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10일 새벽 2시. 시간당 0.4mm의 보슬비가 내리던 익산 약촌오거리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택시기사 유모(당시 42세·익산시 주현동)씨는 옆구리와 가슴, 목 등을 날카로운 흉기로 10여차례 난자당해 숨진다. 경찰은 사건 직후, 오토바이를 타고 근처를 지나던 최모(당시 15세)군을 유력한 용의자로 붙잡아 재판에 넘긴다. 법원에서 최군은 경찰의 폭행에 진술을 강요당했다고 진술했지만 10년형을 선고받고 만기복역을 마친 뒤, 출소한다.<2013년 12월20일 6면 보도>
10대 소년이 저지른 것이라 믿기 힘든 이 끔찍한 사건은 일명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사건 당시, ‘진범 논란’이 일며, 경찰의 강압수사 의혹이 지속적으로 흘러나왔던 것도 한몫했다.
의혹의 불씨가 점화된 것은 최군이 출소한 뒤부터다. 세상에 나온 최군은 자신의 무죄를 끊임없이 주장했다. 최군의 사연을 들은 언론사들은 당시의 상황을 가정,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실험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소견도 더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물리적으로 최군이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정황 증거가 하나둘 드러났다. 범행을 저지른 최군의 옷과 흉기에 택시기사의 혈흔이 묻지 않았던 점, 택시 타코미터의 기록이 경찰의 조서와 들어맞지 않는 점, 범행을 저지른 최군의 도주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던 점 등이 밝혀졌다.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이 사건의 의혹을 접한 국민들은 공분에 휩싸인다. 최초 사건을 수사했던 익산경찰서에 몰려가 성토를 이어간다. 당시 경찰서장이 ‘한 점 의혹 없는 수사’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꽃은 활활 타올랐다. 일부 누리꾼들은 전북경찰을 ‘폭력경찰’, ‘악마’라고 비난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진실을 원하는 국민의 염원으로 영원히 묻힐 뻔 했던 사건의 진실은 끝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침내 법원이 사건 발생 14년 만에, 재심청구 2년 만에 이 사건의 파일을 다시 열었다.
ㅡㅡㅡ 결국 재심으로 16년만에 무죄로 결론 됬네요 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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