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본 최악의 자살법

17032248_41.jpg 의사가 본 최악의 자살법


토요일 오전이었다. 그날 나는 전공의 2년차로 응급실 당직 근무를 섰다. 유난히 하늘은 맑았다.
응급실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산홋빛 푸른 봄바람이 내 몸의 피곤을 풀어주었다.


갑자기 전쟁 같은 하루를 알리는 구급차의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어린 여자 아이 세 명이 들어왔다.
여섯 살, 세 살, 육 개월. 세 자매였다. 입술 주위가 파랗게 변했고, 입 안은 모두 헐어 있었다.

아이들은 고통에 울부짖었다. 아이들 입을 통해 나오는 역한 냄새가 매우 낯익었다.
얼마 후 서른여덟 살의 젊은 남자가 구급차에 실려 왔다. 역시 같은 냄새였다.

그라목손이라는 농약 음독이었다. 가정 불화로 부인이 가출한 뒤,
이를 비관한 아버지가 세 딸에게 그라목손을 먹이고 자신도 뒤따라 마신 뒤,
119대원에게 실려 온 거다. 삶이 녹록지 않았나 보다.

그날 난 의사로서의 의무감, 책임감과 그 아버지를 향한 모멸감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그라목손 음독은 워낙 치사율이 높으며, 마신 양과 소변 검사를 통해 보았을 때
아이들과 아버지 모두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예상했다.

그러나 난 의사였기 때문에 어린 자식들까지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그 아버지를 살릴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써야 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아이들 모두 생을 마감했고, 아버지는 며칠 후 힘든 삶을 끝냈다.
지금 생각해도 내 의사 생활 중 몇 안 되는 고통스런 순간이다.

농번기가 시작되면 그라목손 음독으로 많은 환자가 병원에 온다. 거의 모두 자살목적으로 마신 것이다.

그라목손이라 불리는 파라쿼트는 제초제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으로, 농가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파라쿼트는 산화 과정을 통해서 인체 내에 독성을 나타낸다.

음독 후 수 분에서 수 시간 내에 구강 내 타는 듯한 느낌이 나타나며,
48시간 내에 입술, 혀, 인두에 궤양이 나타난다.

또한, 식도 궤양이 발생하며 이는 식도 천공까지로 진행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역적인 폐 섬유화를 일으키는 데,
이는 산화 과정을 통해 독성을 나타내는 파라쿼트가 체내에서
산소 이용도가 가장 높은 폐에 밀집되기 때문이다.

또한, 파라쿼트는 주로 신장을 통해 배설되기 때문에 음독 후 24시간 이내에
신 세뇨관 괴사를 일으킬 수 있다.

이처럼 파라쿼트는 음독 후 짧은 시간 내에 다장기 부전을 유발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제초제이다.

그라목손이 정말 무서운 건 이렇게 몸이 죽어가는 와중에, 마지막까지 정신은 거의 멀쩡하다는 거다.

응급실에 환자가 오면 보통은 문진과 검사를 하고,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현재의 상태 및 향후 치료 계획에 대해서 설명을 한다.
그러나 그라목손 음독의 경우에는 언제나 결론부터 설명한다.

“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최선을 다해보겠지만 소생 가능성은 별로 없습니다.”

참 괴로운 순간이다. 고통에 울부짖는 환자, 그 옆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보호자에게
전달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며칠 전 오래 알고 지내던 할아버지 한 분이 부인과 크게 다투고 그라목손을 마신 후 유명을 달리하셨다.
칠십 평생, 굴곡진 삶을 참 잘 견뎌 오시다가 그렇게 생을 마감하셨다는 게 안타까워
스산한 마음이 잘 접어지지 않아 몇 자 적어본다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유머게시판 베스트

글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
1
하...죽어도  왜저런 방법을  선택하는거냐 차라리  질식사가  낫지
그들이 살아온 삶의 고통과 무게를 내가 감히 헤어릴수 없겠지만 그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말을 새겨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번호 제목 날짜
필독 공지사항 (2021-04-11 어그로성글 댓글 차단) 댓글136 07-30
17150 조상님들이 첫날밤을 훔쳐보게된 이유 11-01
17149 한국 전래동화 중 가장 기괴한 동화 08-03
17148 731부대 조선인 최초 피해자 07-29
17147 한밤중에 방문한 기이한 식당의 정체 06-15
17146 최근 유행하는 공포물들 05-07
17145 미국 912명이 집단 자살 04-12
17144 살인마 빌런 댓글1 03-02
17143 전세계에 존재하는 오싹한 경고문들 11-20
17142 어느날부터 이마에 X 표식이 보인다. 11-19
17141 대순진리회 경험담(요약 있음) 11-14
17140 대한민국에서 가장 기괴했던 사건 11-03
17139 이름이 매번 바뀌는 수상한 울산 모텔 10-22
17138 허지웅의 이해하면 무서운 이야기 10-03
17137 들어가면 죽는다고 알려진 어느 섬 09-25
17136 귀신보는 여자가 무당집 찾아간 썰 09-22
17135 숙박업계에서 전해지는 미신들 댓글2 06-15
17134 옛날 의료도구들 05-29
17133 귀신 나오는 저수지를 찾는 수상한 낚시꾼.jpg 05-03
17132 실존하는 저주 받은 인형들 모음ㄷㄷㄷ 댓글1 02-13
17131 일본 3대 전통 문화 댓글1 11-29
17130 기괴하게 생긴 일본요괴 댓글1 10-23
17129 엘레베이터 추락사고.gif 10-20
17128 레딧 두 줄 괴담 20선 댓글1 09-26
17127 혐)중국 지하철 침수사고 괴담 댓글2 08-20
17126 대학가 골목에서 발견 된 저주의 인형 댓글1 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