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 (원제는 다른거였는데 복사해서 저장하는 과정에서 그냥 임의대로 지었음) 조금길지만 괜찮음

글자수 제한이있었군요 ㅡㅡ;; 짤라서 다시올려유


시골길의 갑작스러운 정체는 역시 사고 때문이었다.

우리가 탄 92년식 포텐샤는 15분 동안 꽉 막힌 도로를 슬슬 기다가 마침내 사고 현장을 지나쳤다. 닭장을 가

득 실은 18톤 트럭이 한 차선을 온통 막은 채 길게 누웠고, 그 아래 찌그러진 고철처럼 깔린 것이 상대 차인 

듯했다. 마티즈나 클릭처럼 보이는 소형차였는데,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 짐작도 가지 않을 만큼 처참한 몰골

이었다. 구급대보다 먼저 도착한 견인차 기사가 허탕쳤다는 표정으로 갓길에서 담배를 피웠고, 이 모든 풍경

이 꿈이라도 되는 양, 닭 수백 마리가 도로를 어지럽히며 날았다. 누군가가 살아남았다면 트럭 쪽이었겠지만, 

썩 기대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정체를 벗어난 차들은 무심히 현장을 떠났고, 개중엔 경적을 울리고 욕설을 내뱉는 이도 있었다.

 

“사고를 내려면 논두렁에나 처박힐 일이지, 길을 막고 지/랄이야!”

 

창밖의 사고 현장을 내다보던 현준이 말했다.

 

“한국인들은 그저 운전대나 키보드만 잡으면 미친개가 된다니까.”

 

현준의 표정에 씁쓸함과, 연민과, 황당함에서 나온 헛웃음이 교차했고, 내 감상도 그와 비슷했다.

 

제정신을 논한다면 우리도 썩 칭찬받을 인물들은 아니었다. 그즈음 우리는 대학 생활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

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날도 소주방에 모인 우리 셋은 내일 볼 선형대수학 시

험의 변태성을 성토하다 백지투쟁 안安에 뜻을 모았다. 민중가요와 원더걸스의 노래를 섞어 부르며 학교로 

돌아왔을 때 제5공학관 주차장에서 한 해 선배의 차를 발견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수완은 엉큼한 미소를 지으며 선배가 열쇠 숨겨 둔 곳이 어딘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반쯤은 장난투로, “강가

의 넓적한 바위에 불을 피워서 삼겹살을 구워 먹자.”라고 했고, 우리는 결국 선배의 포텐샤를 멋대로 타고 길

을 떠났다. 그때가 오후 4시쯤이었다.

 

끓어오르던 객기도 사고 현장을 지나칠 무렵에는 이미 식어 없어졌지만, 누가 먼저 돌아가자고 말하기도 멋

쩍은 상황이었다.

 

하품을 하며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던 현준이 말했다.

 

“할아버지가 해 준 이야긴데……. 젊은 시절엔 고속도로 바로 옆 땅에서 농사를 지었대. 근데 매년 흉작이었

다는 거야. 심지어 다른 논은 풍년이라 쌀값 떨어질 걱정을 하던 해에도……. 그래서 어느 해 모내기 철에 굿

을 했는데, 며칠 후에 할아버지 논 바로 옆의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가 났대. 논일하던 할아버지가 뭔가 터지

는 듯한 소리를 듣고 전쟁이 난 줄 알았을 정도라니까. 몇십 중 사고였는데, 할아버지는 고깃덩어리가 된 사

람들이 불타는 도로에 널브러진 광경을 직접 봤대. 풍년은커녕 사람이 죽어나갔다며 무당 욕을 했는데, 신기

하게도 그 해 농사는 대풍이었대.”

 

수완이 말을 끊었다.

 

“운명은 대가를 원한다, 뭐, 그런 이야기 아냐?”

 

“비슷한데, 이건 우리 할아버지가 겪은 실제 사건이라니까. 그런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들어 봐. 다음 해

에 논을 갈아엎던 할아버지가 흙 속에서 뭔가를 찾아냈는데, 그게 뭐였을 거 같아? ……백골이었대. 다리뼈, 

팔뼈, 갈빗대, 거기다 머리뼈까지. 곳곳에서 그런 유골이 나왔다는 거야. 할아버지는 경찰에 끌려가고 난리가 

났는데, 결국 지난해 교통사고 피해자들의 유골임이 밝혀졌지. 아무리 큰 사고였고, 도로 바로 옆의 논이라지

만, 시체 조각이 그만큼 멀리 날아와서 논 깊숙이 박힐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흥미로운 건, 풍작은 그 해

뿐이었단 거야. 다음 해부턴 다시 예년의 황폐한 땅으로 되돌아갔지.”

 

수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람 고기가 보약이라잖냐. 조선시대만 해도 사람을 고아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중병을 앓던 어느 마을 사

또가 아이를 잡아먹었다던가……. 또 모르지, 여태 그런 미신이 남아 있을지도. 요즘 세상에 코딱지만 한 남

한 땅에서 아이가 흔적도 없이 실종된다는 게 믿어지냐, 넌?”

 

닭털 날리는 구간에서 벗어났을 즈음 도로에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오후 6시 50분. 나는 여전히 술

기운이 남아 머리가 아팠지만, 당장에라도 운전대를 엉뚱한 방향으로 돌릴 듯한 위험한 상태는 벗어났다. 때

문에, 전조등이 비추는 도로에서 시커먼 물체를 발견했고, 그것을 짓밟기 직전에 차를 멈춰 세우는 데 성공했

다. 안전띠를 매는 건 남자로서 쪽팔리는 짓이라 생각하는 수완이 대시보드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저게 뭐지?”

 

내가 말했다. 전조등 불빛이 비치는 도로 위에 정체 모를 시커먼 덩어리가 죽은 고양이처럼 놓여 있었다.

 

“무슨 기계 조각 같은데?”


나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기고 차에서 내렸고, 잠시 후 수완과 현준도 뒤따라 내렸다.

 

지나온 곳을 돌아보니 사고 현장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멀리 차들이 여럿 모인 듯한 불빛이 보였

다. 그 위로는 뿌연 먼지처럼 닭털이 날리고 있었다.

 

수완이 그 물건을 발로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야, 이거 그거야. 대시보드 아랫부분…… 센터페시아라고 부르던가? 저 사고에서 부서진 조각이 여기까지 

날아왔나 봐.”

 

수완의 말대로 그것은 마티즈에서 떨어져 나온 자동차 실내 부품이었다. 라디오와 에어컨 조작 단추가 온전

히 붙었고 아래쪽에는 시거잭 구멍이 있는 센터페시아 조각이었다. 신기하게도, 시거잭에 꼽힌 전원선의 반

대쪽 끝에는 부서지지도 않은 내비게이션이 달려 있었다. 심지어 내비게이션을 자동차 앞유리에 고정하는 거

치대도 멀쩡히 붙어 있었다.

 

“디자인 보니까 마티즈 거네. 이래서 경차는 안 된다니까. 어떻게 부서졌기에 대시보드 쪼가리가 여기까지 날

아와?”

 

“이거 비싼 건데? 블랙박스 일체형이잖아.”

 

내비게이션을 주워들고 유심히 살피던 현준이 말했다. 놀랍게도, 전원 단추를 누르자 문제없이 화면이 켜지

는 상태였다. 자세히 보니 겉모양도 그런 사고에서 살아남은 물건이라 보긴 어려울 정도로 말끔했다.

 

“요즘 내비게이션 잘 나온다니까. 업체끼리 경쟁이 붙어서 이 정도 아니면 팔지를 못하겠지.”


“들고 가자.”

 

내가 말했다.

 

“돌려주게?”

 

현준이 물었다.

 

“돌려주긴, 누구한테? 마티즈 주인이 지금 내비게이션 걱정할 처지는 아니잖아.”

 

조금 전까지 차를 몰고 오는 내내, 내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었다. 없어진 포텐샤를 찾는 선배의 부재중 통

화가 액정화면을 가득 채운 걸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껐다. 도난 신고를 하기 전에 우리를 용의자로 의심한 선

배를 칭찬해야 할지 탓해야 할지 애매했지만, 어쨌든 선배에게 늘어놓을 변명거리가 필요했다. 내일쯤 돌아

갔을 때, 포텐샤의 허전한 대시보드를 블랙박스 일체형 내비게이션이 장식한 모습을 본다면 선배의 화도 많

이 누그러지겠지.

 

“좀 꺼림칙하잖아? 죽은 사람 물건을 들고 간다는 게…….”

 

현준이 내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차피 보험에 들었을 거고, 가난한 학생들이 유용하게 쓴다면 고인도 좋아할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두 손을 모아 구급차의 경광등이 번쩍이는 사고 현장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수완은 시거잭에 꼽힌 내비게이션 전원선을 뽑으려 애썼지만, 쉽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사고 과정에서 찌그

러졌는지, 마치 내비게이션의 전원 코드가 시거잭에 뿌리를 내린 듯 단단히 박혀 뽑히지 않았다. 결국, 길가

에서 주워 온 돌멩이로 연결 부위를 여러 번 내리쳐서야 떼어낼 수 있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부서진 센터페시아 조각에 내비게이션이 딸려 

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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