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의자에서 사형집행을 맞이할 준비중인윌리엄 케믈러
동거하던 여인을 도끼로 참혹하게 살해한 사형수 월리엄 케믈러는
미국 뉴욕주의 오번 주립교도소에 새로 설치된 이상한 의자에 앉혀졌다.
그의 머리와 한쪽 발에는 전극이 부착되었고, 바로 옆방에는
그 전극에 2천 볼트의 강한 전기를 흐르게 할 수 있는 스위치가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전기가 통할 때 불타지 않게 이미 모두 깎여진 상태였다.
1890년 8월 6일 사형수 케믈러가 앉은 의자는 바로 전기의자였다.
하지만 세계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집행은 그리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다.
17초 동안 전기를 흘려보내자 케믈러는 의식을 잃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사형집행관은 죽은 줄 알고 다가갔다가 그가 다시 숨을 쉬자 당황한 나머지 2천 볼트의 전기를
다시 10여 분 동안 더 흘려보냈다.
결국 케믈러의 몸에는 불이 붙었고, 이를 지켜보던 참관인 중 몇 사람은 혼절해 버렸다.
그리고 전기의자의 역사속에 전설로 남은 올드스파키의 이야기
올드 스파키
사진에서 보이는 의자는 한때 텍사스주에서 사용되었고
현재는 헌츠빌 감옥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전기의자이다.
박물관이 게재해놓은 의자에대한 설명은 다음과같다,
올드 스파키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이 전기의자는 1924년 2월 warden R. F. Coleman라는 죄수의 죽음을
시작으로 사형의 역사에 그 모습을 나타내게된다.
Coleman의 죽음후에 죄수들이 하나둘씩 이 의자위에서 단말마와 함께
감전으로 생을 마감하는것에대하여 간수들은 의자를
"riding the thunderbolt (라이딩 더 선더볼트)"
라는 애칭으로 부르게된다.
의자의 역할이 한창 전성기에 놓여잇을 무렵
이 의자는 한가족내의 형제 4명을 같은날 하룻밤사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만든 기록도 가지고있다.
하지만 전기의자는 너무 잔인하고 비인도적 처벌방식이라는 의견이
1972년 제기되면서 이 의자가 50여년동안 해오던 역할을
독극물주사가 대체하게 되었다.
올드스파키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기간에만
의자위에서 죽어간 죄수들의 숫자가 361명이라고 공식적인 자료에는 기록되어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올드스파키는 현재까지도 헌츠빌 감옥 박물관에서
그 자태를 뽐내며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끝으로 올드스파키의 마지막 희생자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워낙 급조한 탓에 썩 만족스럽지 않은 글이 되었지만
재밌게 봐주셨다면 감사하겠다
1886년은 어느 해보다도 특히 교수형을 당한 이들이 많은 해 였던것으로
기록되어있다.
하지만 사형준비와 사후의 시신 처리에있어서 준비되는 시간이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수와 대비해서 너무나도 비효율적이었기에
뉴욕시는 교수형을 대체할만한 새로운 사형법에대해 생각해보게된다.
그 결과 교수형의 대체로서 나온 방법이 바로 전기의자였다.
지금보는 사진에 있는 인물은 Allen Lee Davis (혹은 "Tiny"로도 불리운다)
라는 사형수로서 1998년 7월 8일 플로리다에서 올드스파키의 마지막
손님으로서 전기의자 위에서 죽음을 맞이 했다.
그는 소아 성애자였으며 3명의 아이를 살해한 전과로 사형을 선고받고
이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된다.
그의 몸이 고정되어있는 올드스파키에 전기가 들어오고 그의 얼굴은
감전으로 인한 쇼크로 보랏빛으로 울혈되고있다
지금 보시는 자료사진은 플로리다 대법원에서 그가 죽는 순간의
모습이 찍힌 사진의 유포를 허가하면서 올드스파키의 마지막희생자라는
타이틀로도 유명해진 사진들이다.
전기의자를 사용하는 사형방식은 오로지 미국과 필리핀에서만 몇십년간
시행된 사형방식중 하나이다.
지금 더이상 전기의자를 이용한 사형이 세계적으로 모습을 감춘 이시점에서
전기의자는 과거 사형방법중 하나를 대표하는 심볼로서만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으며, 오로지 네브래스카만이 2008년까지 전기의자를 사용하는
방법으로 사형을 집행하다 이후 대법원에서 위법판결이 나오게되면서
사실상 전기의자는 사형의 역사속에서 모습을 감추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