탈에 대하여 얘기할 때는 매우 사실적인 어조로 말했으며, 때때로 흥겹게 말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극악성에 대한 어떤 인식도 갖고 있지 않았다.

에디의 정신상태에 의문이 제기되었고 재판정은 그의 정신이상상태를 감안해서 유죄 판정을 내리지 않았다.

에디는 종합적 심리 테스트를 거친 끝에 실제로 '정서적으로 온전치 못한(emotionally impaired)' 사람이란 판정을 받았다.

 그가 갈곳은 감옥이 아니라 정신병원이었다.

에디를 인터뷰한 심리학자들과 정신의학자들은 에디가 정신분열증 환자이며 '성적 정신병자'라는 결론에 동의했다.


그가 이렇게 병들게 된 원인으로 엄마와의 불건전한 관계와 양육 방법이 문제였음이 지적되었다.

에디는 분명히 여자들에 대한 이중적인 생각으로 고통 받았다.

여자들에게 자연스레 향하는 성적 매력과 그의 엄마가 그의 머리 속에 주입시킨 방탕한 여자들에 대한

부자연스런 태도 사이에서 그의 의식은 봉합이 불가능할 정도로 찢겨져 있었다.

여자에 대한 애증의 교차감정들이 나중에 확대되어 마침내는 갈 데까지 다 간 정신병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에디의 심문과 심리 테스트가 진행되는 동안 병행해서 농장 조사 작업은 계속되었다.

경찰은 에디의 집 안에서 여자 열 명 정도로 추정되는 유해를 발견했다.

하지만 그 중 여덟 명의 신체 부위들은 무덤에서 갖고 온 것일뿐이라는 에디의 주장을 믿는 경찰은 거의 없었다.

경찰측에서는 이 유해들이 에디가 죽인 여자들의 한 때 생기발랄했던 신체의 일부일 거라는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은 에디가 약탈했다고 주장하는 무덤을 면밀히 조사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시체를 발굴하는 수사 방법의 도덕성 문제로 설전이 벌어지다가

마침내 에디가 모독했다고 주장하는 무덤을 파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관들은 하나도 예외없이 손을 댄 흔적이 명백히 남아 있었다.

시신이나 시신의 일부는 대부분의 경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발굴 작업은 이어졌지만 에디를 그 이상의 살인과 연루시킬 만한 증거물은 나오지 않았다.

에디는 이후 정신병원에 보내져 의사들이 칭찬해 마지 않았던 모범 환자로 살다가 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죽었다.

엽기 살인마 에디의 시신은 수 년 전 극심한 외로움에 허덕대며

취미활동을 벌인 묘지에서 그닥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엄마의 무덤 옆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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