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5-마지막

“빨리 이 개 같은 걸 창문 밖으로 집어던져!”

 

수완이 소리쳤다.

 

나는 창문을 내리고, 떨어진 내비게이션을 주워 던지려 했지만, 시거잭에 꼽힌 전원선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안 빠져!”

 

시거잭 구멍에 꽂힌 코드는커녕, 내비게이션 본체 쪽에 연결된 코드도 뽑히지 않았다. 전원선 그 자체가 마치 

양쪽을 잇는 단단한 밧줄이라도 되는 양, 내비게이션과 시거잭을 연결한 채 좀처럼 뽑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라 버리면 되잖아! 망할! 선을 잘라 버리라고.”

 

수완이 글로브 박스를 뒤지며 말했다.

 

“여기 날카로운 게 있어!”

 

현준이 소리쳤다. 뒷자리 바닥의 잡동사니 중에서 뭔가를 주운 모양이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는 문득, 내비게이션에서 되풀이되던 소리가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내비게이션을 차에서 

떼어 내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아무도 깨닫지 못했지만, 더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비게이션을 들어 화면이 보이게 돌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화면이 바뀌며 어떤 영

상이 흐르기 시작했다. 지도 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이었는데, 차 안에서 전면 유리창을 통해 전방을 찍은 화면

이란 걸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거…… 블랙박스 영상 같은데?”

 

현준이 말했다.

 

화면은 대낮의 시골길을 비추고 있었다. 차는 달리는 중이었고, 카오디오에서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듯했다. 

아이의 목소리가 그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어른 남자 목소리는 누군가와 전화로 대화 중인 듯했다. 우

리의 눈엔 화면 저 끝에서 마주 오는 화물차가 중심을 잃고 비틀대는 광경이 보였지만, 차 안의 누구도 그 일

을 깨닫지 못한 듯했다. 한번 크게 휘청거린 트럭이 비스듬히 기운 채 미끄러지듯 중앙선을 넘었고, 곧 화면

을 가득 메우며 이쪽으로 닥쳐왔다. 뒤늦게 여자가 비명을 질렀지만, 큰 충격음을 끝으로 화면이 어두워진 뒤

로는 그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천천히 고개를 든 나는, 창 밖에서 그 화면의 결말을 보았고, 백미러에 비친 현준의 모

습에 경악했다.

 

“그, 그게 뭐야?”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왜, 그걸 들고 탄 거야?”

 

현준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다가, 제 손에 든 것을 내려다보곤 펄쩍 뛰었다.

 

“뭐야! 이 게 왜 여기 있어?”

 

현준이 뒷자리 바닥에서 주워 내비게이션의 줄을 자르라고 내게 건네주려던 것은 처음 내비게이션을 발견했

을 때 거기 붙어 있었던 센터페시아 조각이었다.

 

“네가 들고 탄 거야?”

 

“미쳤어? 이걸 내가 왜?”

 

그때, 전선을 이로 물어뜯던 수완이 현준의 손에서 그 조각을 낚아챘다. 센터페시아 조각의 날카로운 부분을 

톱 삼아 내비게이션의 전선을 썰기 시작했다. 미친 듯이 긁어대자 그제야 그 단단하던 전선의 피복이 벗겨져 

구리선이 드러났고, 곧 완전히 끊어졌다. 수완은 내 몸 위를 지나 열린 운전석 창문으로 내비게이션과 센터페

시아 조각을 집어던졌다. 그것들은 도로에 떨어져 구르다가 화물차 밑의 틈새로 사라졌다.

 

“밟아!”

 

수완이 소리 질렀다.

 

나는 속도계의 바늘이 100을 넘을 때까지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절대 백미러를 보지 않고 오로지 전조

등이 비추는 전방만 보려 애썼다. 뒤를 보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갈림길에서 아무 기준도 없이 차를 몰았다.

내비게이션이 사라진 지금,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Author

Lv.99 유북지기  최고관리자
1,267,164 (10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유머게시판 베스트

글이 없습니다.

Comments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