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3 (글자수제한 몇인가요. 짜르는포인트잡기가 애매하네요)

비포장 산길을 오르는 동안 몇 번인가 바퀴가 구덩이에 빠져 헛돌았다. 놀이공원의 '타가다'라도 탄 듯 엉덩

이가 들썩였다. 뾰족한 바위가 차 밑바닥을 긁는 소리가 날 때마다 선배의 얼굴이 환영처럼 눈앞을 지나갔다. 

길가론 구름 낀 밤하늘과 맞닿은 듯한 키 큰 소나무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다. 산길을 오른 지 5분쯤 지났지

만 길은 갈수록 험해져 더는 차로 못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였다.

 

“들어봐, 물소리다.”

 

수완이 내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차를 멈춰 세운 곳은 마침 산길의 끝이었다. 바닥엔 그 지점에서 돌아 나간 차들의 바퀴 자국이 보였다.

 

내가 먼저 내리고, 수완과 현준이 떠나기 전 마트에서 사온 물건을 들고 뒤따라 내렸다.

 

나는 달빛도 자취를 감춘 숲 속에서 희미한 휴대전화 불빛으로 사방을 훑었다. 물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풀숲

을 헤치고 나아가자, 제법 너른 공터가 나왔다. 공터 한쪽으론 급한 비탈길이 있고, 그 아래에 상류의 폭이 좁

은 계곡이 보였다. 덩치 큰 바위가 계곡 바닥 여기저기에 널렸고, 희뿌연 물이 어둠 속에서 그 바위들을 에워

싸며 흐르고 있었다.

 

“여기 좋은 불판 있네.”

 

수완은 어지간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두리번거리며 풀숲을 헤치더니 곧 뭔가를 찾아낸 듯했다.

 

수완이 찾은 돌, 마치 우리의 용도에 맞춰 누가 미리 준비해 놓은 듯한 넓적한 그 돌을 휴대전화 빛에 비춰보

았다. 돌의 한쪽 면은 사포로 문댄 나무판처럼 편편하고, 반대쪽은 비스듬하고 울퉁불퉁했다. 비스듬한 쪽의 

거친 단면을 보니, 어떤 더 큰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사람이 깎은 돌 같은데? 무슨 대리석 바닥재 같아.”

 

현준이 말했다.

 

“좋지 뭐, 고기 굽기에 딱이잖아? 봐 봐, 기름 빠지라고 홈도 파 놨어. 기가 막히네.”

 

수완이 낑낑대며 바위를 들어 적당한 곳으로 옮겼다. 밑에 작은 돌멩이를 괴어 불 피울 공간을 만들고서 그 

위에 편편한 돌을 올렸다. 고기를 놓을 자리는 소주를 들이부어 깨끗이 씻어냈다.

 

현준의 바지에 불이 옮겨 붙는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바위가 달아올랐다. 곧, 위에 올린 고기도 지

글거리며 맛있게 익기 시작했다. 수완은 거의 육회를 먹듯 다 익지도 않은 고기를 허겁지겁 먹었고, 나와 현

준도 씻지 않은 깻잎으로 고기를 싸 먹었다.

 

“거 봐, 역시 깻잎이라니까.”

 

현준이 마침내 자신의 주장이 증명되었다는 듯 말했다. 술에 취해 마트에 갔을 때, 우리는 깻잎이냐 상추냐 

하는 문제로 우리끼리 목청을 높여 싸웠고, 결국 보안요원에게 떠밀려 쫓겨났었다.

 

“깻잎이 아니라, 고기가 좋은 거고, 불판이 좋은 거야. 돌이 숨을 쉰다고 하잖아. 이거 봐, 기름만 빨아들이고 

수분은 그대로지? 텁텁하지도 않고 아주 환상이지 않냐?”

 

수완이 입에 한가득 넣은 고기를 우걱우걱 씨 ㅂ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심전심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둠 

속에서 모닥불 빛을 받아 벌겋게 빛나는 얼굴들이 누가 쑤셔 넣듯 묵묵히 삼겹살을 삼키는 꼴이라니.

 

“산에서 밥을 먹으면 더 맛있는 이유가 나무에서 나오는 그 뭐라더라, 알파파 때문이랬나? TV에 나왔잖아.”

수완이 말했다.

 

“내 생각에, 알파파니 뭐니가 아니라, 우리 뱃속에 똬리 튼 거지 때문일 거야. 6년 전쯤에 들어와서 도통 나갈 

생각이 없는 거지 말이야.”

 

내가 말했다.

 

“난 12년.”

 

현준이 출렁이는 뱃살을 두드리며 말했다.

 

수완도 따라 킥킥대다가 괴로운 표정으로 가슴을 쳤다.

 

“물.”

 

나는 수완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낄낄대다가 옆에 놓인 마트 봉지를 뒤지며 물었다.

 

“우리가 물은 안 샀나?”

 

현준이 대답했다.

 

“아니. 샀는데 수완이가 마트 보안요원한테 집어던졌잖아. 거시기에 정통으로 맞던데.”

 

소주도 동났고, 새 고기를 밀어 넣어 막힌 가슴을 뚫으려는 시도도 실패로 끝났다. 수완이 가슴을 문지르며 

답답하다는 듯 계곡 쪽을 가리켰다. 생각해보니, 염전에서 소금을 찾는 격이었다.

 

결국, 내가 빈 소주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거친 길을 내려가는데 술기운이 돌아 다리가 휘청거렸다. 까딱 잘못하다간 비탈을 굴러 계곡 바닥에 처박힐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무언가가 내 신경을 긁었다. 조금 전부터 왠지 모를 위화감이 들었고, 그 느낌은 물가로 내려갈

수록 더 심해졌다.

 

계곡의 물소리. 적당히 차가운 바람.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풍성한 머리칼처럼 부드

럽게 흐르는 계곡물.

 

……부드럽게?

 

물이 아니었다.

 

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계곡 바닥을 빈틈없이 하얗게 메운 갈대였다. 물은 문자 그대로 단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퍼석퍼석 마른 소리가 났고, 계곡 바닥의 큰 바위들도 바싹 말라 있었

다. 일시적으로 수량이 준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물이 흐르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분명히 물소리를 들었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와 셀 수 없이 많은 갈대가 서로 몸을 부대끼며 춤을 췄다. 쏴 하는 그 소리는 영락없는 물

소리였다. 갈대들의 파도 속에 선 나는 문득,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공포심이 뱃속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물이 흘러야 할 자리를 대신한, 마치 살아 있는 듯 파도 치는 갈대 무리. 유혹하는 듯한 가짜 

물소리.

 

소주병을 그대로 팽개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 허겁지겁 비탈길을 올랐다. 몇 번 미끄러질 때마다 등 뒤가 근질

거렸다. 뭔가가 잡아끄는 기분마저 들었다. 내려왔던 길을 휴대전화 빛에 의지해 찾아 헤맸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희미한 빛이 겨우 디딜만한 자리를 찾아내 비추었고, 나는 쫓기듯 그 길을 올랐다. 곧 수완과 현

준이 앉은 자리가 보였다…….

 

나는 입을 딱 벌리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수완과 현준의 형체가 불빛을 받아 일렁이며 내게 손짓을 했다. '뭐 해, 빨리 안 오고.' 잘 들리진 않았지만 그

런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수완은 모닥불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봉곳하게 솟은 땅에 비스듬히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그것은…… 무덤이었다.

 

헛것을 볼 만큼 마시지도 않았고, 오히려 소름끼치는 한기가 온몸에 내려앉아 정신이 또렷했다.

 

귀퉁이가 허물어지고 다듬지 않은 풀이 무성했지만, 그것은 분명히 무덤의 봉분이었다. 그 앞에 선 네모난 물

건이 비석이라면 말이다.

나는 네발로 기듯이 나머지 비탈을 올랐다. 모닥불 앞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헉헉대다가, 도로 일어섰다


수완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물은?”


“너, 너희……. 헉헉. 당장 일어나. 헉.”

 

현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젓가락을 놓으며 물었다.

 

“왜? 멧돼지라도 봤어?”

 

나는 말 대신 휴대전화를 들어 우리가 앉은 자리 뒤쪽을 비췄다. 수완이 기댔던 곳은 풀이 무성히 자란 무덤

이었고, 그 앞의 오래된 비석은 한 귀퉁이가 납작하게 떨어져 나간 채였다. 더군다나, 하나가 아니었다. 옆으

로 비슷한 크기의 무덤이 하나 더 있었고, 그 사이에 아주 작은 무덤도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어른의 무덤은 

아닌 듯한 크기였다.

 

현준은 경기를 일으키듯 고함을 질렀고, 수완도 욕을 내뱉었다.

 

“뭐야, 여태 무덤 앞에서 밥을 먹은 거야? 젠장, 왜 아깐 못 봤지? 그냥 공터였잖아.”

 

수완이 말했다.

 

현준은 어둠 속에 떠오른 달처럼 하얗게 핏기가 가신 얼굴이었다.

 

“빨리 여길 떠나자. 재수 없게, 이게 뭐야…….”

 

내가 벌려 놓은 쓰레기 따위를 대충 치우는 동안 옆에서 발로 모닥불을 비벼 끄던 수완이 갑자기 토하기 시작

했다. 나는 영문 모를 상황에 놀랐다. 그러나 수완을 부축하던 현준까지 따라서 토하는 걸 보니 덜컥 겁이 났

다. 그리고 곧, 무엇이 둘의 속을 뒤집어 놓았는지 깨닫고는 나 역시 참을 수 없는 욕지기가 치밀어 옴을 느꼈

다.

 


희미한 온기와 삼겹살 냄새가 감도는 불판이 처음과는 달리 보였다.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돼지기름이 

고인 홈이 일정한 유형으로 정교하게 파낸 모양이라는 것을. 마늘을 올려놨던 홈이 십자가 모양이라는 것을. 

오목새김으로 쓰인 ‘김金’이라는 익숙한 한자를.

 

“망할 묘비에 고기를 구워 먹은 거야?”

 

내가 헛구역질을 하며 소리 질렀다.

 

“몰랐어. 너희도 몰랐잖아, 미친.”

 

수완이 변명하듯 말했다.

 

우리는 남은 음식을 챙길 여유도 없이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숲 속에 공터가 있는 것부터 곰곰이 생각해 봤어야 했다. 방치된 가족묘 앞에서 술판을 벌였으니, 제사를 지

낸 셈인지도 모른다…….

 

다시 구역질이 났다.

 

차를 돌리다 작은 나무를 들이받았지만, 아무도 그런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수완과 현준은 숨을 몰아

쉬다가도 문득 다시 생각난 듯, 창문을 열어 남은 음식물을 쏟아 냈다.

 

산길을 빠져나와 다시 포장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두 충격이 가시지 않는 모양이

었고, 잊을만하면 하나가 구역질을 시작해, 곧 전염병처럼 나머지 둘에게 퍼졌다.

 

시각은 9시 45분. 한층 깊어진 어둠이 도로를 뒤덮고 있었다. 가끔 안전운전을 당부하는 내비게이션의 목소

리만이 적막을 깼다.

 

- 300m 앞, 우회전입니다.

 

구불구불 이어지던 길 끝에 갈림길이 나왔고, 나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랬다

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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