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4

- 5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그 내비게이션 때문이야.”

 

잠자코 있던 현준이 불쑥 말했다.

 

룸미러에 비치는 현준은 의혹과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나는 내 표정도 그럴 거란 생각에 겁이 났다.

 

나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재수 없게, 죽은 사람 물건을 주워 와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한 현준이 고개를 들어 내비게이션을 노려봤다.

 

나는 아직 그런 현준의 헛소리에 덜컥 동의할 정도로 이성의 끈을 놓지는 않았다.

 

“진정해. 죽을 뻔했지만, 그냥 사고였잖아? 한밤중에 초행길을 가다가 겪은 일일 뿐이야. 아무 계획도 없이 

와서 그래, 무덤도 그렇고……. 그러니까, 네가 선배한테 차가 어떻게 망가지고 긁혔는지 해명할 게 아니라면

, 내비가 뭐 어쨌다느니……그딴 소리는 집어치워.”

 

그때, 잠자코 있던 수완이 끼어들어 말했다. 조금 갈라진 목소리였다.

 

“야……. 너희 방금 봤어?”

 

“뭐 말이야?”

 

“……경광봉 흔드는 경찰 인형 말이야. 그 왜, 길가에 진짜 경찰 대신 세워 놓는 거.”

 

나는 그런 걸 본 기억이 없었지만 현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봤어. 속도지키라고 세워 놓은 거 아니야? 근데, 그게 왜?”

수완이 땀이 밴 듯, 손바닥을 무릎에 문지르다 현준을 돌아봤다.

 

“그거…… 방금 처음 봤어?”

 

현준이 대답했다.

 

“……아니, 예전에 어디서 한 번.”

 

“바보야, 내 말은…….”

 

수완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오늘 이 길에서 그 인형을 처음 본 거냐고.”

 

현준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저 고개만 저었다. 수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물었다.

 

“넌 그걸 두 번 봤단 말이야?”

 

수완의 미간이 깊게 팼다.

 

“그래, 두 번……아니, 똑같은 인형을 세 번 본 것 같아.”

 

“시골이잖아.”

 

내가 말했다.

 

“이런 한적한 길엔 미친 듯이 달리는 놈들이 꽤 많아. 일일이 단속하기엔 돈이 드니까 저런 걸 여러 개 세워 

두는 거지.”

 

그러나 수완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언성을 높였다.

 

“내 말 못 들었어? 비슷한 인형이 아니라…… 똑같은 인형이랬잖아.”

 

나도 현준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내가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착각이겠지…….”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가고, 뒤로 돌아간 머리, 경광봉이 부자연스럽게 허리 아래쪽에서만 까딱거리는 경찰 인

형을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본 게 착각이라고?”

 

수완의 말에 나는 점점 머리가 아파져 오는 듯했다.

 

“정신없는 일을 한꺼번에 너무 많이 겪었잖아? 나도 그래, 전조등 불빛 너머에서 뭔가 자꾸 튀어나올 것 같단 

말이야.”

 

내 딴엔 달랜다고 한 소리에 수완이 거칠게 반응했다.

 

“내가 술 취해서 헛소리나 하는 거 같아? 네가 낭떠러지로 차를 몰았을 때만큼이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으냐

고.”

 

머쓱해진 나는 아무런 대꾸를 못 했고, 어색한 정적이 흐르는 차 안에는 내비게이션의 안내 멘트만이 도도히 

흘렀다.

 

- 5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결국, 나도 짜증을 섞어 말했다.

 

“모르겠어. 인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밖에 안 들어. 그러니까 그런 얘긴 그만…….”


“잠깐!”

 

현준이 소리 질렀다. 현준은 눈을 크게 뜨고, 차가 나아가는 길 저 앞쪽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뭐라 말하려다 막힌 나는 현준이 가리킨 곳을 봤다. 어둠에 싸인 길가에, 수완이 설명한 그대로의 경찰 인형

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머리가 등 뒤로 돌아갔고, 왼팔은 알맹이 없이 옷만 나풀거리고, 경광봉을 든 

오른팔은 뭐에 걸린 듯 원래의 움직임을 다 하지 못하고 좁은 간격으로 오르내렸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인형과 스쳐 지나가면서 등 뒤로 돌아간 얼굴이 보였다. 소름끼치게

도, 우리를 비웃는 듯한 표정이었다.

 

“네 번째야.”

 

수완이 더는 두려움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이번이 네 번째라고. 저 빌어먹을 인형이 날 보고 웃은 게 벌써 네 번째라고.”

 

나는 눈으로 보고도 이 상황을 믿기 어려웠다.

 

“이 마을 사람들이 괴팍한 취미삼아 완벽하게 똑같은 팔 병/신 인형을 대여섯 개나 세워 둔 게 아니라면…….”

수완이 말했다.

“우린 지금 똑같은 장소를 빙빙 도는 거야.”


일곱 번째에서 세는 걸 그만뒀다. 우리는 분명히 조금 전과 같은 곳을 지나고 있었다. 조금 전, 그 조금 전, 그

보다 더 조금 전……. 모두 그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으

니까. 갈림길에서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달려도 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인가라

곤 보이지 않는 길이었고, 그렇다고 누구 하나 이 어둡고 외딴 도로에 차를 세우자는 말도 못했다. 그러기는

커녕 누가 말이라도 걸면 울음이 터질 듯한 분위기였다.

 

- 500미터 앞, 좌회전입니다.

 

“야, 근데 재영이 너…….”

 

현준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나는 바짝 긴장했다가 움찔 놀라 대답했다.

 

“응, 뭐?”

 

“……내비에 뭘 찍긴 찍었어?”

 

창밖으로 막, 열…… 네댓 번째 경찰 인형이 지나갔다.

 

현준이 고쳐 물었다.

 

“내비에 목적지를 어디로 찍었느냐고. 네가 내비 만지는 걸 못 본 것 같아서 묻는 거야. 너 잘 다루지도 못했

잖아?”

 

나는 지난 기억을 되새겼다. 절벽에서 차를 끌어올리고,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없었다. 분명히, 돌아

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에서 찾은 기억이 없었다.

 

수완이 내비게이션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럼 이게 지금 어딜 안내하는 거야?”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뻗는 현준의 손이 눈에 띄게 덜덜 떨렸다.

 

- 딩동, 목적지까지, 300미터, 남았습니다.

 

우리는 그 새로운 안내 문구에 서로 약속한 듯 마주 보다가, 내비게이션을 보고, 다시 전방을 바라보았다.

 

어둠만이 자욱하던 도로 위에 뭔가가 보였다.

 

거대한 무언가가 도로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그것은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차츰 제 모습을 드러냈다. 

도로에서 흔히 보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길게 멈춘 화물 트럭. 한쪽 바퀴가 허공에서 헛돌았고, 운전석 지

붕과 화물칸의 무수히 많은 철창이 정면으로 보였다. 옆으로 쓰러진 화물 트럭 아래엔 원래 형체도 짐작 못 

할 자동차가 사고의 흔적처럼 납작하게 깔려 있었다.

 

낮에 봤던, 바로 그 사고 현장이었다.

 

나는 홀린 듯 그 앞에 차를 세웠고, 현준은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중얼거렸다.

 

“저게 왜 여태, 저게 왜 여태, 저게 왜…….”

 

내가 겨우 목소리를 짜내, 나조차도 수긍하지 않을 말로 떠들어댔다.

 

“시, 시골이잖아. 치울 장비가 없었을 거야. 태평스런 시골의 일 처리란 게 원래 그렇잖아?”

 

아무도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 하늘에서 뭔가가 나풀나풀 떨어져 자동차 유리창 위에 내려앉았다. 나는 곧 그것이 뭔지 깨달았다. 연

이어 몇 개가 더 떨어진 그것은…… 닭털이었다.

 

문득, 내비게이션에서 잡음이 흘러나왔다.

 

- 치직치직, 치직.

 

차 안은 한겨울처럼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고, 숨을 쉬면 입김이 나올 것만 같았다. 우리의 눈길이 일제히 내

비게이션을 향했다.

 

- 전방에, 치직치직.


내비게이션은 신호 없는 주파수를 오가는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는 잡음을 쏟아냈다. 그러더니 곧, 여자 성우

의 목소리가 늘어져 굵은 남자 목소리로 들리는 소리가 튀어 나왔다.

 

- 전방에, 치직, 길이, 치직, 없습니다. 치직, 길이, 치직, 없습니다. 치직, 길이, 치직, 없습니다…….

 

“이, 망할!”

 

수완이 주먹으로 내비게이션을 후려쳤다. 앞유리에서 떨어져 나간 내비게이션이 대시보드 위를 세차게 뒹굴

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되풀이해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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