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ch] 고기

우리 할아버지는 손녀인 내가 봐도 무척 신사다운 분이셨다.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술, 담배는 일절 하지 않고, 도박이나 여자에도 눈을 돌리지 않는데다 채식주의를 고수하셨다.



그런 대부분의 습관이,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후 생겼다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 습관이 완전히 바뀔 정도의 지옥을 보셨던 것이리라.

아직도 할아버지가 전우의 이름을 새긴 위패 같은 것을 불단에 
올려두고 열심히 빌고 있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할아버지도 80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 치매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느날 이른 아침, 큰소리로 [하나! 둘!] 하고 구령을 외치며 상의를 탈의한채 집 주위를 달리고 계셨다.

그것이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한낮에 사이렌을 울리며 [퇴각! 퇴각!] 이라고 외치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셨다.

어느 밤에는 [소등, 소등!] 이라며 집 안의 불빛을 모두 끄면서 다니셨다.

나중에 새언니에게 들었지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다 꺼져서 무척 놀랐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증상이 나타나면 일시적으로 전쟁 중의 행동이 나오는 듯 했다.

이전 할아버지의 온화한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그럼에도 폭력을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다만 집이 근처인 내가 아들과 함께 친정에서 저녁을 먹을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메뉴는 스키야키.

내가 아는 할아버지는 언제나 고기 요리는 쳐다보지도 않는 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이 고기를 먹는 것까지 뭐라 하지는 않으셨다.



함께 식사는 하지만, 손은 대지 않으실 터였다.

[너희들 공양은 했느냐!]

갑작스러운 고함에, 식탁의 시간은 순간적으로 멈췄다.



소리를 지른 할아버지를 모두가 바라보자, 할아버지는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투덜거리더니 냄비에서 고기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갑자기 원래의 힘없는 목소리로 

[이것은 어느 고기냐...?] 

라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어머니가 근처 정육점 이름을 말하자

[그런 걸 물어본게 아니야!] 

라며 또 화를 내며 말하셨다.



혈압이 오른 것인지 할아버지는 가볍게 두세번 머리를 흔든 뒤, 그대로 식탁에서 일어나 가버리셨다.

어머니가 뒤를 따라갔지만 조금 뒤 돌아오셨다.

아무래도 불단에 있는 것 같다.

불단 앞에서 손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식탁은 조용했다.

아들은 반쯤 울상을 짓고 있었다...



반년 정도 뒤 할아버지가 입원하고, 그로부터 2년 뒤 세상을 떠나셨지만
그 사이 몇 번 정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단순한 치매 증세라고만 생각했지만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도대체 뭘 드셨던 걸까?] 

라는 말을 해 요즘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전쟁통에 시달리던 할아버지.



물자라고는 전혀 없는 전쟁터.

공양을 한 후에야 먹은 고기.

그리고 위패와 기도.



할아버지, 무엇을 드셨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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