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후기)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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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작성하기에 앞서




나는 80년대 후반 출생자이며 글에는 주관적이거나 당시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설정이 많음을 알려 드립니다.








오락실이라는 것은 당시의 아이들에겐 비행청소년의 아지트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아이들은 전자오락을 문구점 앞의 박스 오락기에서 접하고 있었고




나 역시 다르진 않았다.













파이널 파이트, 스노우 브라더스, 던전 앤 드래곤, 퍼니셔...




애들의 주머니에서 코묻은 돈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한 게임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 2'와 '더 킹 오브 파이터즈'를 필두로 한 




일명 '2차원 대전 액션 격투게임'이었다.















1994~5년은 격투게임의 격동기였다.




왕좌를 차지하고 있던 스파2와 슈스파류의 후속작이 SNK의 킹오브 파이터즈 94와 95에 밀려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놀랍게도 2d라는 한계가 버추어 파이터와 철권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 타파됨을 물론




폴리곤의 3d, 도트의 2d에 의한 싸움으로 번져가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러면 뭐하나, 동네 국민학생들이 할 만한 게임이래봐야 스파2와 킹오파뿐이었다.




버추어 파이터는 아직 시골까지는 닿지 못할 정도로 기판의 보급률이 좋지 못했으며




철권은 두 세대 맞으면 뒈지는 게임인데다 폴리곤의 이질감이 아직 너무 심한 상태였다.






90년대 줄기차게 방영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영향으로 인해




어린 게이머들은 아직 유려한 2d 그래픽 내에서의 플레이를 즐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스트리트 파이터2는 내가 아날로그 시계 읽는 법도 모를 시절, 이미 전국을 제패한 게임이었다.




유치원 시절 국민학생 형들에게 눈치를 봐가며 배운 실력은 내가 8살이 되어 국민학생이 되었을 때 여지없이 발휘




되기는 개뿔






파동권(236p)와 승룡권(623p)를 제대로 쓰지 못했던 나는 동네 형들의 제물이 되었다.




내가 처음으로 셀렉했던 캐릭터는 혼다였는데, 혼다가 답없는 병신 캐릭이란 걸 알게 된 건 10년도 지난 일이다.




또한 굿 보이!라는 음성이 사실은 도스코이!였다는 것 또한 세월이 한참은 흐른 후에 알게 된다.















굿 보이! 굿 보이!를 외치며 박치기를 시전하는 일본의 스모 선수 혼다.




여차하면 ppppp로 벽에 몰린 상대방을 농락하는 근성가이.




나의 격투게임 사상 첫 주캐는 혼다였다.















문제는 혼다가 파동권과 승룡권에 가감없이 개털린다는 데 있었다.




굿 보이는 날아오는 해파리같은 장풍에 여지없이 나가떨어졌으며




분명히 손을 존나게 갈기고 있는데도 류와 켄의 오오류겐에 좆털리는 빨래질은 한숨을 쉬기에 충분했다.




태권도 밤띠와 빨간띠를 달고 있는 그 두 플레이어가 한동안 나의 주적이 되었음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시발 이게 도대체 뭔겜이냐, 장풍이랑 오류겐 있는 캐릭터가 사실상 최고 아닌가?




그래도 류랑 켄은 하기 싫었다. 저건 개나 소나 다 고르는 캐릭터거든.






어느날, 시원하게 류한테 개털리고 일어서는 내 뒤로




의기양양하게 컴퓨터를 썰고 있는 류 플레이어에게 도전하기 위하여




누군가 100원을 투입했다.











동네 아저씨스러운 청청패션, 레옹 선글라스를 낀 X세대 백수같은 형. 




그가 선택한 것은




팔랑거리는 금발머리, 동네에선 CPU를 썰 때나 볼 수 있었던 캐릭터




그렇다. 가일이었다.













라데꾸




라데꾸




반달차기




라데꾸




원거리강p






저건 무엇인가?




어떻게 저렇게 빠르게 모으기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 그는 지금에서야 깨닫는 사실이지만




1로 앉은 뒤 소닉붐을 계속 깔다가 상대방이 뛰면 즉각 섬머솔트를 사용하는




일명 '대기군인' 스타일을 완성한 초고수였던 것이다.













그렇게 어려워 보였던 류와 켄이 장풍만 쏘다가 녹아버렸다.




같은 게임인데 이렇게 플레이가 차이날 수가 있는가?




나는 가일을 하는 동네 백수의 플레이를 유심히 관찰했다.








라데꾸(소닉붐)은 1모으기6으로 사용가능했고




섬머솔트(반달차기)는 1모으기 9로 시동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모두가 속셈학원에 가고 난 6시 이후, 혼자서 가일을 수련했다.




하루 용돈 500원을 전부 꼬라박을지언정 무슨 상관이랴




오로지 류와 켄의 짜비리(얍삽이)를 파해하기 위하여 정진하고 또 정진했고




다음날도 슬기로운 생활이니 바른생활이니 학교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마음 속으로는 1모으기를 연습하며 학교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계속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2)









라데꾸 썸머쏠트 원거리강p 근거리강p(어퍼컷)의 콤비네이션은




태권도복의 두 플레이어를 지리게 하기에 충분했고




돈이 떨어진 둘은 주머니를 뒤지는 척하다 꼬리를 감추었다.




사상 처음 맛보는 10연승 이상의 쾌감이었다.











그 색다른 쾌감은 베가(꼬챙이)전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다들 내 플레이를 쳐다보기만 할뿐




4천왕이 나올 때까지 아무도 내게 잇지 않았다.




나는 오락기에서 나오는 꾀돌이를 씹으며




드디어 M.bison(장군)을 깰 수 있을거라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었다.




그때였다.











내 마음속의 가일 스승인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애들 사이를 헤치고 커다란 몸집을 맥주 박스 위에 얹은 뒤




내게 연결을 해왔다.




그런데




당연히 가일 대 가일, 영혼의 대결을 펼칠거라 생각했던 그가 선택했던 캐릭은




가일보다도 보기 힘든




달라이신(달심)이었다.








아니 시팔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그당시는 폼이 조금이라도 안나면 무조건 똥캐였다




가일, 혼다까지가 사나이 캐릭의 마지노선이고




달심, 블랑카는 좆찐따들이나 하는 캐릭터였으며




지지배도 아닌데 춘리를 하는 새끼는 호모냐고 놀림받던 시대였다. 













존나게 털렸다.




달심의 슬라이딩과 요가 화이어 요가 후레임 요가잡기까지...




공중돌돌이에 정신나간 기본기들까지




달라이신이 저렇게 좋은 캐릭터였나?




아니, 저 사람이 고수인 거 뿐이다.




돈이 떨어진 나는 아까 다른 놈들이 울상으로 돌아가던 것처럼




털레털레 집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신축되기 시작한 낮은 아파트들과 함께 우뚝 선 채로 위용을 자랑하는 시내의 마천루들을 지나




돌아온 내 방에서 




나는 뭔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예복습이고 지랄이고 내가 바랐던 건




이기고 머리를 빗어넘기는 가일의 모습이었다.






잘려고 누운 머릿속엔 스파2의 OST가 주구장창 깔렸고




내일 그 백수를 이길 생각이 가득했다.






결전의 다음날




같은 건 없었다.













문방구는 스파2 기계를 '더 킹오브 파이터즈 95'로 교체했다.




더 이상 라데꾸도 섬머솔트도 나를 괴롭혔던 아도겐도 오류겐도 없었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3 on 3.




그것은 마치 격투게임의 룰인것마냥 빠르게 번져 나갔던 kof94를




단순히 삼류 게임으로 치부하던 내게 거대한 물결을 일으켰다.






3가지의 혁신.




위에 거론했던 3 on 3의 최장 5라운드 시스템은 긴 플레이타임을 보장했고




스파에 비해 훨씬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족감을 더해주었으며




그 무엇보다도 매력적인 '초필살기'의 존재는 가히 혁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초필살기라는 게 kof에서 가장 먼저 생긴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자 그럼, 무슨 캐릭터를 골라볼까...




뼛골까지 사파 유저였던 나는




에이지, 이오리, 빌리로 통용되는




이른바 이오리 팀을 셀렉했다.




에디트 시스템이 뻔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오리 팀을 골랐던 이유는




에디트를 하기 귀찮은데다가 셋의 컨셉이 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빌리의 선풍화염곤은 킹과 유리의 속옷을 짓이겼으며




이오리의 초필살기(팔치녀)와 에이지의 초반달(참철파) 역시나 그 성능을 따르고 있었다.






괴상하게도




스파에선 그렇게 빡빡했던 장풍과 승룡의 커맨드가




킹오파에선 비비기만 해도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오리의 오오스(귀신태우기)는 아직까지 잘 나가지 않았다.











킹오파95는 완벽한 신작에 가까웠기에




문방구 근처에는 절정의 고수가 나타나지 않았고




태권도복 형제와 무수의 국딩들과 함께 수련과 수련의 나날을 거듭하던 찰나




누군가 못 보던 사람이 고개를 디밀고 오락기에 동전을 쑤셔넣었다.











다음편에 계속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3)













호기롭게 내게 도전해 온것은




근처 중학교의 교복을 입은 호리호리한 형이었다.




약간 사시끼가 있는데다 다크서클이 엄청나게 진했기에




앞으로는 그 사람을 '개눈깔'이라고 지칭하겠다.



















개눈깔이 고른 캐릭터는 일본팀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오리팀을 선택했고, 빌리부터 내밀었다.




거기에 응전하는 것은...











빌리는 베니마루의 약짤짤 삼단기리(반동삼단차기)에 처절하게 응징당했지만 나는 그다지 낙심하지 않았다.




빌리는 어차피 멀리서 쫍쫍이로 상대방을 화나게 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주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 2라운드는 다행스럽게도, 에이지의 가슴의길이와 참철파를 이용해 베니마루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똥파워 캐릭터 고로가 나왔지만 그는 고로를 잘 하지 못하는지, 지뢰진과 잡기만 시도하다가 허망하게 쓰러져 갔다.




게임을 하면 할 수록 알 수 있었다.




이 새끼는 에이지를 하나도 모른다. 날렵한 몸놀림에서 나오는 순간이동, 쉴새없이 날려대는 기공포와 가슴의길이, 초반달에 대책이 없다.




옳다구나, 이길 수 있겠다.






이제 남은 건 구사나기 교(쿄)뿐.




이 기세를 몰아 이오리는 나올 필요도 없이 쿄를 정리해버리겠다!











그러나 그가 쿄를 3번으로 놓은데는 이유가 있어보였다. 




개눈깔은 전형적인 파동승룡계 유저처럼 땅에 깔리는 장풍(어둠쫓기)과 불이야(귀신태우기)를 이용해 




눕히고 등짝을 잡으려는 나를 엿먹이고 에이지를 더러운 아스팔트 바닥에 때려눕혔다.


 









좋다, 어디 한 번 해보자 이거지. 이오리로 똑같이 해보자. 




그럼 이 자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나도 그걸 따라 치고 빠지면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오리가 등장하고 라운드가 시작되자마자 나는 장풍을 깔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평소에는 레버를 비비적거리지 않으면 나가지도 않던 대공기가 나가버렸다.






하늘로 승천하고 있는 이오리.




개눈깔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번 제자리회피(A+B)후 팔꿈치로 회피중 공격을 때려박았다.




그리고 이단차기(칠십오식 개)가 깔끔하게 연속기로 히트했다.







괜찮아, 불이야나 삼단찍어차기까지 맞는다고 해도 아직 반피는 있다. 충분히 역전을 노려볼 수 있는 피다.




빨피를 만들면 언제 내 필살기가 나올지 모르지...




어?















이단차기 - 이단차기 - 이단차기 - 이단차기




내 이오리는 약손 짤짤이 한대 때려보지 못하고 흰 화면 아래 쓰러졌다.




뭐야 시발? 저게 연속기로 들어가는 거였어?




쿄는 정직한 캐릭이 아니었던 건가?




이단차기 한 방을 맞으면 죽어야 하는 개씹사기캐였던 건가?









연패, 연패.




개눈깔은 신이 난듯, 아예 쿄를 1번 엔트리로 고정시키고 있었다.




괜찮아, 이단차기만 안맞으면 돼...라고 생각하는 사이 돈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나는 알량한 자존심과 약캐부심을 모두 버리고




어느새 쿠사나기 쿄를 선택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컴퓨터에게 이단차기 4번을 넣어 죽이는 내 자신을 상상하며 동전을 넣었다.




씨발, 안되잖아?




왜냐, 왜 안되는 거냐.




이단차기를 맞은 컴퓨터는 벽으로 날아가기 바빴고




그 다음 이단차기는 아무리 해도 히트되지 않았다.






나와 개눈깔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기에 전혀 되지 않는 것일까




스파 때처럼 눈으로 보고 따라할 수 없는 거대한 실력차라도 있는 걸까




아무리 따라해 보아도 이단차기 한방 연속기는 되지 않았고




태권도복 형제를 비롯 동네의 찌랭이들은 개눈깔에게 하루하루 동전을 상납하는 지경에 이르르고 말았다.






그의 이단차기는 내 자존심을 완전히 구겨버렸고




나는 다른 문방구나 슈퍼 앞에서 kof95를 찾아 떠도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어디서든 이단차기 연속기를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았고 그때마다 난 씹털리고 집으로 돌아갈뿐이었다.




뻘쭘함을 무릅쓰고 그걸 어떻게 하냐고 개눈깔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개눈깔은 나를 한 번 쓱 보더니, 희번덕거리는 눈알을 굴리며




'안 가르쳐주지롱'이라고 한 마디 내뱉었을 뿐











이제 내가 하는 일이라곤 사람 없는 킹오파 기계에 동전을 두 개 넣고




빌리의 화염선풍곤이 킹과 유리의 젖가슴을 찢는 걸 보면서 




남은 용돈 300원으로 붕어빵이나 사먹는 정도였다.




슬슬 kof95라는 게임에 환멸이 느껴졌다.




나는 분명히 다른 격투게임과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 있었다.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었다.




킹오파를 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게임들.






버추어파이터, 철권, 사무라이 쇼다운, 가부키 클래쉬, 호혈사일족...




나는 그 게임들을 한 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음편에 계속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txt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2)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3)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3.5)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4)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5)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6)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7)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8)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9)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0)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1)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2)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3)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4)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4.5)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15)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完)
- 레이프레이의 격투게임 연대기(후기)




출처: 격투게임 갤러리 [원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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