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 먹는 짐승


그저 그런 격투기 선수 김남우가 바닥을 찍었다.


인생을 격투기에 올인했지만, 그저 그랬던 그는 인생에게 패배했다.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삶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어느 비밀 클럽의 지배인이 접근해왔다.


" 목숨을 걸고 결투를 벌일 생각이 있으십니까? 상대를 죽이면 5억, 지면 죽음입니다. "


충격적인 제안이었지만, 농담 같지는 않았다.

김남우는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더 잃을 게 없는 인생이었다.

지배인은 몇 번 더 확실하게 확인한 뒤, 김남우를 차에 태우고 이동했다. 자세한 설명은 차 안에서 시작됐다.


" 극소수의 VIP 분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보통의 여흥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시지요. 보통 사람들이 투견 따위를 즐길 때, 그분들은 곰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의 혈투를 즐기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 흥미를 끌진 못했고, 결국 인간 대 인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벌어지는 혈투가 되어서야 그분들은 드디어 만족하셨지요. "

" ... "


김남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상했던 내용이었지만, 역시나 역겨웠다. 극소수의 VIP란 작자들이 어떤 인간들일지 뻔하게 그려졌다. 

한데, 그들의 역겨움은 김남우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 시간이 지나자, 그분들은 거기서도 만족을 하지 못하게 되셨습니다. "

" 아? "

" 그래서 현재는 인간과 맹수를 붙이게 되었습니다. 만약 인간이 맹수에게 지게 되면, 그대로 링 위에서 맹수에게 잡아 먹힐 겁니다. " 


김남우의 얼굴이 아연했다.


" 미친...! "


지배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 말했다.


" 이틀 뒤 김남우 씨는 늑대와 싸워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맨몸에, 목 보호대와 단검 하나가 주어집니다. "

" ... "


김남우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늑대와 싸워서 지면, 늑대에게 잡아먹힌다고? 관객들은 그걸 여흥이랍시고 즐긴다고?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끔찍했다.


김남우는 당장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은 걸 이를 악물어 참았다. 어차피 돌이킬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편으로 안심이 되기도 했다. 살인을 해야 한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는데, 차라리 늑대라면 마음이 편하다. 

게다가 늑대에게는 질 것 같지도 않았다. 자신이 평생 한 격투를 믿었다.


그런 생각을 읽었을까, 지배인이 김남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 김남우 씨가 상대하게 될 늑대의 이름은 '토마스'입니다. 지금까지 다섯 번 싸워서 다섯 번 모두 이긴 녀석입니다. "

" ! "


김남우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 우리 클럽에서 늑대를 어떻게 관리하는지 아십니까? 절대 먹을 걸 주지 않습니다. 그 늑대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직접 죽인 상대뿐입니다. 인간만 먹는 늑대. 그 늑대가 며칠을 굶다가 링 위로 올라오는 겁니다. "

" ... "


김남우는 마른침을 삼켰다. 스멀스멀 두려움이 밀려왔다.

지배인은 빙긋 웃었다.


" 이제껏 저희 클럽에서 인간의 승률이 20%밖에 안 됩니다. 김남우 씨가 부디 그 20%에 들기를 응원하겠습니다. "

" ... "



비밀 클럽에 도착한 뒤, 김남우는 최상의 컨디션을 위한 휴식공간을 배정받았다.

쉽게 잠들 수 없었던 그 날 밤, 그는 악몽을 꾸었다.


VIP들이 둘러싼 철창 너머 무대에서 늑대와 마주하는 자신. 웃으며 늑대를 응원하는 관중들. 

필사적으로 싸우지만, 역부족으로 당하는 자신. 환호하는 관중들, 산 채로 뜯어먹히는 고통.


" 아악! "


김남우 아침에 깨어나자마자 지배인을 찾았다.


" 토마스를 보고 싶으시다고요? 물론,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


지배인은 김남우를 늑대에게로 데려가 주었다. 

우리 안에 갇힌 늑대는 꿈속에서 본 것처럼 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김남우를 오싹하게 했다.


" 눈빛이 다르죠? 인간 맛을 아는 늑대입니다. 본능적으로 김남우 씨가 자신의 사냥감이라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요? "

" ... "


김남우는 이번엔 경기장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고, 지배인은 얼마든지 안내했다.


경기장에 들어선 김남우는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그림이 펼쳐져 있었다.

일반 격투기 경기의 좌석들이 아니었다. 두꺼운 철창으로 된 원형의 경기장을 중심으로, 둥근 원형 테이블들이 여럿 놓여있었다. 마치 디너쇼 테이블처럼.


" ... "


극소수의 VIP들이라고 했다. 그들만을 위한 특별한 좌석 정도는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뭔가? 설마, 식사까지 한다는 말일까? 사람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광경을 즐기면서?


김남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있을 때, 지배인이 웃으며 말했다.


" 놀랍게도 말입니다? 현재 돈을 건 비율이 5:5 정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남우 씨의 프로필을 본 분들이 그만큼 승리 가능성을 높게 점쳐주었다는 뜻이지요. "

" ... "


지배인은 마치 기쁜 소식이라도 전하는 듯 말했지만, 김남우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저 끔찍하고 역겨웠다. VIP라는 자들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일까? 나와 같은 인간이 맞나? 그들에겐 VIP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뭐로 보이는 걸까?


김남우는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서 분노가 치밀었다. 사람이라면 절대 그래선 안 되는 것이었다.

방으로 돌아간 김남우는 굳은 얼굴로 마음을 다잡았다. 절대 그런 사이코들의 구경거리로 개죽음당할 생각은 없었다. 

그놈들이 바라는 게 사람이 늑대에게 먹히는 모습이라면, 통쾌하게 그 기대를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그 사이코 놈들에게 한 방 먹이고 당당하게 이곳을 떠날 것이다. 5억 원을 들고서!


김남우는 잠들기 직전까지 늑대와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다. 


결전의 다음 날. 김남우는 적당한 식사와 스트레칭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이윽고, 지배인이 방문했다.


" 링에 오를 시간입니다. "

" ... "


김남우는 굳은 얼굴로 지배인을 따라나섰다. 진정하려 애써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경기장 문 앞에 멈춰 선 김남우는 마지막으로 크게 심호흡했다.

이 문 너머에 기다리고 있을 식인늑대와 사이코들. 그 모든 상황을 각오한 김남우가 문 너머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데,


" 와아아아-! "

" 김남우! 김남우! "


김남우를 향한 어마어마한 환호가 퍼졌다! 

철창을 중심으로 일어서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김남우의 이름을 연호했다.


" 김남우! 김남우! 김남우! "


김남우는 당황스러웠다. 선수 시절에도 이런 일방적인 응원을 들은 적이 없었다.

지배인의 말로는 분명히 5:5로 돈을 걸었다고 했는데, 모두가 김남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 늑대 따위에게 지지 말라고! "

" 인간의 힘을 보여줘! "

" 김남우! 김남우! 김남우! "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 김남우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왜지? 자신이 그들을 오해한 걸까?


.

.

.


지배인의 마이크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 오늘 경기의 승자는~ 토마스! ]


그 발표가 아니더라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철창 안의 늑대가 식사를 시작했으니까.

이제까지 한목소리로 김남우를 응원하던 VIP들도 테이블로 돌아가 아쉬운 식사를 시작했다.


VIP들은 정말로 아쉬워했다.


지배인은 힘있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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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무슨뜻인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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