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이야기: 군대에서...


이 이야기는 군복무 당시 부대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소설식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그 여자가 처음 보였던 날은 장맛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던 6월의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둠속에서, 게다가 비까지 내려 바로 앞에 사람이 서 있어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여자가 보인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우리 부대는 반경 3km 이내에 민가가 없다.

산 속에 처박힌 구형막사의 부대였다.

밤에 위병소 근무를 서면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바람소리와 새소리 뿐이다.

간혹 멀리 떨어진 부대에서 야간사격을 하면 총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밤에 우리부대 주변에서는 그 어떤 인공적인 소리는 들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일병이 되면서 처음으로 위병소 근무를 나가던 날이었다.

우리 부대는 일병이 되어야만 부대 정문인 위병소 근무를 할 수가 있었다. 

근무는 새벽 1시에서 2시 근무였다.

초 여름인데도 밤에는 생각보다 서늘했고, 맑디 맑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거의 보름 달에 가까운 달이 떠 올라 주변 시야가 눈에 띄게 넓어졌다.

근무가 지루했는지 내 사수인 김병장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 주겠다고 하였다.

"야. 저기 앞에 폐가 하나 있지?"

"예"

우리 부대 위병소 전방 50여 미터 전방 우측에 폐가가 하나 있다.

"저 집이 왜 저렇게 되었는지 내가 얘기해 주지."

김병장은 무슨 일급비밀이라도 나에게 얘기하느 냥 조용히 소근대면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년 전쯤일거야.

내가 이 부대에 오기 전에 저 집에 부부와 20살인 딸 한 명이 살고 있었대.

그 집 딸은 이쁜 얼굴은 아니었는데 젊은 여자라는 이유로 이 부대 군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많았다고 하더라구.

부부는 사슴농장 일과 인접 부대 병사들을 상대로 여러 일을 대행해 주며 생계를 이어갔지."

"무슨 일을 대행합니까?"

"그거 있잖아. 군대 편지 말고 사제 편지 보내주고, 물건도 우편으로 보내주고, 간혹 읍내에서 사올 물건도 

대신 사다 주면서 군인들로부터 돈을 좀 받았지." 

나는 왠지 괴기스런 얘기가 나올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런데 우리 부대원 중에 졸라 잘 생긴 놈이 있었는데, 그 집 딸내미와 눈이 맞았나봐.

사람들 얘기로는 여자가 그 놈을 무지하게 좋아했다더라구. 

그 놈은 단지 욕정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그 딸내미를 만났고.

그 놈이 아주 나쁜 놈이라는 건 뭐냐면 이미 두 세명의 사회의 여자들이 면회를 왔다갈 정도로 

여자가 많았음에도 그 집 딸내미를 계속 몸에 품었다는거야. 

그 딸은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하고 있는데 말야.

그런데 말야 그 녀석 제대 날짜가 다가오자 여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어.

여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가 자기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자신의 모든 것은 이미 그 놈한테 모두 가버린거야.

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잡기 위해 결국 임신을 택했어. 

그런데 그것마저도 그 놈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지.

그 놈은 그냥 제대해 버렸고, 연락도 끊어버렸지. 

군대에선 이런 일이 흔하게 일어난다고 하는데 어찌되었든

제대 후 그 딸내미가 부대까지 찾아와서 어떡해서든 연락처를 알아보려고 쑤시고 돌아다녔나봐.

그러나 아무도 그 놈과 연락을 취할 수 없었어. 

그 뒤로 여자가 한 달여동안 보이지 않았었나봐. 그 녀석 찾으러 다녔을지 모르지.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반 해골이 되어서 돌아 온 여자는 거의 실성 지경에 이르게 되었지.

그 부모들도 부대에 와서 그 놈 찾아내라고 다 죽여버리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말야.

그 때쯤 내가 이 부대로 배치 받은 거지.

그런데 말야.......아, 신발 소름끼쳐..."

"왜 그러십니까?"

김병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데 말야....어느 날 밤에 위병소 근무자가 근무를 서고 있는데 그 집 딸내미가 집 앞의

우거진 미류나무 사이에서 반듯이 서서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봤대.

밤이라서 잘 구분은 안갔는데 사람이 분명하고 똑바로 서서 나무 사이로 자기들을 보고 있더라는거야."

"와.....소름끼쳤겠습니다."

"그게 소름끼쳤다는게 아니라......."

김병장은 다시 한 번 침을 꼴깍 삼키며 하고자 하는 나머지 말을 이어갔다.

"여자가 흔들거리더라는 거야."

"으악!!"

난 나도 모르게 숨소리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주..죽은 겁니까? 목 매달아서....."

공포스러워하는 내 표정이 즐거웠는지 김병장은 조용히 얼굴을 나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시작은 그 때부터였지.....저 집이 이사간 뒤로...."

"그 여자는 죽었어. 니 말대로 목 매달아서....

그 때가 바로 내가 이 부대에 배치 받은 지 두 달이 다 되어갔을 때지.

나는 미 친 여자의 단순한 자살로 알고 있었는데 부대원들의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지가 않았어.

모두들 함구하고 있었지만 난 직감적으로 뭔가 큰 일이 뒤에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었지. 

그 때 나를 무지하게 아끼던 말년 병장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제대하기 전 날 이 얘기를 해준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시 이등병이었을 텐데 왜 얘기를 해 준 겁니까?"

"그게 말야.... 그 여자가 죽은 뒤로 위병소에서 근무자들이 그 여자를 봤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거든."

"귀신 말입니까?"

"귀신인지 사람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몇몇 야간 근무자들이 그 집 딸내미를 텅 빈 집 근처에서 봤다는 거야."

나는 조용히 침을 한 번 삼켰다.

"근데...어우 신발.....죽을 때 모습 그대로 미류나무 사이에서 흔들리더라는거야."

나는 등골이 싸늘하게 얼어붙는 듯 하였다.

"한 번은 그것을 목격한 근무자가 위병소 써치라이트를 켠거야. 그런데 그 때는 보이지 않더래."

나는 지금 김병장에게 꼭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지..지금도 나타납니까?"

그러자 김병장은 모든 얘기가 끝난 것처럼 나로부터 얼굴을 멀리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니가 이 부대 배치받은 뒤로 한 번도 없었어. 너도 그런 얘기 들어본 것 없잖아."

"네. 그렇긴 합니다."




나는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그 해 장마가 시작되면서 우리의 근무는 공포의 시간이 되었다.

우리 부대는 규정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근무자 중 한 명은 초소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때문에 대부분 부사수가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비나 눈을 맞으며 밖에 서 있게 되었다.

부사수로 정ㅇㅇ일병과, 사수로 최ㅇㅇ상병이 밤 11시 근무를 나갔을 때 얘기다.

간간히 어둠속에서 비가 흩날리는 밤이었다.

우의를 뒤집어 쓰고 20여분 정도 근무를 서고 있던 일병이 초소 안의 상병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말로 얘기를 건넸다.

"최상병님. 무슨 소리 안들리십니까?"

그 때 갑자기 사수인 최상병도 일병을 향해 말했다.

"이런 신발....나만 들리는게 아니었군."

최상병도 정체모를 그 소리를 계속 주목하고 있었던 거였다.

알 수 없는 여자의 소리.......

흐느끼고....간간히 웃기도 하고....뭐라고 그들에게 묻는 것 같기도 하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그들은 뭔가에 홀린 듯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알 수없는 정체의

소리를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초소밖을 응시하고 있던 최상병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전방 50미터......전방 50미터......전방 50미터......"

"왜 그러십니까 최상병님"

"야 신발놈아...저거 안보여? 전방 50미터....."

최상병은 소총을 움켜쥐고 초소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실탄을 장전하는 것이다.

따라나온 정일병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전방 50미터 쯤에 어둠속에 서 있는 사람 형상.....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사람 형상이 보이다니......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우리부대는 최전방 부대이다. gp나 gop부대는 아니지만 평소에 근무를 설 때 공포탄없는 실탄 근무를 선다.

게다가 장전은 하지 않지만 탄창을 삽탄(탄창을 총에 끼워 넣는것) 상태로 한 후 근무를 서게 되어 있다.

그런데 최상병이 철커덕 소리를 내며 장전을 하는 것이다.

뭔가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그들을 감쌌다.

최상병은 겁에 질린 게 확실했다.

50미터 전방에 있는 사람에게 수하를 하다니.....

얼떨결에 똑같이 목표를 조준하고 있는 정일병도 마찬가지였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벽돌..."

최상병은 암구호를 외쳤다.

응답없는 사람의 형상....

"벽돌!!!"

정일병은 그 사람의 형상이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지금 이대로 있다간 최상병이 방아쇠를 당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방 부대라고 하지만 철책 근무를 서지 않는 한 저항하지 않는 미확인 물체에 대해 방아쇠를 

당기진 않기 때문이다.

최상병의 마지막 암구호가 울려퍼졌다.


"벽돌!!!!!!!!!!!"


"안 됩니다!!!!!!!!! 최상병님!!!!!!!!!!"


정일병은 급하게 최상병 소총의 방열판을 움켜쥐었다.


"너 뭐야 새꺄!!!!!!!!!"


정신 나간 사람처럼 휘둥그레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 최상병의 얼굴이 정일병에겐 
더한 공포로 다가왔다.

"안됩니다. 민간인이면 어떡합니까? 부대에 들어온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사수고 누가 부사수인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최상병은 조용히 일어나 그 형상을 아무말 없이 주시했다.

빗방울이 엄청나게 굵어지고 나서야 그 형상은 사라졌다.

한 동안 멍하니 초소 밖에서 자리를 지키던 최상병은 아무 말없이 떨리는 손으로 

장전된 총알을 분리하고 탄창에 다시 끼워 넣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부대 전체로 퍼졌다.

한 동안 잠잠했던 귀신소동이 다시 시작된 것이었다.

군인 정신을 강조하는 중대장의 엄한 훈계가 있었음에도 부대원들은 그 소문에 대한 공포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아침 점호가 끝나면 그 날의 근무 시간표가 붙여지는데 모든 부대원들은 하나같이 밤시간대 위병소 근무에 자신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진짜 사건은 다른데서 터졌다.

우리 부대의 최악의 근무지는 바로 탄약고였다.

탄약고는 부대 내무반으로부터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으며, 주변의 참나무와 아카시 나무 때문에

시야가 잘 확보가 되지 않는다. 

탄약고 초소 앞에는 작은 계곡이 있고 그 계곡을 건널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나무다리가 있다. 

초소 뒷편으로는 작은 언덕이 있는데, 겁나는 것은 그 언덕 뒤가 거대한 공동묘지가 있다는 것이다.

버려진 묘지들이 아닌 공원묘지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밤 근무자에겐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부대는 지원부대다. 

1년 중 2~3개월은 부대원의 반 이상이 훈련지원 파견을 나가기 때문에 근무 인력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위병소를 제외하고는 모두 단초로 근무를 선다.

탄약고에 배정받은 근무자는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을 만난 것이다.

산 속의 공동묘지를 끼고 있는 초소에서 한 시간동안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탄약고 근무는 보통 상병들이 나간다. 

박ㅇㅇ상병은 우리 부대에서 강한 군인의 상징이다.

강심장인지는 모르지만 몸짱에 항상 남자다운 성격으로 간부들이나 고참들로부터 신임을 독차지하는 사람이다.

그 날은 새벽 2시 근무였다.

"야! 이 강아지야! 정신차려!!!!!!"

인터폰으로 통화하던 당직하사의 큰 호통 소리에 당직사관인 소대장이 벌떡 깨어났다.

"야...뭐야?"

"박ㅇㅇ, 이 미 친 새끼가 헛 소리를 하지 않습니까?"

"뭔 소리?"

"초소에 누가 자기와 같이 있답니다."

"뭐?"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허공을 가르는 총소리가 들렸다.

"탕!!!!!!!!!!!!!"

소대장과 당직하사는 서로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한 후 미친듯이 탄약고를 향해 뛰어 갔다.

잠에서 깬 2~3 명의 말년 고참들도 따라서 뛰쳐 나갔다.

100 여 미터를 달려 황급히 도착한 탄약고.

나무 다리를 건너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탄약고 쪽을 총으로 겨누고 있었다.

장마철이었지만 간간히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 때문에 누구인지는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후 레쉬를 박상병 등에 비추던 소대장이 물었다.

"박ㅇㅇ. 니가 쐈어?"

아무 말 없이 몇 초간을 계속 탄약고를 주시하던 박상병이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렸다.

후 레쉬 불빛 속에서 확인된 그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당시 목격했던 고참들 얘기로는 박상병의 튀어나올 듯 크게 부릅 뜬 눈이 너무나도 무서웠다고 한다.

소대장은 신속히 박상병의 총기를 회수하고 탄약고 근무를 2시간씩 복초근무로 돌렸다.

행정반에 돌아와서도 반 넋이 나간 사람처럼 흐느적 거리는 박상병의 목덜미를 당직하사가 움켜 쥐었다.

"야 뿅뿅아. 정신차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박상병에게 소대장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고개를 떨구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르는 분비물을 떨구며 박상병은 입을 열었다.

"소대장님. 귀신을 봤습니다."

이 한마디에 행정반에 있는 사람들은 몇 초동안 아무말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있었다.

탄약고 초소 새벽 2시 근무자인 박상병은 이전 근무자와 교대를 하였다.

이전 근무자로부터 특별한 이상 징후를 보고 받지 않았기 때문에 박상병은 늘 그렇게 자연스럽게 근무에 임했다.

탄약고 초소는 조금 특이하게 만들어져 있다.

블럭벽돌로 가슴 높이까지 쌓아올린 구조에 천장은 슬레이트로 덮어져 있다.

벽돌과 천장 사이에는 네 개의 나무 기둥이 받치고 있고 정면의 공간은 유리, 그리고 측면과 후면은

비닐로 둘러싸여 있다.

20여분이 지났을까? 박상병은 바람소리 사이로 들리는 작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박상병은 스스로 강건해지려고 했지만 정체모를 그 소리 때문에 

초소밖으로 일단 뛰쳐 나왔다. 그리고 초소 뒤쪽 공동묘지가 있는 언덕을 향해 총을 겨눴다.

"아...신발 뭐야?"

욕이 저절로 튀어나오면서도 박상병은 계속 자신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소리는 조금씩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야..........하하하......'

박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총알 한발을 장전하였다.

전에 있었던 귀신소동이 사실이 아니길 바랬지만 눈 앞에 벌어지는 상황은 그것이 아니었다.

"야이 신발년아 나와!!!!!!!"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수 미터 언덕 위에 나타난 희멀건 형상. 

극도로 흥분한 상태임에도 박상병은 천천히 초소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인터폰을 집어들었다.

"탄약고 초..초소에 누가 있습니다...지금.."

인터폰으로 통화를 하는 와중에 박상병은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바로 코 앞의 유리창 정면에 나타난 희멀건 형상. 

박상병의 온몸은 굳어버렸지만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조용히 소총의 안전핀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고개를 돌렸다.

유리창에 나타난 그 희멀건 형상이 자신의 뒤에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박상병은 고개를 모두 돌려 그 정체모를 형상의 얼굴을 확인할만큼 강심장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 박상병은 방아쇠를 당겨 허공에 총탄을 날린 후 미 친 듯이 초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나무다리를 건너 참나무 아래에 웅크린 후 초소를 향해 총을 겨누었다.

그래도 난 아직도 박상병이 엄청난 강심장의 소유자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일 그 여자 형상이 초소안에서 내 뒤에 있다고 생각되었다면 난 그자리에서 기절하였을지 모른다.

모든 얘기를 마친 박상병은 내무반으로 조용히 이동하였다.

이미 내무반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였고 무슨 영문이지도 모르는 부대원들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들어오는 박상병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야. 당분간 박ㅇㅇ, 야간근무 열외시켜."

행정반에서 들리는 소대장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무표정한 얼굴의 박상병은 침상에 걸터앉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두 세번의 긴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몇몇 병장들의 괜찮냐는 질문에 박상병은 괜찮다며 근무복장을 조용히 해체했다.

그러나 빨갛게 충혈된 박상병의 두 눈을 보고 더 이상 아무도 말을 걸지 못했다.

그 뒤로 박상병은 며칠 동안 불면증에 시달렸다.

위병소에 이어서 이번엔 탄약고라니........

부대 전체는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공포가 서서히 엄습해 왔다.

박상병 사건 이후로 위병소와 다른 초소는 정상적으로 돌아갔지만 탄약고는 두 시간 교대 복초로 바뀌었다. 

밤 근무를 두 시간씩이나 서야 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혼자 공동묘지를 끼고 산속에 한 시간동안 처박혀 있는 것보다 나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견 나간 부대원들이 돌아오면 한 시간으로 줄기 때문에 당분간은 견딜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귀신소동은 드디어 나에게까지 찾아왔다.

그 날은 정말로 기분 나쁠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았다.

새벽 2시 근무였는데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나는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밖에 서 있었으며, 나의 사수인 정ㅇㅇ상병은 초소안에 처박혀 무엇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끄러웠다. 

판쵸우의로 덮은 헬멧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주변 숲의 나무잎을 강타하는 빗소리가 너무나도 크게 들렸다.

게다가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장대비가 쏟아져서 그야말로 전방 1미터안의 물체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정말로 누가 바로 코 앞에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내가 그 형상을 발견한 건 근무시작 20분이 지났을 때였다.

난 아직도 그 시간을 기억한다. 새벽 2시 20분.....

내가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시계에 내장된 조명등을 켜고 봤을 때이니까.

2시 20분.....시간을 확인한 나는 다시 고개를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전방 십수미터 정도에 희멀건 형상이 미류나무쪽에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너무나 어두워 미류나무에 매달려 있는 건지 그냥 떠 있는 건지 모르지만 그냥 미류나무쪽이었다.

난 순간적으로 움찔했지만 고참들이 얘기해 준 적응시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빛을 보고 아주 어두운 곳을 쳐다보면 망막에 잔상이 남는다. 보통 파르스름하게 잔상이 나타난다.

그 때는 눈을 10초 정도 감았다가 떠라. 

그리고 한 곳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마라. 니 머리가 사물을 왜곡시켜 표현한다."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속으로 10초를 세면서...

그리고 눈을 떴다.

그러나 나는 다시 눈을 감아야 했다. 그것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번째 10초를 세는 동안 나는 이미 등골에 싸늘한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떴다. 아직도 그 형상이 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헛기침이 나왔고 나는 입 속에 빗물이 쏟아져 들어감에도

위를 향해 입을 크게 벌려 긴 호흡을 하였다.

그 희멀건 형상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나를 내 스스로 진정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그 형상을 주시한 채 정상병을 불렀다.

"정ㅇㅇ 상병님!!!!!!!"

들릴 리가 없었다. 

4~5미터 거리지만 서로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내 목소리는 이미 빗소리에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정상병이 있는 반대편 초소로 이동했다.

그리고 가만히 초소안에서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정상병을 불렀다.

"정ㅇㅇ 상병님!!!!!!!"

그러자 갑자기 정상병이 움찔하더니 나를 뒤돌아 보았다.

"앗.. 신발 놀래라.....무슨 일이야?"

"잠깐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뭔데?"

"저기 미류나무 쪽에 뭐가 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상병은 판쵸우의를 뒤집어 쓰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 보았다.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영화처럼 조금 전만 해도 미류나무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는데......

그런데 정상병은 내 말을 믿어주었다.

"이렇게 어두운데 보였단 말야?"

"네."

"어떻게 보였는데?"

"그냥 희뿌옇게 보였습니다."

"어디로 갔어?"

"미류나무쪽 중간 쯤 있다가 아래로 내려오는 것까지 봤습니다." 

"그 귀신년인가 보다. 이 신발년 죽여버리든가 해야지..."

상병 말호봉인 정상병은 짬밥에 걸맞게 아무 것도 아닌 냥 나에게 겁먹지 말라고 충고했다.

정상병은 내가 걱정되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려고 하는지 초소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나와 똑같이 비를 맞으며, 내 옆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나는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그 편안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번엔 소리가 들렸다.

천지에 쌀알이 쏟아지는 듯한 빗소리에 섞인 작은 소리........

"에..엑..우...."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가 없었지만 몇 십초가 지나자 곧 알아들을 수 있었다.

토하는 소리였다.

"우...에..엑......우.....에..엑"

나는 그 때 처음으로 오금이 저리다는 것을 느껴봤다.

전기를 맞은 것처럼 무릎관절이 찌릿거렸다. 정말로 주저앉고 싶었다.

정상병도 나와 똑같은 소리를 듣고 있는게 확실했다.

"이....신발년...."

정상병은 자신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욕을 내 뱉았다.

내 머릿속의 두뇌는 어떡해서든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수 만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열심히 작업중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적당한 답안을 제시했다.

"개구리..........."

"뭐?"

"정상병님..개구리 소리 아닙니까?"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정상병은 그제서야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잘 들어보니 그렇기도 하다."

아무 말없이 잠시 그 정체모를 소리를 듣고 있던 정상병이 말을 이어갔다.

"그럼 아까 니가 봤다던 건 뭐야?"

"그게...저..............."

내 머릿속은 다시 혼란에 빠졌다.

"안 되겠다. 요 앞까지 순찰 좀 해보자."

"순찰 말입니까? 그냥 본대에 연락하심이...."

"이 새끼 겁 졸라 많네. 당직사관 오늘 누군지 알아? 수송관이잖아. 

그 미 친 똘아이 새끼. 

그 새끼가 니 말을 믿어 주겠냐고? 아마 군화발로 이단 옆차기 할거다."

난 나름대로 강심장이라고 생각하며 내 스스로를 단련시켜왔지만 솔직히 겁이 많다.

차라리 수송관한테 욕먹고 이 상황을 벗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더 간절했다.

그러나 수송관 못지 않은 성격의 정상병은 이런 나의 생각에 절대로 동의할 인물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우리 둘은 손전등을 손에 쥐고 그 토악질하는 소리를 향해 조금씩 걸어나갔다.

장대비 속에서 손전등을 비추는 것은 그야말로 무의미했다.

빗줄기에 빛이 산란되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우...에....엑.....우...에....엑.."

거의 십수미터 전방까지 다다른 것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깨에 매달린 k-2소총의 개머리판을 펴고 총구를 들어올려 전방을 조준했다.

내 머리는 더 이상 전진하지 말것을 명령하고 있었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철커덕!!!!!!!!!!!"

정상병이 갑자기 장전을 했다. 

안전핀을 풀었는지 안풀었는지 모르지 여차하면 방아쇠를 당길 기세였다.

제발 정상병이 미쳐 날뛰지 않길 바랄 뿐이다.

행여나 정상병이 나를 귀신으로 본다면 난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제 멀어야 10미터 전방이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액체로 내 얼굴은 이미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런데 수미터 앞에 도달하고 나서야 나는 내가 고안한 답안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분명 사람소리였다. 개구리 소리가 아니었다.

아직도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렸지만 이건 분명 사람소리였다.

"우......에..엑!!......우.......에..엑!!"

손전등을 비추었지만 확인이 안되었다.

잡초와 잡목으로 우거진 덤불속이라 직접 파헤치지 않는 한 그 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정상병은 떨리는 목소리로 보이지 않는 형체를 조준하며, 수하를 했다.

"누..누구냐?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그러자 갑자기 소리가 멈추었다.

심장이 터질 듯 했고, 온 몸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그 토악질 소리가 들리지 않자 빗소리만이 주위를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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