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형벌의 역사


고문과 형벌은 인간의 가장 잔인한 창조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들이다.

모든 형벌의 핵심요소는 바로 고통이다.
얼마나 고통을 줄수있는가? 너무 약하면 자백을 받아낼 수 없고 너무 강하면 죄인을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고문과 형벌은 여러가지 실험을 통해 가장 적절한 형태로 발전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의 기록은 기원전 18세기 고대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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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형식을 가지고있다.
도둑질을 하면 손을 자르고 거짓말을 하면 혀를 뽑았다. 살인을 하면 응당 사형으로 벌했다.


함무라비 법전, 대부분의 죄에 대한 형벌은 사형이었다.

19세기 이전까지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은 즉결 심판이었다. 즉 투옥이란 개념이 없었다.
죄가 고발되고 자백을 받으면 재판에 의해 형을 확정되고 바로 그 형에 쳐해졌다. 

리고 현대문명이 들어서기 전까지 형벌은 사람들의 오락거리였다. 좀 더 극적인 연출하여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인기를 얻는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놋쇠 황소"를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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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놋쇠 황소"는 안에 사람을 집어넣고 아래에서 불을 지폈다. 불에 의해 놋쇠가 달구어지면서 안에 있는 사람은 유독성 연기와 열로 인해 죽었다. "놋쇠 황소"의 제작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2가지 장치를 더 추가해서 극적인 사형 장면을 연출했다. 
하나는 황소안에 나팔관을 추가하여 사람이 타죽으면서 지르는 비명이 나팔틀 통해 황소가 우는것 처럼 울려퍼지게 하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안에 향료를 추가하여 사람이 타는 냄새대신 향기가 나도록 바꾼것이었다. 

이 " 놋쇠 황소"의 첫번째 희생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제작자 자신이었다. 

그는 오랜기간 연구후 완성한 " 놋쇠 황소 "를 황제에게 바쳤고 황제는 실험을 위해 그를 첫 희생자로 삼은 것이다.

이 " 놋쇠 황소"를 시작으로 사형 방법은 더욱 잔인해졌다.


기원전 451년 로마인들은 본격적으로 사형을 체계화 하였다.
로마제국의 전성기, 원형 경기장 콜로세움에선 공개사형이 유행하였다.

오전에는 맹수들간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로 제공하고 오후가 되면 사형수들을 경기장안에 풀어놓고 맹수를 우리에서 풀었다.

그 강도가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높은 호흥을 얻었다. 
주로 사자와 표범,치타와 같은 아프리카 지역의 맹수들이 선호 되었다. 이 맹수들은 사람을 죽이게끔 훈련되있었다. 

그리고 원래는 장례의식이었던 글라디에이터의 격투를 변형시켜 사형에 이용하였다.

글라디에이터는 두종류로 나뉘었는데, 살아야하는 사람과 죽어야하는 사람이었다. 후자의 쪽은 꾸며진 각본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대다수의 죄수들이 맹수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고 일부는 글라디에이터가 되었지만 극히 적은 수였다. 

설령 글라디에이터가 된다고해도 대부분이 죽었다.

많은 경기를 이기면 죄를 사면 받을수 있었으나 그것은 갈수록 죄인 자신이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뜻이었다.

로마제국의 규모가 커지면서 죄목과 죄수의 수도 늘었다. 이런 죄수들을 처분하기 위해 대량학살쇼가 콜로세움에서 행해졌다. 

사형을 유흥거리로 제공함으로써 황제는 시민들의 인기를 얻었다.


또한 죄인의 신분에 따라 형벌에도 차별을 두기 시작했다.

가장 가혹한 형벌을 내린 대상은 반란을 일으킨 노예와 유태인 그리고 그 수가 증가하기 시작한 기독교도 이었다. 

서기 1세기가 되자 화형과 십자가형이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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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은 매우 고통스런 사형방법이었다.
십자가에 매달을때 손바닥이 아닌 손목에 못질을 하였다. 이는 죄인의 몸무게를 견디게 하기 위함이었다.

치명상이 아니기때문에 죄수는 수일간을 고통받다가 죽었다. 죽은 뒤에는 그대로 방치되어 동물에게 그 시신이 뜯어먹혔다.


서기 3세기로 접어들면서 로마법이 개정됨에 따라 사형은 더욱 새롭고 잔인한 형태를 띄었다.
연극을 통해 죄수의 사회적 제거와 볼거리를 제공하였는데 예를 들면 이러한 것이었다.
연기도중 누군가 죽어야하는 장면이 나오면 연기자의 옷과 똑같은 옷을 입은 죄수를 대신 세워 죽였다
이런한 공개사형은 오랫동안 인기를 얻었지만 점차 시민들의 거부감과 반감을 사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기독교 수도사가 이 비인간적인 행위에 반발하여 글라디에이터들 중간에 서서 막게되고 글라디에이터들은 잔인하게 수도사를 죽였다. 수도사가 순교함으로써 대대적인 비판이 일었다.

하지만 사형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그 형태와 방법을 바꾸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간혹 종교계는 신의 이름을 들어 대량학살을 자행했다. 
종교 재판이 시작되면서 기독교도들은 더 이상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로 바뀌게 된다.


그들은 시죄법을 채택하였다. 시죄법이란 죄가 없으면 두려울것도 없다는 간단한 논리이다.
예를 들어 죄가 없으면 불구덩이 속에서도 타지 않으며 물에 던져도 익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모든 죄의 유무를 신에게 맡기는 것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죄가 되었다. 이런 시죄법은 한세기 이상 시행되었다.
시죄법의 불합리성을 인식한 교황은 1215년 재판관들을 파견하여 죄의 유무를 구분하는 사법제도를 공표하였다.
이 재판관들은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당시 재판관들은 대다수가 너그러운 편이었다.


하지만 교황에게서 사법권을 넘겨받은 스페인은 달랐다. 그들은 유태인들을 법정에 세웠다.


당시 재판은 비공개였으며 고발자 2명의 증언만 있으면 유죄가 선고되었다.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재판관들은 우선 고문실을 용의자에게 보여주고 겁을 줬다. 그래도 자백하지 않으면 고문기구들을 하나하나 보여줬다. 

죄를 자백하지 않는 사람에겐 자백할때까지 고문이 가했다.


당시 가장 대표적인 고문기계는 팔다리를 묶은 다음 잡아서 댕기는 고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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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니바퀴가 돌아가면서 손발을 묶은 밧줄이 팽팽해졌다. 처음엔 탈골이 되고 그 다음엔 근육이 찢어졌다.


 밖에도 기발한 방법들이 있었는데 일명 "부츠"였다.

형태는 여러가지였지만 장화처럼 생긴 쇠모양의 틀에 용의자의 양다리를 집어넣고 무릎사이에 나무토막을 하나하나 끼우면서 다리뼈를 뭉개뜨렸다. 부츠안에 뜨거운 물을 붓기도 하였다.

악명 높은 고문도구중 "배"라는 것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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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과일 배모양이었는데 용의자의 입속에 넣은뒤 나사를 조금씩 풀어 강제적으로 입이 벌어지게 만든것이다.

입이 점점 벌어지다 결국 턱뼈가 탈골되된다.


죄인을 매다는 형벌도 있었다. 양손을 높게 묶고 발에 추를 매다는 형식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추의 무게를 추가하였다.

용의자가 죄를 자백하게 되면 끝은 허무하였다. 용서를 해주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죄를 자백하지 않으면 더욱 가혹한 고문이 가해졌고 자신의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해주었다.
끝까지 죄를 자백하지 않은 용의자는 이교도로 낙인찍혔다. 이교도는 결국 화형에 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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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형은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진행되었다.

국가와 교회의 권위를 과시하고 범죄 처벌의 가혹성을 보여주면서 범죄예방차원에서였다. 화형은 1600년도까지 계속되었다.


화형의 대상자 대다수는 여성이었다. 바로 중세 마녀사냥때문이었던 것이다.
흑사병이 창궐하던 시기 불안하고 극도로 피폐한 민심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릴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많은 마녀사냥이 이루어졌다.

여성들이 대다수인 이유는 남자보다 여자가 악마의 유혹해 약하다는 논리때문이었다. 마녀사냥 또한 고발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했다. 

고발대상자는 소위 "마음에 안드는 사람"들이었다. 마녀라는 제보가 들어오면 여자들을 재판장으로 끌고왔다.


마녀를 구분하는 방법은 피해자에게 매우 불리한 조항들이었다.
여성의 몸무게를 재서 성경책보다 무거우면 마녀라고 하던가 손발을 묶어 물에 빠뜨린 다음 떠오르면 마녀고 그대로 가라앉으면 무고하다고 봤다. 당연히 무고한 사람이 나올수 없는 구조였다.

거짓자백을 하지 않고 고문을 견뎌내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거짓자백으로 마녀로 확정되면 예외없이 화형에 쳐해졌다. 

보통 장작더미에 기둥을 세워놓고 목은 기둥에 고정시켰다. 

한사람이 다타기까지 2~3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마녀의 화형 또한 공개적으로 행해졌다.

하지만 모든 사형제도 그러하듯이 범죄의 억제효과는 증명되지 않았다.


화형이 금지되면서 런던에서는 새로운 고문방법들이 등장하였다. 그중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을 위한 형벌기구도 있었다. 

미한 범죄의 경우 나무틀에 손발을 넣게한뒤 자물쇠로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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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많은 광장이나 시장에 며칠간 내버려두었는데 주목적은 모욕감을 주기 위한것이었다. 

치명적인 형벌 방법이 아니라 무섭지 않을 것같지만 사상자도 더러나왔다. 

사람들은 틀에 묶인 죄인에게 각종 썩은 과일과 오물 그리고 돌맹이 등을 던졌는데 이로 인해 부상을 입거나 죽는 경우도 있었다.



17세기말 범죄가 악랄할수록 더 많은 고통을 느끼도록 형벌이 발전하게된다.
유럽에서는 "수레 바퀴"가 등장했다.



 - 고문과 형벌의 역사 : 54547A54496DF00007



커다란 바퀴에 사람을 올려놓고 뼈를 부러뜨렸다. 뼈를 부러뜨리기 위해서 그 어떤 도구도 다 사용했다. 

뼈가 부러지면 흐물거리는 손과 발을 바퀴와 엮기도 하였다. 이 형벌을 당한사람은 즉사하진 않았다. 

계속 고통속에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중세유럽에선 교수형이 일반적이었다. 

교수형은 사람을 바로 죽게 하는 형벌이 아니였다. 오랫동안 고통받을 수록 구경하는 사람들은 환호했다. 

교수형은 한명씩 처형하던 방식에서 대량처형이 가능한 방식으로 바뀌었다. 

한꺼번에 20명을 목메달수 있게 고안된것이다. 교수형은 일반 시민에게 이루어졌다.

귀족들에겐 다른 사형이 집행되었다. 도끼로 목을 자르는 것이었다. 

도끼로 목을 자르면 단번에 잘려나갈꺼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도끼는 둔탁하고 뭉툭하여 목을 자른다기보다도 짓뭉갰다.

이렇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목과 사지는 여기저기에 걸렸다. 지금처럼 TV나 신문, 인터넷이 없던 시절 광고를 하기 위함이었다. 

칼이나 도끼로 목을 쳐내는 참수형은 사형집행인 입장으로써는 매우 불편하기 짝이 없는 방법이었다.

힘도 많이 들뿐더러 2명의 목만 쳐도 날이 무디어졌다. 그래서 고안된것이 바로 단두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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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단두대는 커다란 도끼를 매달았다. 죄인을 도끼날이 보이게 바로 눕혀 죽는 순간까지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후에 더 정교하게 바뀌게 된다.


18세기 계몽의 시대를 지나 19세기가 되면서 고문에 대한 강한 회의감이 사람들을 강타했다. 

그때부터 투옥개념이 생겨난것이다. 처음 감옥이란 개념이 생긴곳은 신생 민주국가였던 미국이었다. 

죄인을 가두고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헌법이 선포된후 미국의 각주에선 주법을 재정하기 시작해고 많은 주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교도소를 운영하게 된것이다.

교도소와 교육프로그램은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아도 되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당시 교도소는 철저히 제한적이었다. 엄격하게 룰을 지켰고 죄수간의 대화도 금지되었다. 

초기 교도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미쳐나갔다. 미국의 사례를 유럽에서도 도입하기 시작했다.

19세기 말이 되자 대부분의 범죄는 감금형에 쳐해졌다. 

죄수의 수가 늘어나고 교도소는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다. 많은 죄수들로 인해 통제가 어려워지자 남몰래 고문이 자행되었다. 
교도소의 존재가 과연 좋은것인 가를 두고 많은 의문이 제기된다. 

교도소의 교정프로그래머들은 교도소내에서 신체적 자유를 허락하는 진보적인 아이디어를 낸다. 

그리고 교도소내에서도 사회와 마찬가지로 직업을 가질수 있게 하였고 수감생활의 행동에 따라 석방대상을 결정하기로 했다.
가석방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범죄자들도 대찬성이었고 교도소의 사회적 이미지도 좋아졌다.

이러한 수감제도의 변화는 사형 제도에도 변화를 준다. 교도소 자체내에서 사형을 집행하기로 한것이다. 

기능적 측면을 볼때 사형수가 있는 곳에서 하기가 편했고 무엇보다도 대중들의 눈을 피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형을 직접 대중들이 봤을때 가지는 반감과 사형수에 대한 동정론을 미연에 방지할 수가 있었다. 

공개사형제도가 폐지된 국가들은 다양한 사형 방법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교수형뿐만아니라 전기의자, 극약주사가 등장했다. 되도록이면 고통이 덜해보이는 방법들이었다.


새로 개발된 전기기구는 전기의자란 명칭을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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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위에 두개의 전극을 연걸하고 발은 전도성을 높이기위해 소금물에 담구었다. 

여러차례 전압을 변화시키면서 전기를 통하게 했다. 하지만 전기의자에서 여러차례의 전류가 통하고서도 죽지 않는 경우도 생겨났다.



다른곳에서는 가스실이 사용되었다. 사형수는 작은 방에 들어가 의자에 구류되고 치사량의 가스가 흘려보냈다. 

이 가스실도 빠른 사형 방법은 아니였다. 처음에 사형수들은 본능적으로 숨을 참게되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가스를 들이마시게된다.

 이 과정에서 폐가 쪼그라들며 고통으로 몸부림쳐야했다. 그리고 죽음까지는 보통 15분~20분이 걸렸다. 

세계2차대전 나치에서 가스실을 사용하면서 미국에선 가스로 인한 사형방법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그후에 전기의자를 대부분 채택하였으며 일부는 총살, 일부는 교수형을 채택하였다.
1980년에 들어서 독극물주사를 사용한 사형방법이 사용되었다. 사형집행인이나 사형수 모두에게 수월한 방법이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국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물론 사람에 따라 사형제도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나뉘었다. 

찬성론자들은 사형제도의 범죄억제능력을 꼽는데 특별히 확증된바는 없다.

아직도 많은 나라에선 고문이 이루어지고있다.


예전처럼 자백을 받기위한 고문이 아닌 고문자체가 형벌로써 이루어지고있다.

형벌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그 기반을 두고있기때문이다.

그나마 가장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것이 현재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수감형태이다.


 

위에 소개되지 않은 기타 고문방법들



 - 고문과 형벌의 역사 : 54547A554E65E00024



아이언 메이든



철로된 사람모양의 캐비넷안에 수십개의 철 가시를 박아 놓은 고문기구이다.

이 철 가시는 신체의 주요기관을 비껴가게 끔 박혀있다. 즉 용의자를 최대한 오랫동안 살려놓고 심문할수 있는 기구였다.

철 가시가 몸에 박힐때 보다 빠질때가 더욱 위험하다. 그 이유인 즉은 문을 닫아 철 가시가 사람몸에 박힐땐

철가시로 인해 출혈이 막아진다. 하지만 문을 열면 철 사기가 빠져나와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구가 종교재판에 쓰였는지는 정확하게 알수 없다. 어떤 문헌에도 자세하게 나온바가 없기 때문이다.




 - 고문과 형벌의 역사 : 54547A554E7FBD0006



물고문



주로 자백을 받기위해 사용되었다. 몸이 결박된 상태에서 이마에 계속적으로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용의자는 극심한 정신스트레스를 받게된다.

 그 이유는 신체의 억압속에서 반복적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외에는 아무것도 집중할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신이상 상태가 된다. 실제로 이 물고문 방법은 꽤 큰 효과를 나타냈다.



 - 고문과 형벌의 역사 : 54547A564E032F0003



수다쟁이 마스크



주로 잔소리가 많은 아내들에게 사용되었다. 남편들이 아내들을 고발하는 것이다.

고발당한 아내는 머리에 방울이 달린 이 마스크를 쓰게된다. 그리고 남편들은 마스크를 쓴 아내들을 거리로 끌고 나갔다.

마스크뿐만 아니라 입에 재갈을 물리기도했다. 이것을 쓴 아내는 극심한 수치심을 느껴야했다.




 - 고문과 형벌의 역사 : 54547A564E5C95002D


사기꾼 고문대


돌아가는 육각형의 나무통위에 용의자를 앉힌다. 이때 다리에는 무거운 추를 단다. 

이 육각형을 집행이 돌리게 되면 용의자의 사타구니부분과 다리 부분이 극심한 고통을 겪게된다. 

이 고통을 피할려고 몸을 위로 들게 되면 위에 박혀있는 칼날에 의해서 극심한 상처를 입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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