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한 그들의 작업이 있었다고합니다.
추궁하다가 목을 졸라 살인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건 기사(경향신문 1978년 4월 26일자)
여고생을 죽이고 겁이 난 회장아들은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자신 아버지회사의
소주공장의 숙성탱크에 시체를 넣어버리지요.
시체가 발견되기까지 약 한달여 정도.
경향신문 1979년 10월 20일자 기사
백화소주는 사람시체가 들어있는 상태로 출하되어 판매가 계속되었죠.
당시는 소주판매의 프렌차이즈제도가 엄격하게 적용되던시절이라 전북지역
사람들만 인간소주(?)를 먹게되었지만..
회장아들은 이후 재판정에서 단기3년 장기5년이라는 지금은 볼 수 없는
두가지형을 받았는데 3년을 살았는지 5년을 살았는진 모르겠습니다.
(아마 3년도 안살고 나왔겠지요)
이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주간경향이라는 잡지사에서 심층보도를 하였는데요
백화양조측에서 주간경향을 전량구매하여 소각처리를 하자
주간경향측에서는 또다시 대량재판발매하고
백화양조측에서는 또 전량구매하고..
하다가 결국 모든이에게 속속들이 알려지게되어 백화양조는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당시 인기작가였던 최인호,한수산 같은 이들이 재벌2세들의 못된행동을 질타하는
글들을 언론에 기고하고 그랬지만 뭐 달라질게 있었을까요.
좀 교묘해졌겠지요.
고3이던 회장아들도 벌써30년이 지나 이젠50줄에 접어들었을텐데
지금은 무얼하고사는지 궁금합니다.
전북군산에 본거지를두고있던 이 회사는 지금은 두산으로 인수합병되어 사라졌습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제사상에 차리는 청주, 백화수복이 이 회사의 최고 매출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